- 이 글은 손영빈 (2021). 커버링 시티-업: 흉과 믿음의 터전 이야기.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225-258).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릴 적에 나는 어떤 캐릭터를 만들었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장자리에 작은 팔과 다리를 두 개씩 붙여 만든 캐릭터의 등에는 거대한 가방을 짊어지웠다. 나는 그 가방을 캐릭터에게 좋은 것으로 여겼다. 가방은 캐릭터의 몸집보다 네 배는 더 컸는데, 나는 캐릭터를 가방 안에 넣어 잠도 재웠다. 그렇게 하면 캐릭터가 아늑해 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캐릭터를 낙서하며 가방에 쏙 들어가는 재산의 단순함에 희열을 느꼈고, 집을 들고 원하는 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내가 중학생 때까지 우리 집은 전세 계약 기간인 이 년 단위로 이사를 다녔다. 이동 범위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다. 보호자의 그늘에서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어딘가를 떠나야 한다는 게 딱히 비극적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누군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었다. 전학을 갈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대도 했다. 나는 항상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는 그렇게 나의 일부였다. 그러한 경험과 어쩌면 관련하여, 어쩌면 무관하게 나는 요즘도 나의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재산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꾸리고 싶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은 내가 꿈꾸고 살아온 방식을 어딘지 거창하게 미니멀리즘과 노마디즘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다. 뭐뭐이즘. 밈. 밈. 밈…
나는 예술학교에 다녔다. 미술을 공부하면 할수록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점점 더 싫어졌다. 아니, 미술을 공부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내가 싫어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여하튼 세상은 벌어 먹고사는 일로 돌아가는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어떻게 벌어 먹고살 수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슬슬 생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영상 제작에 관심이 있기도 해서 파견직으로 방송사에 취직했다. 한 달에 나흘 쉬고 백삼십삼만 원 받기를 사 개월 동안 지속했다. 벌어 먹고사는 게 고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렇게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 날은 방송사 십수 층에 찌그러져서 주름 잡힌 정신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건물 앞쪽에는 으리으리하고 번들번들한 디지털미디어시티가 허공을 장식하고 있었고, 건물 뒤편에는 낡고 납작한 건물들이 바닥에 붙어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스튜디오와 사무실을 오가는 상사들의 뒤통수에 붙어있었네? 나는 거기에서 도망쳐 나왔다. 상사들의 뒤통수에서는 떨어질 수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찌그러진 채로 며칠을 보냈다. 서울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던 프랑스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를 따라 타투샵에 갔다. 친구는 한국인들이 타투를 잘한다고 했다.
문신을 업으로 삼으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물리적 공간에서 주소마저 지워야 한다는 사실과 잇따른 이사는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이전에 경험했던 이사들은 보호자의 등에 업혀있었지만 이제는 이사들을 내 등에 업어야 한다. 그래도 문신에는 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실용적 삶이 꽤 실현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미니멀한 습관대로 요령 있게 도망치며 살았다. 그러나 요령이 있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불안은 내가 곳곳으로 도망갈 때마다 점점 더 커졌다. 타투하면 돈 많이 벌지 않냐는 질문은 도무지 출처를 모르겠는데 잘도 들린다. 글쎄, 돈 많이 버는 타투이스트들은 따로 있나 보지? 나는 안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데 하필 미술을 공부해서 벌어 먹고사는 수완도 없고, 남들은 돈 잘 번다는 그 타투를 하면서도 타투 도안마저 난해하게 만들어서 망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서울에서 이사를 다닌다. 근래에는 친구들과 이 년 정도 함께 살았고 혼자 일 년쯤 살다가 해외에 나갈 채비를 하던 중에 팬데믹을 맞아 우리 집에 다시 들어왔다. 잠깐만, 우리 집? 우리 집이라는 게 언제 있기는 했던가? 내 삶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나는 이동하는 상태 자체가 내 집이라고 생각해야 마음에 안정을 찾는다.
사람들이 고상하게 말하는 미니멀리즘과 노마디즘은 도시의 기준에서 돈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인간이 도시에 살 때 취해야 하는 삶의 양식이다. 그리고 뭐뭐이즘은 실천에 뿌리를 두고 인간이 체계화한 이념이다. 이름이 생긴 이념은 널리 전래하여 인간의 기억에 저장되고 복제되는데, 저장과 복제가 가능한 상태는 밈이라고도 불린다. 미디어에서 자꾸만 도시에서의 인간실천을 뭉뚱그려 널리 알릴수록 도시 생활은 밈이 된다. 삶의 양식 밈이 웃으면서 이야기되고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 상황은 밈의 생존력을 키워준다. 밈은 저장하고 복제하라고, 웃고 좋아하라고, 나를 세뇌하고 구속한다. 이렇게 섬뜩할 수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만든 캐릭터가 되어있었고, 살면서 느끼는 자유라는 착각은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을 포장하는 자의식이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믿음을 확립하고 그 사실을 나중에 깨닫고는 한다. 상황마다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들의 앞에 나와서 한 인간의 믿음 체계를 조작한다. 당장 앞에 나온 감각이 시각이라면 시각은 인간이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밖에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참 어설프다… 나라는 것도 인간이고, 뭐뭐이즘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밈화하는 것도 인간이고, 미디어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빌어먹을 미디어는 경제적 성공을 유일한 인생 모델로 재현하고 심지어는 이동하는 집의 로망을 널리 퍼뜨린다. 그러는 와중에 불안 이야기를 하자면, 불안이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무언가로 여겨져 왔는데 사적인 무언가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로 여겨져서, 인간은 자신의 일부이고 공유재이기도 한 불안을 함부로 대하고, 저당잡고, 팔아넘긴다. 인간은 여러 가지 불안들을, 자신의 불안마저 손쉽게 속여 판다.
불안 판매는 이제 다르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부동산 투기에 분개했지만, 돈도 없고 편도 없는 동그란 캐릭터는 거대한 짐을 내 집처럼 짊어지고 나는 자유롭다! 고 자위하면서 여전히 굴러다닌다. 지금까지 굴러다닌 캐릭터는 인제 와서 땅에 눌러앉는 상황에 붙박일 생각도 없다. 캐릭터는 타고 나기를 굴러다니게 생겨먹었다. 붙박이는 것은 캐릭터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캐릭터는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더 불안정하다고 믿는다. 구성주의적 관점을 따르면 타고난 운명이랄 것은 원래 없었던 것이며 지금 나의 현실이 자의든 타의든 만들어져 온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계급이론은 내 운명을 이미 점쳐놓았다. 이론과 분석은 내 이야기가 펼쳐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내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고 기대하게 만들고는 오히려 나를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나는 책임을 묻고 싶다. 그런데 이론과 분석은 이론’들’과 분석’들’로서 서로에게 의존하며 그들 주장의 책임을 분산시킨다. 책임이 분산될수록 그들은 견고해진다. 책임은 이천 년 전 누구에게 소급해 올라간다. 백 년 전에 누구는 이러했다. 언제 또 누구는 저러했다. 선행연구는 그러했다. 이성 있는 지적인 서구 문명인들이 말하고 있잖아! 싫으면 네 이론을 내놔! 네가 분석해 봐! 그건 좀 이상하다. 내가 이론을 만들고 분석을 내놓으려면 먼저 그들 권력의 패러독스에 휘말려야 한다. 나는 그들처럼 보여야 그들 권력의 패러독스에 휘말릴 수 있고 그들 권력의 패러독스에 휘말리면 나는 그들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 짓들은 어떤 것도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론과 분석이 언제나 무언가를 범주화하고 정의해온 것과 다르게 내가 꿈꾸고 살아온 방식, 나의 기질과 경험은 이론과 분석으로 소급될 수 없다. 그런 것들에 결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너의 그런 생각은 너의 무의식과 계급과 젠더가 이러쿵저러쿵해서 그래. 기, 승, 전, 결, 클리어!!
캐릭터는 떠돌아다니다가 아무도 모르게 객사할 수도 있지만, 캐릭터의 객사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캐릭터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싫으면 네가 한번 말해보라는 이론과 분석은 그들 권력의 패러독스에 수많은 인간을 동원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면서 대부분의 인간을 잊히게 만들었다. 내가 그들 권력의 패러독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는 나를 그들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각자 갈 길을 가면 되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인가? 나의 말 때문에 나의 불안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증폭한다. 나와는 대조적으로 고귀하게 안정적인 이론과 분석, 그놈들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해서는 그냥 잊혀지고 말걸!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불법 노동. 문신은 내 불안의 핵심이 아니라 불안의 증폭제이다. 문신을 처음 시작한 때로 되돌아가 본다. 한국에서는 자격요건과 무관하게, 타투이스트자격시험 같은 건 없으니까, 인스타그램에 계정을 하나 만들면 바로 타투이스트가 된다. 페이스북이 안 받아주지만 않으면 누구나 타투이스트라는 이름표를 달고 가상세계를 활보할 수 있다. 수많은 이름표가 떠돈다. 가상세계는 그처럼 불안정한 이름들에 기반한다. 나는 타투를 받으려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만난 타투이스트에게 처음 타투를 배웠는데, 수강 기간을 채우고 나서부터 그 타투이스트의 개인 작업실에 딸린 작은 창고 같은 방에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그 타투이스트는 자신의 작업실 주소를 외부에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불법 시술로 신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의 터전에 주소가 없다. 나는 작업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보낼 지도를 만들었다. 주소와 지도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주소는 내 삶의 방식에 대한 공적인 인정과 나의 존재가 사회 어느 곳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좌표이다. 그런 주소의 역할을 지도는 우회적으로 수행한다. 주소가 없는 지도는 존재가 없는 상태를 이런저런 선과 표식으로 감춘다. 나의 지도는 때로는 문자로, 지하철역 몇 번 출구에서 직진하시면 문방구가 나옵니다. 문방구 왼쪽 골목으로 돌아서 편의점을 기준으로 오른쪽 골목에 들어오시면 공방이 있는데 공방 왼쪽 건물 몇 층입니다. 때로는 이미지로 표현됐다. 이미지 생략.
인스타그램의 불안정한 정보체계는 나의 진입을 흔쾌히 허용했다. 그러한 허용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려면 나는 인스타그램에 진입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내 모든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나의 지도 만들기도 흔쾌히 허용했고, 심지어 주소 같아 보이는 것@▦▦▦▦▦▦▦을 내게 주었다. 인스타그램은 극소수의 인스타그래머에게만 블루뱃지를 수여 하여 주소를 공인해준다. 나는 어쨌든 인스타그램에서 받은 주소 같아 보이는 것을 거점으로 지도를 만들어나갔다. 나를 보호해줄 안전장치가 없는 취약한 지도. 인스타그램의 문법을 따르지 않으면 나를 도태시키는 지도. 이 지도는 인스타그램의 오류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면 처음부터 지도를 다시 만들어나갔다. 다른 인스타그래머에 대한 나의 관심을 좋아요와 팔로잉, 댓글로 기록하지 않으면 나는 뒤로 밀려난다. 나는 수완도 없고 타투 도안도 난해한데 인스타그램이 돌아가는 방식도 싫다. 도대체 왜 팔로워가 늘지 않지? 왜 좋아요가 안 눌릴까? 오늘은 웬일로 팔로워가 많이 늘었어. 반응을 신경 쓰지 않으면 온전히 내 손해란 말이다. 도대체 인스타그래머블한 영상은 어떻게 찍는 거지? 왜인지 알고는 있는데 이해가 안 된다. 인스타그래머는 인스타그램의 계량화된 정보체계를 믿지 않는 동시에 믿으며 웅성거린다. 팔로워를 구매했을 것 같은 인스타그래머를 가짜로 의심하고 가짜가 아닌 것 같은 인스타그래머를 판단한다. 인스타그램의 논리체계 안에서 그런 판단을 거듭하며 주관적인 합리성을 확보하고, 의심하고, 믿기를 반복한다. 인스타그램은 나에게 주소 같은 것을 주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주소는 없고, 꿈같은 지도만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기시감이 든다. 나는, 그렇게 해서는 마침내 잊혀질 거야!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문신은 항상 공간적 감각을 전제한다. 문신이 일어나는 곳에 대한 공간적 감각뿐만 아니라, 문신 자체도 공간적 감각이 요구되는 행위이다. 문신은 피부의 공간감을 가늠하고 피부에 길을 만드는 행위이다. 피부가 있는 유기체의 전경과 깊이를 감각하는 과정은 문신의 핵심이다. 문신사는 먼저 유기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구역을 지정하고 설계한다. 그다음에 피부 공간에 개입한다. 피부에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문신 잉크 입자가 들어간다. 길 만들기와 입자의 들어감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입자가 제대로 길을 따라 들어가지 않으면 그 길은 피부 공간에 멋쩍게 남아있다가 사라진다. 자리 잡은 입자들이 문신으로 불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 입자들이 피부 공간 어디쯤 위치하는지, 피부 공간에서 자리를 잡는 도중에 어떤 풍파를 겪는지에 따라 문신의 장기적인 모습이 결정된다. 유기체의 여건에서 상대적으로 피부의 얕은 곳에 자리한 입자는 외부의 풍파에 휩쓸려 사라지기 쉽다. 유기체의 여건에서 상대적으로 깊은 곳에 자리한 입자는 유기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주변의 유기 조직으로 퍼지기 쉽다. 깊은 곳에 과도한 양의 입자가 머무르면 피부 공간이 부풀기도 한다. 그래서 적당한 깊이를 찾는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주술적인 임무가 문신사에게 주어진다. 손님은 적당한 깊이를 염원한다.
손님의 염원은 문신 되는 피부에 이미 어떤 흔적이 있을 때 더욱 강력해진다. 어떤 흔적이라면 점이나 흉터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미 피부에 시술되어 있는 문신이다. 그러한 흔적을 없애는 문신의 방법으로 커버 업cover-up이 있다. 커버 업은 피부 공간에 있는 여러 가지 흔적, 특히 문신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새로운 문신을 기존의 흔적과 문신 위에 시술하는 문신 행위를 통칭한다. 문신을 지우고 싶을 때 문신 제거 레이저 시술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피부 상태를 문신 이전으로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다는 점과 시술을 여러 차례 진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비용 부담의 측면을 고려하는 많은 손님이 커버 업을 선택한다. 커버 업은 흔적·대상·문신을 시각적으로 제거하는 뚜렷한 임무를 수행한다. 커버 업은 덮는 행위이면서 지우는 행위이다. 이 행위는 낡은 무언가를 새로운 무언가로 지운다고 여겨지는데, 정확히는 지운다기보다 숨기는 행위이다. 덮기·숨기기의 다중적인 수행은 흔적·대상·문신을 향하면서도 주변 피부 공간을 활용하고 다른 입자들을 동원해 이루어진다. 주변 피부 공간에 새롭게 주입된 입자들은 문신을 더 크게 만든다. 흔적·대상·문신은 본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외부의 시점에서 다른 무언가로 덮였다고 믿어지며 지워진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 착시는 다시 믿어진다. 커버 업은 시각에 의존하는 인간이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어제는 보였던 문신이 오늘은 보이지 않게 된다. 이제 신경이 쓰이는 것은 가려둔 문신이 내일도 보이지 않느냐는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보이느냐 마느냐, 어떻게 보이느냐에 관련한다. 단일 감각과 믿음. 문신의 공간적 속성은 시각에 가려져 드물게 감각되고, 시각은 다른 감각을 소거시킨 믿음을 만들곤 한다.
나는 시각 너머를 보고 싶다. 시각에 의존해 만들어진 믿음은 나의 불안과도 관련한다. 나는 단일 감각에 의존한 믿음 때문에 불안하고 나의 불안은 다시 단일 감각에 의존한 믿음을 만들어내면서 믿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펴보게 한다. 문신이 인간사에서 주술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으로 물신화된 것은 문신이 시각에 의존하는 무언가라는 오해에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런 오해는 단일 감각에 의존해온 인간들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문신의 주술적인 의미를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주술적인 문신에 어떤 주술적 속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문신은 나한테 위험할 수도 있는 무언가가 된다. 불안한 인간이 불안을 가볍게 사고팔듯 위험을 느낀 인간도 물신화된 문신을 가볍게 사고판다. 불안이 사적인 무언가로, 사적인 무언가에서 다시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로 여겨졌듯 문신은 주술적인 무언가로, 주술적인 무언가에서 다시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로 여겨지는 듯하다.
주술사와 문신사는 어떻게 다른가? 나는 시각 너머 문신과 피부 공간을 보려고 한다. 불안에 둘러싸여 문신의 위험을 느끼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의 언저리를 살펴보면서, 간과되어온 무언가들을 불러내는 일이 아닐까?
- 커버링 시티-업: 흉과 믿음의 터전 이야기 (1/2)
- 커버링 시티-업: 흉과 믿음의 터전 이야기 (2/2)
손영빈
조형예술을 전공했고 미디어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다. 문신을 새김 미디어이자 인간의 가장 비/물질적인 커뮤니케이션수단으로 보며 글을 쓴다. 고령의 개를 돌보면서 인간이 비인간의 아픈 상태와 치료에 개입하는 상황에 관한 글도 쓰고 있다. youngbinnsoh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