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승빈 (2021).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101-183).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6/6)
맺음말-잡종도시서울과 경계부 사이공간의 정치
결국 시공간 압축에 대한 논의들은 부분적이다. 여전히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행정을 매개 근거로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고 작동한다. 물론 소설가 임솔아(2020)의 문장처럼 지도상에 점선으로 그려지는 도시 사이의 경계 그 자체를 물질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곳의 공간성은 경계에 의해 갈려진 양측면을 다르게 만든다. 임솔아의 소설에서 도시 경계에 선 인물은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그리고 “악몽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은 그 느낌을 ‘만들어내는’ 잡종적인 존재로서 도시 사이의 공간에 흩어져 있는(있던) ‘파편’들을 (특히 서울의 서부지역과 그 너머에서,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에 집중하여) 채집·기록하고자 했다.
서울의 너머 공간, 또는 도시 사이의 공간에서 행정경계는 그 자체로 강력한 행위성을 갖고 있었다. 경계의 작동 방식은 한편으로 ‘양피지’로서 도시-지역에 쓰여있던 흔적들을 지워내며 새로운 도시로의 편입 수준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조정된 행정구역과 (특히 기존 모빌리티 인프라의 ‘폐쇄’와 ‘대체’를 방법으로) 촘촘해진 모빌리티망은 특히 새로 편입된 도시세부구역의 ‘서울화’ 내지 도심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심화시킨다. 다른 한편의 경계의 작동 방식은 스스로가 ‘바깥’이라고 구성한 영역들을 흐리게, 검게 칠하면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혹은 실질적으로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일종의 ‘아픈 손가락’을 ‘월경지’로 파악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기도 하다.
문득 이 글을 쓰기 꽤 오래전의, 지금은 도시계획 부문 실무자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는 서울‘특별시’의 이기심의 증거로 1963년부터 사실상 고정된 시계를 지적했다. 당시 도시계획을 공부하던 우리는 서울이 수도로서 온당한지 농담조의 대화를 나눴다. 이 글의 본문 초고를 꼼꼼히 검토해준 다른 친구는 서울이 “얍삽 도시”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핀 것은 지방자치의 논리에서 (서울을 비롯한) 각각의 도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도시 안과 밖의 담장을 높게 올리고 있는 현장이었다. 광역도시권으로의 사유는 큰 틀에서 권장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도시에 도시실재계의 차원에서─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실재계적인 과정과 실체가 도시상상계의 차원과 분명하게 부합할 때─이득이 될 때만 선별적으로만 채택된다(물론 실질적인 도시 작동을 위하여 대도시권이나 도시권역의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은 당연한 요소이지만 행정은 도시상상계의 차원에서 그것을 비가시화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이로써 중심도시로서의 서울의 스케일적 담장은 높아지고 단단해진다.
내가 만나본 서울의 ‘시민권자’이자 식자층인 이들은 세계 스케일과 국가 스케일의 경계짓기와 (재)영토화 경향을 우려했다. 그리고 글로벌시티즌십의 일원으로서 진정성을 갖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이 그 하위 스케일,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스케일에서의 경계짓기와 재영토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이들과 조금 더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지방자치제도는─그것이 민주주의적인 정당성과 제도적 실용성을 중요하게 갖고있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여기서만큼은─그 ‘외면’의 핑계가 되고 있었다. 이는 서울이 지방자치제도를 매개 근거로 채택했던 지전략을 상기하게 한다. 특히 자유주의적 경제논리와 결합된 사업타당성의 원리와 수익자 부담의 원칙은 도시실재계의 경계짓기와 도시상상계의 외면을 지지하고 있었다.
도시 서울의 주요한 담론 발화자들은 서울의 강점을 ‘다양성’으로부터 찾는다. 시정과 당국 역시 ‘다양성’을 도시의 이미지로 채택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러나 연접한 도시들과의 관계에서 다양성의 도시 이미징과 브랜딩은 삐걱거리게 된다. 서울의 내부에, 서울의 외부에 존재하는 도시들과의 관계가 이미징과 브랜딩의 도시상상계 구축 시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재현되기 때문이다. 가령 서울이 스스로를 복제함으로써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버추얼 서울’ 에스맵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그것의 꽤나 다양한 레이어와 정교한 3D 건물 모델링에도 불구하고) 실제 연접한 “주변 도시”들을 ‘흐림’과 ‘암흑’의 지대로 만듦에 따라 서울 자체도 일종의 ‘평평지구’의 축소판처럼 우스워진다.
그 우스움은 (‘여전히’, 그리고 ‘다행히’) 실재하는 실체와 과정으로서의 도시와 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결코 행정시계의 작동 ‘원리’와 같이 매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 도시와의 관계, 그리고 이전 도시의 흔적들은 파편화되었지만 여전히 각 도시부문에 일정하게 잔존한다. 침투는 일방향적인 것만이 아니다.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는 선별과 배제뿐만 아니라 잔존과 침투를 살피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한 파편-채집물이었다. 또한 행정 외적으로 작동하는 실질적 경계 자체가 다중스케일적인 사회-공간적 요소들이 개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계속 형성되거나 조정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경향은 담론적인 차원에서 행정시계로 구성된 스케일을 도시 그 자체로 등치시키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로부터 ‘매끈함’이라는 가치가 서울 도시상상계로 삽입(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스케일은 행정시계로 단독화된다. 또한 도시구역-양피지의 접힘은 강화된다. 때로는 겹쳐지다 못해 구겨지기까지 하면서 원본의 흔적이 파괴되기도 한다. 나는 이 글에서 겹쳐지고 구겨진, 접힌 공간을 몇몇 파편들을 통해서나마 펼쳐보고자 했다. 다만 이 작업의 결론은 지금의 도시실체와 도시과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를 억지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행정시계의 제한적 스케일의 논리에서 도시공간이 인식될 때 놓치는 것들이 상당하다는 점을─이를테면 앞서 살핀, 수많은 님비와 핌피의 논리들이 결국 가져왔거나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는 피해들을 상기해보자─각각의 파편-사례들을 펼쳐보며 말하고 싶었다.
이를 위한 작업의 결과물은 장르를 알 수 없는 글이 되어버렸지만(다만 나는 <잡종도시서울> 세미나의 기획자 입장에서 그 형식에 만족한다), 분명 이 글이 채집한 각각의 파편-사례 하나하나만큼은 중요한 기능성과 가능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파편-사례들은 서울이 스스로 말하는 다양성을 포함하는, 이에 더해 서울이 외면했던 인접도시‘들’과의 관계‘들’의 가시화와 포용, 그리고 선형적인 행정 경계의 다공질적이고 입체적인 경계지로서의 재구성 조건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일종의 잡종적인 도시공동제작의 각기 다른 모양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이 작업의 과정은 도시들의 ‘사이 공간’은 그 파편들이 중첩된 지대였다는 일종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사이 공간’은 도심지 및 도시내부의 일부 세부구역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도시 다양성 담론을 넘어, (개별도시를 넘어 도시권 차원의) 공동제작에 있어 꽤나 중요한 지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각각의 파편-사례들과 도시 사이 공간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분석을 언젠가로 기약해본다(또한 요청하고 싶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웹이식판)
- (1/6) 들어가는말-서울의 시계확장과 접힌 세부구역들
- (2/6) 서울시 빨간버스의 선별과 배제
- (3/6) “김포교통 버스는 더이상 김포에 들르지 않습니다”
- (4/6) 평평서울-버추얼서울, 스마트지도, 블라인드스팟
- (5/6) 도시(간)지하(사이)공간
- (6/6) 맺음말-잡종도시서울과 경계부 사이공간의 정치
이승빈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했고, 동료들과 함께 관여한다. 도시계획과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두 영역의 관계(맺기)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