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간)지하(사이)공간

 

  • 이 글은 이승빈 (2021).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101-183).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5/6) 도시(간)지하(사이)공간: 수도권 퇴근객들은 어쩌다 지하철로를 걷게 되었나

 

*5.1.

도시연구자 스티븐 그레이엄(Stephen Graham)이 꾸준히 주장해온 것처럼 ‘지금-여기’의 도시 세계는 이차원 지도로만 해석될 수 없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지하 대도시의 건조환경은 도시민들을 격자와 흐름들에 연결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 흐름을 거의 살피지 않으며 대개 당연하다 여긴다. 이때의 격자는 물론 대도시 내부의 직조된 블록들 사이에서 더 촘촘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들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도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울과 “주변 도시” 사이에도 상하수도망, 전기망, 가스망, 케이블망, 군용망, 그리고 지하철 등등의─지상의 도시민에게─보이지 않지만 광활한 지하 대도시가 존재한다. 이들은 도시 실체와 도시 과정 양면에 있어서 서울의 건조와 작동에 있어 필수 요소이다. 서울 대도시권의 유지와 (재)구조화에 기여하며, 도시권 내 ‘시공간 압축’의 압축률을 상승시킨다.

사진은 지난 2012년 2월 인천 서구 왕길동에 발생한 싱크홀의 모습. 지금 10m, 깊이 20m 규모로 내려앉은 싱크홀은 추락사고를 발생시켰고, 일대 수천 가구에 수도·가스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서울과 “주변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감소추세에 있기는 하나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각각의 싱크홀은 도시의 지상 거주민들이 쉽게 망각하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던 지하공간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지하 인프라스트럭처망의 존재를 드러내는 다른 ‘사건’이다.

그중 특히 지하철은 인간 신체들을 이동시키며 일상의 기제로 여겨지기에─그리고 아마도 지상의 도시공간에 가시적 ‘기호’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대표적인”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로 흔히 제시된다. (서울 대도시권에서도) 어떤 이들은 지하철로부터 탈지역적인 개념인 비장소를─또는 비장소성의 증폭과 전파를─설명하기까지 한다. 이와 같은 설명방식은 서울 대도시권의 도시상상계의 차원에서도 지하철의 ‘시공간 압축’의 역할을 보다 강화한다. 이제 지하철로 연결된 각지가 서울에 의해 보편화되고 획일화된다는 식의 총론까지 구성된다. 심지어 서울이 글로벌 메가시티가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그곳과 지하철을 통해 밀접하게 된 대도시권의 각지가 비장소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식의 진단까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총론과 단순적용에 국한된 진술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설명만을 제공할 뿐이다.

비장소(Non-lieu)는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주창한 영향력 있는 개념으로 지금만 존재하는 ‘현재성’의 지배를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 인류학의 ‘장소’와 짝패를 이루며 공간의 사회성과 상징화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Augé, 1992/2017). 다만 비장소 개념의 엄밀함이나 무분별한 도시실체로의 적용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적·공학적 도시연구 진영의 비판이 계속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도시와 모빌리티 연구자인 뱅상 카우프만(Vincent Kaufmann)의 지적을 참조해본다. “일부에서 열광적으로 떠받드는 이 짧은 책은 종종 지역적 경계의 소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이용된다. 그러나 장소(정체성에 기반하고, 관계적이며 역사적인 곳)와 비장소(정체성에 기반하지 않고, 비관계적이고 탈역사적인 곳)를 비교한 이 책은 그 이분법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오제는 여행자와 통근자의 공간을 원형적인 비장소로 정의한다. 1992년 출판된 이후 이 책에 가해진 여러 비판들은 모빌리티의 공간적 한계 지점인 비장소 역시 관계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창조점이며, 기억의 매개에 따라 정체성에 기반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요컨대 마르크 오제의 이론은 잘못된 것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구자들이 이동이 늘어난 세계를 강조하려고 비장소 이론을 언급하는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Kaufmann, 2011/2021: 21-22). 물론 오제는 인류학적 ‘장소’와 현대적 ‘비장소’는 절대적 의미에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까닭에 카우프만의 비판이 다소 과도한 측면은 존재한다). 그러나 최소한 비장소론을 실재하고 상상되는 도시실체와 도시과정들에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겠다.

*5.2.

여기서 우리는 앞선 두 절에서 주목했던 오늘날 서울/인천/경기로 파편화되어 있는, 도시‘들’ 간 중첩과 침투의 지대인 도시 사이 공간에 다시 진입한다. 이곳에서 특히 도시(간)지하(사이)공간으로서 지하철 공간의 특정성은 총론 위주로 구성된 문제계를 의심하도록 만든다. 특히 이곳에서 비교적 근래 구축된 노선의 시간(市間) 경계지대에서 발생한 한 (단편적인 것으로서 잘못 다뤄졌던) ‘사고’는 그 중요한 증거 ‘사건’이었다. 다만 그 ‘사건’을 논하기에 앞서 그 사이공간에 지하철 노선이 배치되기까지의 복잡한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존재한다. 단지 일회적 사고가 아닌 ‘사건’인 것은 이곳 도시와 도시 사이의 특정한 사회-역사-지리성, 즉 공간적 특수성과 맞물려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1963년 서울로 편입된 구 김포군의 영역에는 김포선(철도), 김포가도(도로) 등 지난 세기의 하이모더니스트 공간저자들에 의해 나름대로 뚜렷한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가 비교적 일찍 배치되었다. 그러나 그 모빌리티 망은 실상 당대 서울시내 주요 거점(원도심 및 영등포)과 공항을 연결하기 위해 구축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공항을 기점으로 볼 때, 서울시내가 위치한 동쪽 방향만을 향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후 지하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특히 지하철)의 구축에 있어 유사한 구도의 개발경로로 지속되었다. 가령 2기 지하철 계획이 본격화되며 김포공항은 지하철 5호선 노선의 주요 역으로 일찍이 설정되었으며, 작동하게 되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초기계획안. 계획이나 동선 계획은 이후 실제 조성되는 5호선과 상당부분 유사했다. 이는 김포군으로부터 편입된 구 양천군 일대, 즉 강서구에 최초로 놓인 지하철이자, 양천구청역(2호선)만이 존재하던 양천구를 본격적으로 경유하는 지하철이기도 했다. 이로써 이 ‘접힌’ 세부구역의 ‘서울화’는 보다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중의 일이지만 오늘날 김포공항역이 서울 서부권의 가장 주요한 환승시설 가운데 하나가 된 배경의 하나 역시 개발 경로의 일정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지역 거점역이자 환승역의 기능을 염두에 두었던 5호선을 기점으로, 지하철망이 계속적으로 촘촘해짐에 따라 김포공항역은 9호선·인천국제공항철도 등 서울 3도심 방면 노선들의 중요한 거점역이 되어 갔다. 오늘날에는 다수 노선의 환승역인 김포공항역을 중요한 거점의 하나로 김포국제공항 및 대기업 계열의 대형 쇼핑몰의 삼각지대 간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지하 대도시가 만들어져 있다.

*5.3.

편입된 세부구역의 서울 내부지역으로의 연결이 지하철을 매개로 강화되었던 것과 달리, 구 김포군 세부구역들간의 단절은 보다 심화되었다. 이와 같은 단절이 본격적으로 문제시된 것은 1990년대 말 김포가 시로 승격하고, 원도심 주변에 중·대규모 택지지구(사우지구, 풍무지구)가 개발되면서였다. 갑작스레 증대된 인구─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서울을 오가는 통근자들이었다─의 이동 수요를 지탱하기에 기존의 김포와 서울을 연결하던 48번 국도(김포한강로 개통 전 노선)는 쉽사리 포화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현은 이후 약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진 김포시정의 지하철을 향한 계속된 노력―또는 헛발질, 그리고 김포 사람들의 지하철과 관련한 원념의 기점이었다. 이후 전개된 추진과 무산, 확정, 수정, 무산, 재확정 등의 일련의 과정은 극도로 복잡한 것이었으며, 주민과 철도 애호가들이 공유하는 악명 높은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다음은 김포시의 지하철, 전철, 도시철도 구상·추진과 관련한 주요한 사건들을 요약한 것이다: <1997년> 김포읍-김포공항역 경전철 신설 (총연장 10km) 추진. 1998년 착공, 2005년 개통목표. 2001년 KDI 타당성 조사결과 경제적 타당성 부족으로 무산. <2003년> 정부, <수도권 북부 광역교통계획>서 2기 신도시(한강신도시) 관련 지하철 9호선 연장 (또는 5호선)(총연장 21km, 공항~신도시) 추진. <2004년> 건교부의 신도시 규모 축소로 무산. 2003년, 신도시 경전철 추진(건교부의 신도시 규모 재확장, 신도시 완공전 선시공 및 정부재원 투입 등). 2011년 개통 목표. <2006년> 김포시(강경구 시장), 경전철 추진 백지화 및 9호선 연장 재추진. <2007년> 김포시, 양촌-김포공항간 고가경전철 추진. <2007년> 정부, 검단신도시-한강신도시간 9호선 추진. 지자체의 부정적 반응으로 앞의 안으로 진행 결정. <2010년> 김포시(유영록 시장), 고가경전철 전면백지화, 9호선 단독연장 추진 및 시비건설 서약(전액 시비 및 신도시 교통분담금 활용안). <2010년> 4량 중전철 노선 건설 계획(9호선 직결 포기), 이후 사업비 절감 및 공사기간 단축 목적 2량 경전철 변경. <2012년> 민간투자사업 추진. 지역구 국회의원 반발로 김포시 재정사업으로 최종결정. <2013년> 승강장 규모 축소. 계속되는 유보. 위탁사업자 결정, 2013년 착공, 2018년 완공 목표. <2014년> 실제 착공. <2018년> ‘레미콘 파동’으로 인한 공정률 문제로 1차 개통지연. 은폐 의혹. <2018년> 서울 지하철 5호선·9호선 동시연장 추진. <2019년> 차량떨림으로 2차 개통지연 후 김포도시철도 개통.

분명한 것은 지하철─정확하게는 이를 통한 서울 도심부와의 지하철 연결을 통한 서울과의 시공간 압축─이 김포시 내에서 특히 도시화된 세부구역 주민들과 부동산소유자들의 (오랜) 숙원이 되어갔다는 점이다. 다양한 공약들의 남발을 비롯, 중앙정치와 지역정치가─특히 지역 출신의 거물 정치인과 정권, 선거가─맞물려 있던 도시철도 구축의 복잡한 과정들은 그 숙원─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원념─을 추진동력 내지 활용대상으로 설정한 각 스케일의 공간 저자들의 지전략 경합을 중요한 구성요소로 하는 것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구상된 수많은 계획이 대개 (오랜 시간 김포의 개발경로와 소비양태가 향하고 있던) 인천이나 일산 방면보다는 서울과의 지하철 연결을 보다 강력하게 중점화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새로 개발된 김포시 지역에 진입한 새로운 인구들은 서울 대도시권으로의 보다 촘촘한 합류를 희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김포는 서울 서부 지하 모빌리티망의 중요한 결절지로 보다 부상하게 된─이제 해당 영역이 과거의 김포군 영역이라는 점은 잘 고려되지 않는다─김포공항을 중요한 환승지나 경유지로 설정함으로써, 김포공항으로부터 촘촘하게 연결된 서울과 밀접한 관계맺기를 희망했다. 또한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김포·검단 연장 논의는 사실 분할된 구 김포군 영역의 여전한 현안이다(건폐장 이전 및 차량기지 건조와 관련). 그림의 왼쪽은 인천시 제시안, 오른쪽은 김포시 제시안에 해당한다. 인천과 김포 간의 일정한 의견 경합이 이루어지고 있던 와중, 2021년 10월 서울시가 시 교통기획관 명의로 돌연 “5호선을 김포나 검단 쪽으로 연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사전타당성 조사서 어느 정도 경제성이 나와야 국토부와 사업 추진을 협의하는데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 못 된다”고 밝히며, 5호선 서부 방면 연장은 다시 유보상태로 접어들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인천·김포 지역의 공무원들은 “서울시가 구체적인 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의 판단은 자체 용역조사에 근거한 독단성을 가지며, 이것이 국토나 광역권 공동의 원칙(법)과 이해에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희망은 대개 좌절되고 무산되었다. 여기서 한편으로 짚고 갈 한 가지 측면이자 무산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많은 이들의 기억에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는 김포시 내부 제도 정치 및 예산의 맥락과도 실은 연계된 것으로서─서울특별시 시정의 반대 또는 예산지원 거부 등을 주요한 방식으로 작동했던 일종의 경계짓기 과정이었다. 지상공간의 ‘빨간버스’에서 포착되었던 서울의 시계에 근거한 선별과 배제의 정치는 지하공간의 연결에 있어 보다 강력하게 작동했다. 이를테면 사업타당성 등의 경제논리 외에도 서울 내부 시민권자의 교통의 질(가령 9호선 베드타운 구간의 혼잡도 증가 우려) 등이 연장 반대의 근거로 제시되었다는 점은 지하(철) 구축의 논리에 있어서도 반복되었던 선별과 배제의 논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앞서 살핀 김포공항의 서울 지하철 노선 연결 과정,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철도 구축과정에서 서울의 협조와 대비해보자. 이와 같이 각각 상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지하철망 구축과정은 시계 내부에서 지하망들을 촘촘하게 만드는 한편, 시계 안팎의 지하망들은 취사적으로 선택하는 서울 지방자치에의 (지상과 지하를 막론한) 일종의 님비와 핌피가 중첩되는 특징을 갖는다.

경계짓기 과정에 대한 분석은 경계의 자연화를 거부하며 경계가 사회-역사-공간적 현상임을 드러낸다.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은 경계짓기가 행정적이거나 물리적인 일면의 구축물 ‘조성’이나 경계 논리 조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만들어진 “경계의 심화 과정 역시 경계짓기 과정의 필수적인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좌절(특히 축소와 백지화에 의한)과 유보가 계속 반복되며, 서울과 김포를 잇는 도시철도가 실제 운행하게 되기까지는 본격적인 구상이 시작되고부터 20년을 상회하는 긴 시간이 경과하였다. 그러나 이로써 실제로 구현된 23.67km 연장의 결과물(김포 도시철도, 즉 ‘김포골드라인’)은 그 누구도 쉽게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다(가령 김포시장은 실제 탑승 후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를 “교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 말은 일부 사람들의 밈이 되었다). 수 년 앞서 실제 추진될 수 있었던 것보다 훌쩍 늦어진, 더욱이 늘어난 인접 광역자치단체의 경계짓기 및 기초자치단체의 예산한계 등에 의해 기존의─실현궤도에 접어들었던─구상안들보다도 심각하게 축소된 것이었기 때문이다(이는 또한 도시철도 개통 후에도 5호선과 9호선의 연장 등이 계속하여 절박하게 요구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비록 은폐와 절차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나, 계획의 실현 과정에서 축소는 국비, 도비, 서울시비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 김포시청의 한정된 예산 문제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중전철은 경전철로, 열차편성은 2량으로 축소 실현되었다. 이에 맞춰 각 역사의 승강장 길이 또한 축소되었다(47m→33m). 더욱이 시민과 노동계의 지적이 계속되고 있으나 전 노선 완전 무인운전 전동차 체제로 도입되어 유지되고 있다. 역의 개수도 애초 구상보다 감소하였으며(총 10개로 전국 도시철도·광역철도 노선 중 가장 적다), 시종착역인 김포공항역과 그 다음 역인 고촌역 간의 거리는 약 5.9km에 달한다.

결국 골드라인은 열차 증편으로 ‘지옥철’의 타이틀을 떼어내고 있던 9호선 급행열차─특기할만한 사항은 9호선과 골드라인이 김포공항역을 매개로 상호 연계되는 노선이라는 점이다─를 대신해, 출퇴근 시간대 혼잡도 280%라는, 새로운 ‘지옥철’의 불명예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사업시행자이자 소유자인 김포시의 경우 노선 건설에 전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운영예산 확보능력이 부족하고, 한국철도시설공단(65%)과 서울교통공사(35%)로 구성된 컨소시엄(건설·시설관리 위탁사업자)의 경우 개선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병존한다.

*5.4.

‘사건’은 이와 같은 맥락들의 중첩으로부터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COVID-19의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 21일 월요일, 퇴근 시간이던 오후 6시 32분, 김포공항역을 출발해 고촌역으로 이동하던 3292번 전동차가 비상정차했다. 퇴근시간대의 높은 혼잡률로 따라 683명의 승객이 불과 두 량의 열차에 나눠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상정차는 골드라인이 완전무인으로 운행되는바, 기계 장애나 화재경보의 발생시 비상정차하도록 애초에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골드라인은 ‘사건’에 앞서 이미 2019년 11월, 풍무역-고촌역 간 중간지점에서 화재알람 오작동으로 열차가 멈춰섰던 적이 있고, 2020년 5월에는 차량 및 부품 결함으로 두 차례 멈춰섰던 이력을 갖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최초에 SNS를 통해 알려졌던 것처럼 실제 화재 발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만 여기서 우선적으로 드러난 것은 무인운행방식의 안전상의 문제였다. 실제 화재 발생시에도 화재 여부를 즉각적으로 실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사건’을 본격화시키고 심화시킨 기술적 문제요인은 열차종합제어장치(TCMS) 중앙처리보드(CPUT)의 오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선원인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비상제동장치가 가동되었고, 뒤따라오던 후속 전동차 역시 멈춰 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지적되는 것은 부실한 안전 대응의 문제였다. 김포시의 브리핑에 따르면, TCMS의 오류로 인하여 전원공급이 되지 않아 관제-객실간 방송송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승객들은 제대로 된 상확 숙지를 하지 못한 채 한 시간이 넘도록 (COVID-19 상황에서, 즉 마스크를 낀 상태로) 사람과 수중기로 포화된 열차 안에서 대기했어야 했다. 호흡 곤란을 호소한 승객 역시 존재했다.

기관부문 전문가들은 여기서 초동대처의 미숙을 지적한다. TCMS 기동중지 시에도 비상전원으로 가동 가능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가동되어야 했으며, 여기에는 상황 안내를 위한 관제-객실간 방송송출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후 오후 7시 35분. 골드라인 측에서 비로소 대피 안내방송과 함께 열차 문을 열고 승객들의 하차를 권고한다.

그런데 상술한 것처럼 김포공항역과 고촌역 간의 거리는 지하연장 5.9km로, 전체 운행구간 23.67km의 약 1/4에 달한다. 이는 공항 주변의 토지이용규제에 더해 김포와 서울의 ‘사이공간’으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지 못했고, 이에 따라 고촌읍의 중심지에 위치한 고촌역에 이르기까지의 미미한 수요량을 이유로 중간역이 구상되지조차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서울의 “주변 도시”들에서 쉽게 목격되는 택지지구 및 신도시 중심의 어반 스프롤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사건’의 정지는 운행 출발 직후 발생한 것도 아닌, 상당 이동 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열차에서 대기하던 수 백 명의 승객들은 처음에는 상하행선 선로에 설치된 대피로를 따라, 이어서는 선로에까지 내려가, 고촌역을 향해 수 킬로미터의 지하세계를 걸어야만 했다. 지하 퇴근길은 ‘사건’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로가 되었다.

*5.5.

대도시(권) 지하세계의 탐방은 이른바 ‘도시해커’들의 오랜 로망이다. “고층건물과 지하 공간 잠입을 통해 우리는 도시의 구조가 수평일 뿐만 아니라 수직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하세계로의 ‘침투’를 통해 ‘이례적인’ 한계공간을 탐험하고자 했고, 자신들의 침투가 “도시 거주자들이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 행위자가 되고, 변화의 목격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요구”(ibid.)로서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하여 시민 ‘안전’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시 이데올로기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해커이자 도시인류학자인 브레들리 L. 개럿(Bradley L. Garrett)은 “출입금지가 당연한 조처라고 간주되는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면,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권력과 도시 공간 사이의 관계도 다시 돌아”(Garrett, 2013/2014) 볼 수 있게 된다고 논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Garrett (2013))

그러나 김포골드라인의 ‘사건’에서 승객들의 지하 걷기를 도시해킹의 레이어로 과잉 의미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들에게 자발성은 가능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오히려 이들은─그 의도를 차치하더라도─‘사건’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촬영과 인터넷을 통해 현장을 기록·공유했다는 지점에서는 동일해 보이지만, 자발적 도시해커들과 다르게 그 공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포골드라인 측은 전차선에 전기가 흐르고 있다며 임의로 문을 열고 닫지 말 것을 ‘안전조치’로 수시 강조한다.

‘사건’은 안전 강조와 비용 절감, 구태여 세부 범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상충하는 어바니즘들의 틈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들은 서울 행정시계─즉 에스맵의 가시범위─에서 출발해 대개 김포 행정시계에 위치한 자택으로 ‘귀가’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지하공간은 양측의 행정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지하철 관리와 대피 유도를 위해서 안전요원과 점검인력, 경찰 등이 출동했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사이공간’에서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도시로부터도 즉각적으로 보호 받지도, 그렇다고 추후 충분한 경제적 보상 조치를 받지도 못했다─이곳은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사이일 뿐만 아니라 도시적 권리 구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이’에 위치한,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권리와 담론의 공백지대로서의 ‘사이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건’ 직후 김포시는 열차안전원 운영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위탁운영주체 ‘김포골드라인운영’(서울교통공사 지분률 100%)은 COVID-19를 이유로 안전원 늘리는 것에 대한 유보를 주장했다. ‘사건’ 이후 일주일이 지난 12월 28일, 김포시는 모든 열차에 열차안전원이 탑승하도록 지시하는 등 사고 대응체계를 재정비했다고 발표했다.

상술한 것처럼 김포골드라인의 소유자는 김포시, 위탁운영사는 서울특별시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의 100% 지분 자회사인 김포골드라인운영이다. 김포시는 브리핑을 통해 불편을 겪은 시민들에게 운임 ‘환불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외 다른 보상이 제공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최소한 이 글의 작업을 위해 (당시의 ‘실제’ 탑승객을 포함하여) 접근한 여러 소스들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그것은 이후 지속되는 도시 사이 공간 문제의 징후이기도 했다. 우선 2021년 1월 5일에는 풍무역에서 고촌역 방향으로 운행하던 열차에서 비상제동장치 동작으로 인한 운행장애가 발생한다. 이어 최근에는 김포골드라인운영의 파산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소유주 김포시가 위탁운영사를 모집할 당시 5년간 1,183억 원의 운영비용을 산정하였으나, 서울교통공사 측에서는 (운영 노하우 등에 따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며 1,013억원에 입찰하여 자회사를 통한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애초의 인프라 부족에 더해, 운영 문제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저예산 상황에 처하며 인력난과 안전문제가 발생하였으나, 김포시와 서울교통공사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방관한 측면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계와 시민계에서 요구하는 해결책에 대해서는 김포시는 이미 운영비용을 지급하였다는 이유에서, 서울시는 서울지하철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노선에 자사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며 개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김포골드라인 상행(김포행)선의 승객들은 분명 서울시내 거점역이라는 확실한 출발지에서 출발하여, 김포시의 도착역이라는 확실한 일차적 목적지(또는 경유지)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이후 다른 목적지나 경유지로의 이동은 김포공항역을 제외한 전역에 환승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지하공간을 벗어난 이후의 일이 된다). 그러나 ‘사건’으로 지하공간을 걷고 있는 경험에 대해 당시의 한 승객은 SNS를 통해 어둡고 답답한 공간감과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었던 것의 공포를 말했다. 이곳은 도시공간에서 ‘장소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로컬의 경관 정보가 실상 갖춰져 있지 않은 모호한 한계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의 현장을 섣불리 비장소라고 말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사건’으로 인해 개방된 지하 공간에는 비장소 개념에 상정되는 매끄러움, 그리고 현대적 글로벌-보편주의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배경과 문제 발생, 현장 조치와 후속 조치까지, ‘사건’은 철저하게 로컬의 맥락과 연계된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로컬’의 외면 역시 극도로 로컬한 것이었다. 서울시의 입장에서 이곳은 서울 시계 바깥에 존재하는 일종의 ‘암흑공간’이나 그 접경지대에 불과하다. 김포시의 입장에서 이곳은 김포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인 ‘김포섬’에 진입하기 전의 일종의 실질적인 ‘월경지’에 해당한다. 결국 도시들의 사이공간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곳, 동시에 (경기)김포이지만 (경기)김포도 아닌 곳이 된다. 여기에 지하의 비가시성이 추가되었던 이 ‘사건’에서 그 지방자치단체 간의 ‘떠넘기기’의 혐의는 더욱 확실해졌다.

서울시(강서구)가 아라뱃길을 기준으로 경계를 조정할 것을 주장한다면, 김포시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라뱃길의 물길이 아닌 39번국지도를 기준으로 나누자는 것이었다(2013년 기준). 아라뱃길 이남 전호리 지역 일정에 대규모 산업시설물(김포터미널)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김포시의 절대다수의 실상 모든 ‘시설’은 ‘김포섬’의 바깥에는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시민들의 도시상상계에 있어서도 아라뱃길 넘어서는 서울이라는 식으로, 아라뱃길에 의해 갈리게 된 뱃길 남단의 전호리 일대는 마치 월경지와 같이 다뤄진다.

이처럼 장소와 비장소의 방법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논쟁에 있어 어느 한쪽의 총론도 이 사이공간 ‘사건’의 맥락에서만큼은 완전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각론에 해당할 실제 공간들을 구성하는 도시과정과 도시실체는 총론으로부터의 매끈한 단순 적용보다는 각론 고유의 ‘잡종적’인 맥락을 중점화함으로써 찾아질 필요가 있다. 즉, 모델과 같이 추상적이며 그렇기에 거의 모든 공간의 성질들을 설명할 수 있을 듯한 설명방식의 총론─혹은 그 총론에 ‘기대는’ 각론의 논지전개방식─은 실제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잡종적 존재와 그것에 대한 각론으로서의 잡종적 이야기들로부터 의심될 수 있다─또한 의심되어야 한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웹이식판)

 

이승빈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했고, 동료들과 함께 관여한다. 도시계획과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두 영역의 관계(맺기)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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