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승빈 (2021).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101-183).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1/6) 서론? – 서울의 시계확장과 접힌 세부구역들
이 연재는 플랫폼 공간주의가 간행한 기록집 <잡종도시서울>에 투고한 작업 원고(“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에서 일부 절을 웹으로 이식한 것이다. 원래의 작업 원고는 두 개의 단으로 나누어 쓰여졌으나, 이식 과정에서 웹 출력 형식에 맞춰 2단의 상당 내용을 삭제하며 1단을 중점화했고, 대신 몇몇 이미지를 추가했음을 밝힌다.
도시의 잡종성, 보다 많이 담론화된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상이한) 개념으로 도시의 다양성. 도시의 강점 내지는 어바니즘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개념이다. 도시 일반에 관한 도식적 정의는 도시가 밀도와 다양성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밀도는 흔히 도시의 건설정도와 ‘인간’의 밀도로 제시된다. 한편 다양성은 여러 종류의 수많은 도시 실체들(정주인구와 유동인구, 도시 서비스와 인프라스트럭처, 기술지역적 네트워크 등)의 혼재를 말한다. 이와 같은 다양성과 밀도는 도시 낙관론자들로부터는 도시승리의 지표로서 제시되며, 낙관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현대도시 역학의 중요한 분석적 변화요인이나 정치적 변혁조건으로서 배치되는 요소이다.
다만 여기서 만큼은 이론과 모델의 이야기로 너무 우회하지는 말자. 이것은 추상적 또는 보편적 수준에서만 성립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지금의 이곳에서도, 서울의 도시과정과 도시실체의 차원에 있어서 다양성에 관한 사례는 끝없을 정도로 많다─이를 구태여 여기서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울의 다양성을 부각하는 담론 역시 이제 (기존의 대안적 논의라는 ‘포장’을 넘어) 어느 정도 도시상상계의 상식 범주에 탑재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학술적 개념들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너무 많은 이들이 온갖 종류의 다양성으로부터 도시 서울의 매력과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상정-상상되는 서울은 어디일까? 밀도와 다양성이 만나는 공간으로서 여겨지는 서울-도시의 스케일은 서울특별시의 스케일과 겹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다양성-잡종성의 문제가 발견된다.

가장 공식화된 것으로서의 서울의 스케일적 범주는 서울특별시의 행정시계 안의 영역이다. 우선 그 존재를 인정하고 들어가 보자. 서울특별시의 행정시계가 넓게 보아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1963년의 일로 제시된다. 이는 물론 복잡다단한 편입의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나, 요약하자면 역사적으로 서울의 전신(특히 한양-경성)에 속하지 않았던 영역들이 서울에 포함된 것이었다.
물론 1963년 이후에도 세부조정은 계속되었다. 1973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진관외리·진관내리가, 1995년에는 고양시 지축동 일부와 광명시 철산3동·광명동 일부가, 2015년에는 성남시와 하남시의 일부가, 2020년에는 의정부시 장암동의 일부가 각각의 이유에서 서울시의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었다(일부는 교환편입).

이와 같은 과정에서-오늘날 너무도 당연하게 서울로 ─ 전근대와 일제강점기의 영역보다도 더욱 서울이라고 여겨지는 ─ 지리적 범주들이 ‘원래’는 서울이 아니었다는 것까지는 일종의 상식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와 함께 (지금에 와서야 절반쯤은 강남권의 배타성이나 환금주의적 장소들의 편중과 같은 사회-공간적 습속을 조롱하는 풍자적 의도의 장난스러운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었지만) 한양도성 사대문 내부만을 ‘진짜 서울’이라고 여기는 ‘도시 이야기’가 꽤나 진지한 수준의 담론이었던 것도 엄청나게 먼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문화시설의 편중이나 고급주택지 부동산 등의 문제를 불러온다면 해당 담론조차도 온전히 극복 되었다고 자신하기에 무리가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게시물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고,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도시의 잡종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기획 <잡종도시서울>의 일부로서, 글의 서두에서 ‘굳이’ 이미 많은 이들에게 논의되어 온 행정시계 편입, 그리고 겹쳐지지 않음의 이야기를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서울은 대규모의 토지 편입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서울의 다양성에 대한 담론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서울이라는 스케일이 ‘공식적’ 구성에서부터 이미 역사-공간적 특수성의 차원에서 상이한 영역들로부터 조합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꽤 많은 세부구역들은 도시에 대한 교과서적인(그리고 수없이 변용 발전한) 동심원적 모델의 작동에 따라 ‘진짜 서울’로부터 수직적으로 계열-구조화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각기 다른 도시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고 있던 구역들이 수도-특별시의 집중개발과 이를 위한 인구와 인프라스트럭처의 배치에 필요한 가용토지의 확보를 위해 (당시의 지방자치제도 부재에서 상위스케일 사회-공간적 ‘저자’의 결정으로) 서울의 일부로서 각각 ‘접착’되었고, 그 과정과 기존 서울의 맥락의 일정한 관계─그것의 연장, 혹은 그 해소나 단절에 목적이 있었는지─정도에서 각기 다른 토지이용 상의 기능이 부여된 것에 가까울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안드레 코르보즈(André Corboz) 등의 몇몇 논자들은 도시와 지역을 양피지로 비유한다. 양피지의 비유를 지금 우리의 이야기에 필요한 다른 말로 재구성해 본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 구성된 지역 내지 도시공간(도시실재계와 도시상상계)은 이전 시간과 형태의 공간과 ‘겹쳐져’ 만들어진 것이며, 심지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것조차도(최소한 그 ‘보임’을 구성하는 도시과정의 맥락에서) ‘언제나’ 이전 토지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역이란, 지우고 다시 쓴 양피지처럼 그 안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과거의 모든 잔여물과 해석을 안고 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들거나, 어떤 부지를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면 완전히 그 모습이 바뀐다. 그러나 지역 자체는 변하지 않는 외피도 아니고 소비되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는 상품도 아니다. 모든 지역은 각기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재활용’되며, 그 위에 다시 무언가가 기록된다.”(Corboz, 2001: 228; Kaufmann, 2011/2021: 202, 재인용)
양피지의 비유 위에 서울의 시계확장사를 겹쳐보자. ‘서울’이라는 이름의 양피지에는 원래의 ‘진짜 서울’이 중요한 하나의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다른 양피지들에서 ‘공식적으로’ 떼어 내어져 온 다른 조각들이 겹쳐져 있다. 그런데 이 양피지들은 실제 도시 작동에 따라─특히 이른바 포스트메트로폴리스적 맥락의 새로운 경계해체와 경계짓기의 맞물림 속에서─겹쳐졌거나 구겨졌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겹쳐지고 구겨진, 접힌 영역은 도시 스케일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는 스스로의 시계확장과 맞물리며 다른 양피지들과 겹겹이, 그리고 복잡하게 접혀 있는 뭉텅이가 된다(되었다).
즉, 오늘날 시 당국이 공식설명방식을 통해 이전 시기의 서울(한양, 한성, 경성)로부터 그 역사적 뿌리를 공식담론화-기억으로 재조직화하는 것과 달리, 실제 서울은 수 많은 도시영역들의 공간적 맥락과 특수성들의 잡종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서울특별시’의 도시적 기능은 그 위에 덧씌워진 여러 잡종적 행위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른 중요한 연원의 하나는 편입 이전의 (혹은 편입되지 않았음에도 서울시의 도시계획 범위에 포함된 세부구역들의) 원도시와의 관계이다. 물론 지금도 서울의 각 세부구역은 어떤 식으로든─그 양식은 구역 스케일의 세부 맥락에 따라서 주객전도로 다뤄질 수도, 혹은 여전히 일정한 의존으로 다뤄질 수도 있을 것이고, 개별 도시행위자의 맥락에서는 한없이 다양할 수도 있겠지만─이전의 도시(혹은 이전의 도시가 새롭게 재구조화된 사실상 제3의 도시)와 어떤 식으로든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웹이식판)
- (1/6) 들어가는말-서울의 시계확장과 접힌 세부구역들
- (2/6) 서울시 빨간버스의 선별과 배제
- (3/6) “김포교통 버스는 더이상 김포에 들르지 않습니다”
- (4/6) 평평서울-버추얼서울, 스마트지도, 블라인드스팟
- (5/6) 도시(간)지하(사이)공간
- (6/6) 맺음말-잡종도시서울과 경계부 사이공간의 정치
이승빈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했고, 동료들과 함께 관여한다. 도시계획과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두 영역의 관계(맺기)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