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빨간버스의 선별과 배제

 

  • 이 글은 이승빈 (2021).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101-183).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2/6) 서울시 빨간버스의 선별과 배제

 

서울과 “주변 도시”의 관계를 말할 때 그 상징으로서 빠지지 않고 말해지는 것의 하나는 양지의 도로를 오가고, 양지의 거점들에서 정차하는 노선버스다. ‘빨간버스’는 그 관계를 드러내는 버스 노선들의 대표 격으로 말해지는 이름이다. 사실 인천광역버스(일부), 경기도 직행좌석버스 등 여러 가지 빨간색 버스가 서울 등 수도권 각지를 오간다. 그런데 ‘빨간버스’에 대한 상상은 결코 포괄적이지 않다. 특히 서울시 내에서 ‘빨간버스’에 대한 상상은 특히 공공주체의 발화를 경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서울특별시가 내세우는 ‘빨간버스’, 서울시 면허의 광역버스 노선─겉면에 RED의 머릿글자 R이 새겨져 있으며, ‘레드버스’로 공식화된다─에 해당한다. 여전히 서울시 면허의 ‘빨간버스’는 서울-“주변 도시” 관계의 표상이 되고 있다.

광역버스 9401번 FX116 CNG 2171호,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런데 그 관계의 표상으로서 서울시의 공식적인 ‘빨간버스’, 즉 서울시 광역버스가 실상 주변의 실제 접촉된 모든 도시를 오가는 것은 아니다. 한 때 (비교적) 전방위적인 구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더이상은 모든 방위를 오가지도 않는다. 대다수의 방면에 해당하는 1/2/3/5/6 권역의 광역버스 노선이 모두 폐지되거나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시의 시내버스 준공영제 체제에서 광역버스 승객의 대부분이 경기도민이었으며, 서울시에서 발생한 세수를 경기도민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서울특별시 광역버스 노선도 (출처: OpenStreetMap)

지도는 서울특별시 광역버스 노선도이다. 일부 최신화의 필요성이 존재하나, 현재까지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는 서울특별시 면허 광역버스, 즉 ‘빨간버스’의 노선의 큰 두 가지 축(한강이남 동남축, 한강이북 서북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94대 번호 버스가 동남축의 4권역 기점 노선에 해당하며(시계내 4권역의 경우 서초구·강남구를 주요지역으로 함), 97대 번호 버스는 서북축의 7권역 기점 노선에 해당한다(시내 7권역의 경우 은평구·마포구·서대문구를 주요지역으로 함).

20세기 미국의 문학가 E. B. 화이트(E. B. White)는 일찍이 뉴욕에 대한 글에서 토박이들과 정착민이라는 정주하게 된 인구들 외에도 통근자들을 도시의 중요한 세 축의 구성집단 중 하나로 짚은 바 있다. 여기서 통근자들은 토박이와 정착민에 앞서 대도시의 중요한 행위자로 언급된다. 이들은 대도시의 기본전제인 분주함을 쉼 없이 제공하는 존재들로 언급된다. 이는 물론 이른바 ‘서울 대도시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베드타운’이나 ‘위성도시’들로 일컬어지는 도시 주민의 많은 이들은 대도시권의 중심도시인 서울의 ‘내부’의 각 산업부문에서 노동하고, 소비하고, 활동하며 대도시권에 분주함을 ‘쉼 없이’ 제공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이들은 서울시의 세수 확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면허 광역버스 노선 폐지·이관의 논리에서 이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것은 서울과 “주변 도시”와의 ‘만들어진’ 관계들에서 계속적으로 포착되는 구도이다.

<여기가 바로 뉴욕이다(Here is New York)>(White, 1949)에서 화이트는 통근자들이 도시에 분주함을 부여하고, 토박이들이 도시의 견고함과 지속성을 지탱하며, 정착민들이 도시에 열정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정착민에 대한 찬사였으나, 동시에 도시에 있어 통근자와 토박이들의 중요성이 같이 강조된 문장이었다.

이후 버스 준공영제가 어바니즘의 명분 수준에서 기대게 된 서울의 공유도시 담론은, 막상 도시 서울의 일정한 도시 인프라스트럭처를 실상 서울에서 생활하는 타지역의 주민등록자들과 온전히 함께 공유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이 서울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한 때조차도 그 지점은 애써 무시된다.

물론 ‘빨간버스’가 여전히 서울과 “주변 도시”간 관계의 표상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잔존하고 있는 권역과 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권역의 폐지·이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잔존할 수 있었던 ‘빨간버스’ 노선으로 4권역 기점(성남), 7권역 기점(고양·파주)에서 서울의 도심권이나 강남권을 종점으로 오가는 노선들이 존재한다. 이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근대서울과 그 대도시권의 중점화된 개발 경로이던 동남축과 서북축에 해당한다.

더욱이 각각의 노선들을 조금 더 살펴본다면, 잔존하는 절대다수의 노선은 ‘분당’과 ‘일산’으로 향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다수 노선이 폐지되는 와중에도, 1기 신도시, 그 중에서도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과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명 계량화될 수 있을 통계지표 그 자체라기보다는 도시 안팎으로부터 이곳들이 생활수준과 상징자본을 갖추고 있다는 질적 차원의 도시상상계이다─두 도시(분당, 일산)의 노선만이 실상 잔존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서울의 투과성은 특정 방향으로만 개방되고 있다. 그것은 근대서울의 ‘건설’ 경로에 의존하며, 이에 더해 부동산 ‘논리’를 증거이자 선별조건으로 한다.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는 보다 확실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다른 도시에 대한 관계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고, 또한 가시화한다.

광역버스 4권역 모든 노선(9401, 9403, 9404, 9408, 9409번 버스)의 기점은 성남시 분당구의 구미동차고지이다. 7권역 노선의 경우 전체 5개 노선 중 9701, 9703, 9707, 9711번 버스의 4개 노선이 고양시 일산 각지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며, 9714번만이 파주 교하를 기점으로 하며, 일산 등지를 경유한다.

서울은 스스로가 주장하는 대로 다공성 도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공적 구멍들이 어느 방향으로 나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시 상기할 것은 서울과 다른 도시의 관계가─설령 서울면허의 ‘빨간버스’가 다니지 않더라도─지리적·역사적 인접성의 차원에서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울이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관계에 대해서는─설령 그것이 ‘실제로’ 도시로서 스스로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끊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도시로서 서울 그 자체에도 타격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광역버스의 폐지나 축소 등에 따라서 결국 경기도의 서울 통근자들은 다른 교통대체수단을 활용하게 된다. 이를테면 광역버스 외에도 복수의 전철 노선이 존재하는 서울광역버스 4권역과 7권역과 대비되는, 그 외의 폐지된 권역의 모빌리티 인프라스트럭처 상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들의 적잖은 지역에서 자가용 승용차는 (유일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분명 유력한 대체재가 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서울과 “주변 도시”의 이른바 교통-환경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도로망은 물론이며, 서울 내부의 도로망 역시 교통난에 휩싸이게 된다. 대기질과 같은 공해문제 역시 악화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정은 서울 바깥의 노후연식 경유차량의 서울 또는 도심 진입을 제약하는 정책을 순차적으로 방침화했다. 그러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 없이 단기적인 주민 이득만을 명분화하며 관계에 대한 지원을 선별적으로 끊어내는 구도가 지속되는 한 이는 제한적인 방책에 그칠 수밖에 없으리라 전망된다.

물론 일부 지대에 있어서는 분명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다. 4/7권역 외에도 광명·안양 등의 일부 지점에는 서울 중심의 수도권 지하철망이 촘촘하게 깔려있고, 몇몇 도시의 신도시나 관리된 도심에서는 직행좌석버스나 ‘경기도 공공버스’(이른바 G버스), 국토교통부에서 행정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광역급행버스’(이른바 ‘M버스’)(인천운행노선 포함) 정도가 비교적 원활히 운행된다(다만, 배차시간을 비롯하여 이른바 ‘경기버스’의 괜히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 악명을 외면하지는 말자…). 그것을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그 편중성은 이 지역 간 구도의 또 다른 축소판이 된다. 예를 들어 최근의 GTX 계획에 있어 교통소외를 지적했던 한강이남 서북측(경기 김포·인천 검단) 주민들의 반발을 상기해보자.

이처럼 ‘빨간버스’는 서울의 ‘관계 끊기’와 ‘선별적 관계잇기’의 정치를 보여주는 파편의 하나이다. 물론 이들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지방자치제도는 그 제도적 장치이자 매개 수단이었다. 겹쳐진 도시세부구역의 지대를 만들어낸 서울의 확장사에 더해, 실질적으로 중심도시의 작동에 기여하는 대도시권의 통근구조에 있어서도, 중심도시의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선택적 활용은 그 중심도시만의 (도시상상계의 차원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이해타산적 지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도시권의 중심도시로서 서울이 “주변 도시”를 포함한 이른바 ‘서울 대도시권’에 기대고 있는바─이 잡종적으로 구성된 대도시권에 있어 기댐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며, 애초에 일방향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빨간버스’라는 파편에서 드러나는 서울의 ‘관계 끊기’와 ‘선별적 관계잇기’의 정치는 그 자체로 딜레마가 된다.

 

도시 사이의 잡종적 파편들: 접힌 세부구역과 모빌리티 인프라 (웹이식판)

 

이승빈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했고, 동료들과 함께 관여한다. 도시계획과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두 영역의 관계(맺기)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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