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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온라인 플랫폼 도우반(豆瓣)에 <경계를 넘는 공동체>(项飙, 2017/2024)를 검색하고 책에 달린 댓글들을 읽은 적 있다. 몇 백 쪽이나 되는, 비공식 사회관계를 다루는 두터운 인류학 작업을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읽고 베이징의 ‘다른 역사’에 대해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저자가 말한 ‘이해하는 지식’(817쪽)으로서의 인류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을 분리하는 형태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두는,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말을 빌리자면 ‘상상력과 경험의 연대’(19쪽)에 기반을 두는 지식이란 무엇일까? 샹뱌오(项飙)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해하는 지식과 지배성 지식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서술자와 피술자 그리고 청취자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818쪽)에 있다. 즉, 모든 것을 꿰뚫어 ‘보편적 사실’을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 서술자와 피술자 사이의 ‘조우’를 숨기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저장촌 사람들과 청취자 사이의 ‘2중 대화’ 형태로 서술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지향은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때론 한 장을 다 넘어가는 대화의 인용 속에는 저자의 물음과 답변 또한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독자는 저자와 저장촌 사람들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글을 쓸 때 ‘나’를 드러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그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자연히 그리게 된다. 또한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로부터 출발해 어떻게 저자가 ‘인류학적 이론화’에 도달하는지 그려낼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다른 서평자는 이 책을 섣불리 요약하게 어려운 이유로 분량의 방대함이나 주장의 복잡함이 아니라, “그 주장이 어떻게 제시되는가를 보다 세심히 살펴봐야”(이승철, 2024, 137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저자의 학문적 지향과 관련되어 있다.
신사회공간으로서의 저장촌
이 책은 저자가 베이징(北京)의 동향촌(同鄕村) 중 하나인 저장촌(浙江村)에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머물며 기록한 사회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기록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1990년대 중국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지도 체제 아래 추진된 개혁개방은 많은 변화를 이끌었지만, 이 책이 주목하고 또 많은 이들이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는 것은 도시로의 인구이동이다. 현장인 저장촌은 베이징 남쪽 다홍먼구에 위치한 곳으로, 1980년대 중반 원저우(溫州) 출신 의류 가공 종사자와 사업자들이 거주하며 의류 사업을 확장하면서 집단거주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이농민 현상은 비단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호구(戶口) 제도1라는 특수성 아래 중국의 도시 이주민들은 공식적으로 도시민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정종호, 2008). 도시민과 농민이라는 제도적 ‘경계’ 아래 도시로 이주하였어도 주택이나 노동, 의료 서비스 등에서 배제되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제도적 특수성 아래 도시 이주민들은 자신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틈’을 만들기 위한 전술을 발휘하게 되며, 동향촌 형성 역시 그중 하나다. 특수한 방식으로 경제적 생산과 사회 재생산을 통합하여 도시와 농촌이라는 국가의 분할 체제에 대응하는 것이다. 여섯 가구로 출발한 저장촌은 그렇다면 어떻게 10만 명에 이르는 의류 제작 및 판매지이자 집단 거주지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긴 여정이다.
1. 중국은 거주 지역과 농업 종사 여부에 따라 호구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호구를 수단으로 공민을 관리하고 있으며 특히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를 통제해왔다.
저장촌을 묘사하는 개념 중 하나로 등장하는, 비국가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서구적 의미의 시민사회와도 차이가 있는 신사회공간(新社會空間)에 관해2, 저자는 본인이 관심을 두었던 것은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사회관계에 관한 것이라 말한다. 저장촌에 관한 다른 인류학 저서인 <도시의 이방인들(Strangers in the City>(2001)가 물리적 공간과 권력 투쟁의 관계성에 주목한 것과 차이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물음에 대한 응답 중 중심에 있는 것은 ‘관계(關系)’다. 중국 사회에서 ‘관계’는 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간략히 서술한다면 내부 집단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를 의미한다. 언뜻 듣기에, 이는 내부 집단을 중심으로만 도움을 주고받는 매우 폐쇄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혹은 앞선 언급하였던 호구나 단위 제도로 인해 이러한 관계가 와해되기 쉽다고 추측할 수 있다.
2. 비국가, 신사회와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책의 저자는 국가-사회 관계를 다소 분리적으로 설정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설정이 국가나 사회 내부, 국가와 사회 간의 역동을 추적하고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사회 관계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발생시키는 환원주의의 함정을 피하기 어렵다는 조문영(2019)의 지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본문의 [그림9] ‘계’와 ‘계’의 중첩 (750쪽의 그림을 다시 그림)
그러나, 이승철(2024)이 이들의 두터운 사회적 관계가 객관적 하부구조(infrastructure)로 작동한다고 지적한 것(142쪽)처럼,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저장촌을 유지 및 확장하는 것에 기능하고 있었다. 이 책 <경계를 넘는 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점차 ‘계(系, 일종의 관계 사슬)’ 중첩의 확대가 촉진되면서 친우권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점과 이러한 관계가 호구나 단위 제도와 같은 분할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저장촌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관계망을 구축하고 지역화를 구성해가면서도, 본질적으로 개방적이었다. 다른 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업관계를 구축했으며, “친우권과 사업권의 분리와 중첩이라는 상호작용”(736쪽)은 계를 확장시켰다. 특히 사업관계와 친우관계의 중첩만을 강조했을 때 사업뿐 아니라 친우관계를 해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중첩과 분리를 동시에 이루어 냈다.
샹뱌오는 더 나아가 일종의 관계 다발을 의미하는 ‘관계총(關系叢)’ 개념을 제안하는데, 이때 하나의 계는 관계총의 일종이 된다. 그는 관계 맺기를 개인 대 개인으로 협소하게 보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계총’ 간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총 의식은 “일상생활에서 보여지는 ‘공공성(公共性)’의 매개”(759쪽)다. 관계에 대한 샹뱌오의 제안은 특수성에 기대면서도 우리 일상에 기대어 떠올렸을 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끼리의 작은 연결망들이 결합하고 확장하면서 저장촌이 강력한 수평적 발전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조직화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했다고 덧붙인다(项飙, 2017/2024). 모두 유사한 업종에 종사했을 때 경쟁과 갈등이 심해질 수 있기에 저장촌 사람들은 끊임없는 이동과 함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움직일수록 수가 보인다는 말(341쪽)은 이동사업연결망의 경제성을 보여주지만, 조직화의 어려움을 고려했을 때 이동을 통한 연결망의 확장이 지니는 난점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관계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서 아쉬운 지점은 다른 서평(정종호, 2024; 이승철, 2024)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저장촌 내부의 소외에 대한 부분이 사려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 평균 16시간 가까이 일했던 타지 출신 여성 이농민들과 같이 다소 배제된 존재들에게 저장촌의 관계망이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였을까? 이들은 저장촌을 어떠한 공동체로 여겼을까? 저자 스스로도 노동자와 여성을 간과했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지만, 젠더관계를 인식하면 생산뿐 아니라 재생산 영역,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연동 등의 다른 역학을 발견했을 것이다. 가령, 저장촌 내부의 연결망을 이용하여 돈을 다른 이자율로 빌리고 또 빌려주면서 차익을 가져가는 중간자(中人)는 왜 주로 중년 여성들이 맡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파고 들다 보면 저장촌 자본 체계의 다른 특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계’의 의미
앞의 내용이 저장촌이라는 공동체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와 함께 논의되는 것으로서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저장촌이 “지리적, 체제적, 신분적 등 일련의 사회적 경계를 넘음으로써 체제의 외부에 존재하는 ‘신사회공간’이 되었다”(项飙, 2017/2024, 152쪽)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경계’를 배제나 구획화의 기능만을 하는 것으로 상상하지만, 나는 그러한 시각에 다소 회의적이다. 경계의 다층적 성격을 가리기 때문이다.
경계가 사람들을 나누고 거르는 포섭의 장치이자 동시에 “상이한 순환의 형식”(Mezzadra & Neilson, 2013/2021, 30쪽)이라는 지적은 경계가 순환과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경계가 차이를 낳고, 그러한 차이로 인해 사람과 물질의 이동이 발생한다면, 저장촌은 경계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자 동시에 경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었던 공동체이자 순환체계인 것이다. 이미지에 빗대어 본다면 저장촌이 경계를 초월해서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저장촌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경계 위에 포개져 있는 방식의 횡단은 아닐까? 체제에 의한 구분이 오히려 저장촌 사람들에게는 이용할 수 있는 기회구조가 되었다는 샹뱌오의 통찰은 이러한 경계의 다층성을 부각한다. 가령, 도농 접경지역은 행정 관리가 비교적 취약했는데, 접경지대의 혼잡성으로 인해 행정 관리상의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농 접경지역의 토지 점유나 이용 양상은 도시나 농촌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다(项飙, 2017/2024, 159쪽). 접경지역이 지니는 이러한 틈새와 혼잡이 외래인구가 생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특수성은 저장촌 공동체의 사회적 관계와 맞물리며 저장촌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저장촌의 발전 전략 중 하나인 ‘도주’3시, 단속 대상 사업체들은 교외 지역이나 베이징과 허베이 사이의 접경지로 건너가 생산하며 베이징 시내 상가에 납품을 이어갔다. 이 책의 제목에는 모두 언어는 다를 뿐 초월이나 뛰어넘는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들, ‘跨越’, ‘transcending’, ‘넘는’ 등이 사용되었다. 저자와 역자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이 글의 제목을 ‘경계와 공동체의 상호구성’으로 바꾸어 지은 이유는 이 책이 다룬 저장촌 사례가 경계를 넘어서는 것보다도 경계와의 공동 구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1986년부터 거의 매년 ‘정치 태풍’이 불어 저장촌의 단속이 심해질 때면 이들은 도주했고, 이를 ‘바람을 피한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권력자의 이데올로기적 지위를 부정하지 않는다”(489쪽)는 점이 이 전략의 큰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의 표현이나 변용 전략과는 다른 것이다. 격렬한 표현을 통해 국가 정책을 바꾸고자 시도하는 서구적 전략 방식인 ‘표현’과도 다르고, 개인적으로 지도자나 정책 집행자에게 접근하여 정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상의하는 중국 사회의 방식인 ‘변용’과도 다르다. 도주는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정책을 바꾸려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며 이러한 정책의 무의미함을 통해 이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그렇기에 도주는 감독하기에도 처벌하기에도 어렵지만,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전략의 측면에서도 저장촌이 기존 체제로부터 빗겨나있으면서 어떻게 새로운 사회공간을 구축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정종호 (2008). 북경시의 도시재개발정책과 북경 “동향촌(同鄕村)”의 변화. <현대중국연구>, 9권 2호, 37-79.
정종호 (2024). 저장촌에서 바라본 중국의 개혁·개방: 샹뱌오 지음, 박우 옮김,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2024, 글항아리)를 읽고. <아시아리뷰>, 14권 2호, 299-309.
조문영 (2019). ‘보편’ 중국의 부상과 인류학의 국가중심성 비판. <중국사회과학논총>, 1권 1호, 93-128.
이승철 (2024). 사소한 것들의 힘. 강예린 외 (편), <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 (135-149쪽). 고양: 알렙.
Ingold, T. (2018). Anthropology: why it matters. 김지윤 (역) (2020).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 왜 그리고 어떻게 인간을 연구하는가>. 서울: 프롬북스.
Mezzadra, S., & Neilson, B. (2013). Border as Method, or, the Multiplication of Labor. 남청수 (역) (2021). <방법으로서의 경계>. 서울: 갈무리.
项飙 (2017). 跨越邊界的社區: 北京“浙江村”的生活史. 박우 (역) (2024).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 파주: 글항아리.
사진출처
https://think.sina.cn/guoce/doc–ifychavf2125026.d.html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현장에서, ‘좋은 삶’을 둘러싼 사람들의 믿음과 이를 불러오기 위해 이동하는 실천에 관해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관련한 논문을『미디어, 젠더 & 문화』·『공간과 사회』·『대중서사연구』지면에 발표했고, 책 『이제 공간에 주의하십시오』·『잡종도시서울』 등을 공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