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독립전시공간 수건과 화환에서 기획한 ‘언바인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개되는 것입니다. 플랫폼 공간주의는 필진 일부의 공간에 대한 작업물들을 통해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수건과 화환은 온라인 플랫폼과 웹진의 아카이브를 종이 형태로 유통하는 프로젝트 기획 취지와 함께, 2025년 3월부터 참여 작업물의 전문을 자체 전시공간, 더북소사이어티, 인더페이퍼 을지로 등에서 물리적 형태로 유통하거나 전시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공간주의는 온라인을 통해 프로젝트 참여 작업물의 전문 또는 일부분을 디지털 형태로 공개합니다. 이 아티클은 그중 신지연 필진의 [보더 다이내믹스: 우리는 국경으로부터 무엇을 읽을 수 있는가? Border Dynamics: What can we capture from borders?]의 전문에 해당합니다.
이 글은 경계, 특히 국경에 대한 몇 가지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국경을 상상하면 당신에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남한에서 자란 나에게 국경의 이미지란 군인들과 긴장 넘치는 분위기, 판문점에서의 미디어 이벤트, 혹은 DMZ 같은 아주 특수한 생태 경관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국경의 존재가 특수하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구상에서 특수한 국경 이미지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국경을 걸어서, 자전거로 넘었던 경험은 그렇기에 나에게 ‘국경이란 무엇인가?’, ‘국경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촉발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 도시인 바를레(Baarle)는 복잡한 국경선을 담고 있는 국경 도시(border town)로 유명하다. 도시를 걷다 보면 두 나라의 경계를 나타내는 하얀 십자가 표식을 발견할 수 있고, 도시 안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영토가 패치워크처럼 흩어지고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벨기에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착용해야 하면서 바를레 시민들의 다소 ‘웃픈’ 경험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국경과 권력
‘국경’은 1989년 이후의 글로벌 맥락에서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유럽과 아시아에 새로운 국가들이 더 생겨나면서 전 세계 국가 수가 크게 증가했고, 동시에 국제 국경 분쟁의 수와 강도가 증가했다(Donnan & Wilson, 1999). 도넌과 윌슨이 지적한 것처럼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경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국경이 더욱 개방되고 사람, 상품, 자본, 아이디어의 이동이 더욱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경의 변화는 점차 공간과 사회를 다루는 논의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를 둘러싼 몇 가지 사건들―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은 우리가 세계화 못지않게 ‘탈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세계화를 칭송하지만, 세계화의 ‘부분적 종말’과 동시에 탈세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계화와 탈세계화가 어떻게 뭉쳐지고 흩어지고 있는가, 그 역학일 것이다. 국가가 순환과 연결의 기술을 통해 특정한 사회적 관계와 제도를 만들어 낸다는 베렌홀트(Bærenhold, 2013)의 모빌리티 통치(governmobility)에 대한 지적을 상기할 때, 국가와 모빌리티의 관계 또한, 갈등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계화와 탈세계화의 맥락에서 국가가 특정 이동을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봄으로써 역동적인 경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논쟁으로부터 배우면서 오늘날의 맥락에서 국경을 재맥락화하는 것, 그것은 경계 연구자들에게 과제로 남아있다.
인류학자들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하나의 고정된 공간이나 문화에 속한다는 생각을 거부해 왔다. 가령, 이른바 ‘초국적 사람들’은 여러 공간과 문화를 공유하며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왔고, 인류학자들은 이들의 다양한 행동과 신념을 해석해 왔다. 그러나 도넌과 윌슨(Donnan & Wilson, 1999)이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영토, 국민국가, 정체성 사이의 본질적인 상응, 즉 각 요소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경계가 있는 단위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가정하는 것을 믿는다.”(10p) 그렇기에 국경이 사회정치적, 문화적 ‘제도’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국경과 국경지대를 권력의 현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흐름에 관한 책을 쓴 반 쉔델과 아브라함(Van Schendel & Abraham, 2005)은 사회과학자들이 현대 국가의 틀 밖에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불법적인 것’의 초국가적 연계성을 근본적으로 개념화하려고 시도한다. 우리는 보통 국민국가와 국경을 선험적으로 생각하고 국경을 넘는 것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을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해왔지만, 국민국가의 영토 통제 때문에 이들의 존재나 특정 실천은 쉽게 불법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초국가적 행위, 특히 소위 ‘불법’이라고 불리는 실천을 국가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특히 전 세계적으로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관할권에서 어떤 범죄에 대한 ‘일관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반 쉔델과 아브라함은 국제적으로 합법과 불법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괄호 안에 합당/부당(licit/ilicit)을 추가하여 이해해볼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국경에 위치한 얕은 강을 통해 물건을 운반 및 거래하는 행위는 법적으로는 ‘밀수’로 인식될 수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역사적으로 늘 해오던 합당한 실천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것과 합당한 것의 교차점을 살펴보면 법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어떻게 수렴하고 갈라지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어떤 현상을 ‘법과 함께’ 해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관행’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드러낸다.
드 제노바(De Genova, 2002; 2013)도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불법’의 근본적인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푸코(Foucault)의 권력 생산론에 이어, 드 제노바는 불법과 합법은 서로 연동되어 있으며, 일상에서 ‘불법’이 생산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함을 말한다. 배제와 포용은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겹쳐 있으며, 그렇기에 가령 이주민을 ‘불법화’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 대한 감시 및 강화를 정당화하는 수단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주민이 보여주는 국가에 대한 ‘자발적 동의’와 그로 인한 포섭으로의 연결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드 제노바(De Genova, 2002)는 여기서 그람시(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인용하여 이를 보완한다. 문화적으로 피지배들자들이 동의에 동참함으로써, 혁명이 지연된다는 점을 간파한 그람시의 주장을 떠올려보자.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미등록)이주민들을 포섭하는 과정의 중심에는 이들의 노동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흐름과 노동 수요의 구조적 측면에서 국가는 이주민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이주민은 노동 수요의 격차를 이용하여 그 과정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정확히 이런 맥락에서 노동은 이주민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데 사용되지만, 동시에 노동이 이주민이 현재의 국가 권력을 교란할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등록)이주민이 암묵적 또는 공식적으로 시민이 아닌 노동자로만 인정받는다면, 이주 노동자로서 정치적 투쟁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특히 한국처럼 인구가점점 부족해진다는 담론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이주민의 노동이 국가의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편, ‘스케일(scale)’의 문제는 경계를 둘러싼 권력과 저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국경지대에 대한 분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국경지대의 사람들이 국가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는 것이다. 국가 간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도 이들은 국가 영토가 설정한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계속 나아간다(Van Schendel & Abraham, 2005). 초국적 공간이라는 것은 반드시 국경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논의가 아니다. 이동과 실천이 국가의 상상을 초월하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계와 스케일을 고려하지 않으면 무엇이,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미등록’ 이주민을 식별하고 추방하고 격리하는 이주 시스템과 법률도 서로 다른 지리적 스케일에 걸쳐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Mezzadra & Neilson, 2013). 경계가 다층적인 만큼, 그 경계를 넘는 많은 것들도 다층적이다.
무엇이 국경지대를 특수한 공간으로 만드는가?
다음으로 태국의 국경지대 중 하나인 매솟(แม่สอด, မဲဆော, Mae Sot)1을 현장으로 하는 연구를 비교하면서 국경 역학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매솟의 사례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데, 특히 이주민과 국가 간의 관계에 주로 초점을 맞춘 드 제노바의 틀과는 상당히 다른, 다양한 행위자와 집합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상국(Lee, 2011; 2015; 2018)과 캠벨(Campbell, 2018)은 매솟에서의 현장연구를 통해 이주민과 국가뿐 아니라 NGO, 이주민 학교, 공장 등 다양한 주체 간의 복잡한 관계를 해석했다. 앞서 나는 이주민의 노동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낳을 수 있음을 주장했는데, 유사한 맥락에서 <혼란에 빠진 국경 자본주의: 동남아시아 공단 지역의 불안정성과 투쟁(Border capitalism, disrupted: Precarity and struggle in a Southeast Asian industrial zone)>을 쓴 캠벨은 제임스 스콧(James Scott)의 영향을 받아 이주 노동자들의 ‘일상적 저항(everyday resistance)’에 주목한다. 그는 오랜 투쟁 끝에 새로운 규제가 등장하더라도, 이주 노동자들이 규제 변화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존재함을 강조한다.
1. 매솟은 태국 서부에 있는 도시로, 태국-미얀마의 국경지대다. 미얀마가 정치적 혼란을 겪던 1980년대 이후로 국경을 넘어 매솟에 머무는 난민과 이주자들이 많아졌으며, 매솟은 태국에 입국하는 관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매솟은 또한 카렌인, 버마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이 지역 국경지대에 들어온 이들은 주로 소상인이나 농업 노동자 등으로 일을 하였지만 1990년대 후반에 공장이 설립되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솟 산업단지에는 무인양품, 아디다스 등과 같은 글로벌 의류 기업들이 다수 들어와 있다(Campbell, 2018).
매솟 사례와 드 제노바(De Genova, 2002; 2013)의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국가(여기서는 태국 정부)가 때때로 이주민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태국 정부의 노동보호청(Labor Protection Office)과 같은 기관이 물론 모든 상황에서 이주민을 보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이 의지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관으로 존재한다는 점은 상기할만 하다. 동시에 이주민 등록 절차가 까다롭고 다양한 형태의 부패와 관료적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주민들은 반-자발적으로 불법에 참여하게 된다. 경찰과 공장주와의 결탁과 같은 문제와 관련하여 캠벨(Campbell, 2018)은 매솟의 생산관계 내 계급 관계를 공장 외부의 요인과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이주 노동자나 공장주가 공장 바깥에서 경찰과 브로커 등과 맺는 관계는 공장 내 노동력 결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경지대의 노동 문제는 이동성 체제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다.
여기서 매솟의 패션 공장에서 일하는 의류 노동자들을 연구한 캠벨이 국경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왜 사용했는지 생각해보자. 캠벨(Campbell, 2018)은 국경에 위치한 매솟의 지리적 위치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 당국과 자본이 이주 노동자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경을 통치 기법으로 활용해 온 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매솟이 태국의 ‘경제적 댐(economic dam)’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국경이라는 예외적 공간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태국이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할 뿐 아니라, 이주민의 태국 내부(특히 태국 중심부)로의 이동을 제약하면서 국경지대에서의 제조업 착취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국가의 비중심부에 집중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이러한 의도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들은 단속을 피해 이동하고, 비공식적인 우회로를 개발하며,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상호 협력을 통해 태국과 공장주에게 투쟁했다.
캠벨의 연구(Campbell, 2018)는 국경지대를 국가 정책의 영향을 받는 고정된 공간으로 보는 기존의 담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형태의 계급투쟁이 발생하는 복잡한 국경 자본주의의 존재를 함께 설명했다. 공식적인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약화되거나 붕괴되었지만, 그는 공장과 그 주변에서 참여관찰한 대안적인 실천 형태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노동계급의 투쟁과 노동계급 조직의 역할을 이해했다. 계급의식이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관행과 사회적 관계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넘어 서고자 했던 부르디외(Bourdieu) 같은 학자들의 렌즈를 통해 경계의 역학을 바라보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별, 연령 및 기타 요인에 따른 일상 생활에서의 생산 및 재생산 노동과 일 등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캠벨의 연구에서 이주 노동자는 주로 ‘노동자’로 묘사되는 반면, 그들의 고향, 매솟, 특정 목적지에 있는 개인과의 상호작용은 충분하게 묘사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국경지대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앞선 논의들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지만, 나는 국경지대에 살거나 오고 가는 사람들의 독특한 열망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캠벨의 연구(Campbell, 2018)에서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방콕과 같은 태국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오직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이들이 쉽지 않은 방콕으로의 이주를 감내할까? 이상국(Lee, 2011)은 이를 보완하는데, 그는 버마인들이 매솟에서 방콕으로 이주하는 문화적 이유를 설명하면서 글로벌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확산을 일종의 ‘환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방콕 드림이 방콕으로 이주 후에도 여전히 꿈으로 남을 것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그리고 방콕으로 떠난 이들 중 누군가는 방콕에서 서울로, 쿠알라룸푸르로, 로스앤젤레스로 다시 떠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사람이 매솟에 머물다 떠나지만, 동시에 정치적 이유나 취업 기회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사람들이 항상 유입되고 있다. 이동을 둘러싼 ‘정동적 힘’이 이 공간에서 특히 강력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경지대가 빠른 인구 이동이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의 열망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동성에 대한 집단적 분위기, 감정, 여론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Glaveanu & Womersley, 2021).
이상국(Lee, 2018)의 연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이주민 거주지를 ‘초국적 사회 공간(transnational social space)’으로 개념화한다는 점이다. 이주민 거주지를 고립된 게토와 같은 공간으로 보는 기존의 인식과 달리, 이주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 사실 세계화와 모바일 기술의 발전이라는 현대적 맥락에서 이주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여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들린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여전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주민 거주지가 단순히 은유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행동과 관행을 통해 태국과 미얀마, 다른 국가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주민 거주지에 거버넌스가 부재할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이주민 학교와 같이 행정적 기능도 수행하는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조성하고 있음이 지적된다. 이동은 종종 사회 시스템의 붕괴와 관련이 있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국경지대가 역동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지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경과 모빌리티, 그리고 행위자성
다음으로, 모빌리티와 이주, 국경 연구를 연결 지어 보고자 한다. 장소와 이동에 대한 기존의 정주주의적 관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안된 모빌리티 패러다임은 다양한 공간 및 물질적 흐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연결 과 이동을 강조하는 다중스케일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Sheller & Urry, 2006). 그렇다면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주와 모빌리티 연구는 무엇이 다른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이주 연구가 ‘장소 (place)’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면, 모빌리티 연구는 ‘흐름(flow)’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모빌리티 연구는 이동을 연결과 기회, 제약 등으로 형성되는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이러 한 차이에 대해 호프마이어-즐로트닉(Hoffmeyer-Zlotnik, 2024)은 두 관점 모두 한계가 있으며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장소 중심적 관점은 단기적이고 빈번한 여행, 교통의 중요성, 목적지 이외의 장소와의 연결성 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흐름에 초점을 맞추면 영토적으로 정의된 장소의 특성과 중요성, 개인의 소속감과 인정에 대한 욕구, 이동의 통제와 규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동하는 개인을 다루는 많은 텍스트에서 권력과 저항, 행위자성의 문제는 핵심 주제로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북한과 중국의 국경 문제를 다룬 두 논문(Cathcart, 2018; Kim, 2019)은 ‘모빌리티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obility)’를 강조한다. 김성경은 중국으로 이주한 북한 출신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이유를 여러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한다. 경공업이나 서비스업에 집중된 북한 여성의 노동력이 북한 정부의 통제를 덜 받는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은 이를 이용해 무단 이동, 밀수, 무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국경지대를 보다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모빌리티 행위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지위로 인해 과도한 노동이나 이동 중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로 더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여성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권력의 역학관계에서 취약성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차이들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권력과 저항의 문제는 국경지대와 같은 하이브리드(hybrid) 공간에서 훨씬 더 복잡해진다. 캐스커트(Cathcart, 2018)가 말했듯, 국경지대에서는 “국가와 사적,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428p).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국경지대는 ‘일상의 저항’(Scott, 1985)이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형성되는 공간이 된다.
스콧(Scott, 1990)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교적 ‘사소한’ 형태의 정치적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인프라정치(infrapolitics)’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전에는 정치적 행위로 간과되었던 실천들이다. 그는 특히 산악 국경지대에 대한 연구에서 역사적 희생자 혹은 땅을 빼앗긴 이들로 인식되곤 했던 사람들의 행위자성을 재해석했다. 이러한 재해석을 통해 국경지대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토착화하려고 노력했고, 외부 관찰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저항 방법을 고안해왔음이 드러날 수 있었다 (Michaud, 2020). 그러나 캠벨(Campbell, 2018)과 같은 학자는 저항에 대한 다소 배타적인 초점이 투쟁의 사회 구성적인 측면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콧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매솟의 이주 노동자의 생활을 통해 그는 노동계급 사회 속 ‘일상적 재구성 (everyday recomposition)’을 개념화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을 드러낸다.
다시 모빌리티 논의로 돌아와서, 이동과 저항에 대해 생각해보자. 프 라데하스-가르시아와 로프트도티르(Fradejas-García & Loftsdóttir, 2024)는 제임스 스콧과 셰리 오트너(Sherry B. Ortner)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중 모빌리티 상황에서 저항이라는 것은 고정된 틀 속에서 파악될 것이 아니라 수행적 행위를 통해 진화하는, 역동적인 현상으로 개념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모빌리티 연구자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과 모빌리티를 둘러싼 인프라정치 사이의 모호한 경계, 진화하는 모빌리티 레짐이 행위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 새로운 결합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한 검토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빌리티 패러다임의 흐름과 연결성에 대한 강조를 생각해본다면, 모빌리티와 저항의 관계라는 것 또한 지속해서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조미아2에 대한 슈나이더만의 연구(Shneiderman, 2010)에서 탕미(Thangmi)3의 사례가 제시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소수 민족 집단이 국가에 의해 ‘통치 되지 않는’ 상태로 남으려 했다는 스콧의 제안과 달리 탕미는 오늘날 국가 내에서 자신들의 존재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이렇다 하더라도, 슈나이더만은 탕미 집단이 주관적인 수준에서 스스로 비국가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여러 이동과 국민국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탕미의 사례는 이들의 복잡한 전략을 고려하게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들의 초국가적 정체성을 국가와의 피상적 관계로만 분석한다면 그들의 주관적 경험의 복잡성을 포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실용적인 차원에서 탕미 집단이 특정 국민국가 내에서 뚜렷한 공동체로 인정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과 ‘비국가’ 집단으로서의 자기 인식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복수의 실천과 행위자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는 지속해서 고민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국가를 피하는 대신 국가를 활용하는 조미아 사람들의 전략을 “국가 공간이 조미아 사람들에 의해 뚫렸다”(이상국, 2024)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상국이 지적하듯, 오늘날 더 이상 국가 만들기와 국가 피하기의 이분법적 구도로 이들 실천의 다각성을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2. “‘조미아(Zomia)’는 베트남의 중부 고원에서 시작하여 대륙 동남아시아 5개국(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과 중국의 네 지방(윈난, 구이저우, 광시, 쓰촨 성 일부)을 가로지르며 인도 동북부까지 뻗어 있는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지대를 일컫는 새로운 용어이다.”(Scott, 2009 /2015, 15p) 스콧은 조미아 연구를 통해 국민국가 내부로 편입되기를 거부한 산악 아나키즘 집단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가는지 연구하였다. 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멀리하고자 하는지 해석하였다.
3. 동부 히말라야의 원주민 부족으로, 네팔과 인도, 부탄 등에 걸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경계와 이동의 문제에 있어, 행위자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다른 저작물을 검토하면서 정리한 나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이다. 행위자성을 이해하는 것은 복잡한 층위의 경계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국경의 경우 때로는 너무나 견고해 보이는 국민국가 체제의 균열을 드러낸다. 다음으로 행위자성의 문제는 개인의 열망과 그로 인해 도래할 수 있는 잠재적 미래에 주목하게 한다. 경계에 주목함으로써, 우리는 이 공간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감각할 수 있다.
사진출처
[1] https: //www.tourthenetherlands.nl/exploring-baarle-a-quirky-dutch-belgian-border-town
[2] https: //commons.wikimedia.org /wiki/File:Baarle-Nassau_-_Baarle-Hertog-de.svg
[3] https: //en.wikipedia.org/wiki/Southeast_Asian_Massif
참고문헌
이상국 (2024). “조미아, 국가를 넘나드는 사람들: 태국 치앙마이 산악지대의 초국주의 실천”. <다양성+Asia>, 24호, URL: https://diverseasia.snu.ac.kr/?p=6869.
Bærenholdt, J. O. (2013). Governmobility: The powers of mobility. Mobilities, 8(1), 20-34.
Campbell, S. (2018). Border capitalism, disrupted: Precarity and struggle in a Southeast Asian industrial zone. Cornell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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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4년 “Border Society and Mobiltiy(국경사회와 이동성)” 세미나에서 작성한 세 개의 비평문을 연결하고 수정한 것이다.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현장에서, ‘좋은 삶’을 둘러싼 사람들의 믿음과 이를 불러오기 위해 이동하는 실천에 관해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관련한 논문을『미디어, 젠더 & 문화』·『공간과 사회』·『대중서사연구』지면에 발표했고, 책 『이제 공간에 주의하십시오』·『잡종도시서울』 등을 공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