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N. 미완된 논고를 위한 미완된 논고: 정신분석적 비평의 기초에 대해서

 

모든 것이 맞물리는 것처럼 보이네, 기어 메커니즘이 딱 들어맞아. 이제 이것이 진짜 당장이라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계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네. 뉴런의 세 가지 체계. 양의 자유로운 상태와 묶인 상태. 1차 과정과 2차 과정, 신경계의 주요 경향과 타협 경향. 주의와 방어라는 두 생물학적 규칙. 질. 현실. 사고의 표시. 성 심리적인 집단의 조건-억압이라는 성적 결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식이라는 인식 기능적 요인들. 이 모든 것이 들어맞았고, 지금도 들어맞아! 나는 당연히 큰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지.

– <플리스에게 보내는 편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런데 묘하게도 성적인 영역에는, 우리의 길을 밝혀 줄 수 있는 어떤 특수한 심리적 성좌(Konstellation)가 있다.

– <과학적 심리학 초고(구상)>, 지그문트 프로이트 

한 이념의 재현에 사용되는 일군의 개념은 이념을 그 개념들의 성좌로서 현현한다. (…) 오히려 이념들은 현상들의 객관적이고 잠재적인 배열이고 현상들의 객관적 해석이다. (…) 이념들은 영원한 성좌들이며 그 요소들이 이러한 성좌(Konstellation)들의 점들로 파악되는 가운데 현상들은 분할되는 동시에 구제된다.

-<인식 비판적 서론>, 발터 벤야민

 

모든 아마추어 이론가들에게 그러하듯이 초기 모델이나 구상에서의 미해결 과제는 유령처럼 그들의 배후에 존재하며 시시각각 그 이론을 위협한다. 예를 들어서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이 <시간의식>에서 ‘무한소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월의식’을 도입한 이후 그것이 그를 따라다니며 현상학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문제[1]가 된 것처럼 말이다. 초기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심리학적 환원(<히스테리 연구>)과 물리-기계적 환원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이론적 모델 중 하나의 노선을 따르는 이 미완된 논고(<과학적 심리학 초고(구상)>이하 ‘논고’)에는 후에 그가 다루게 될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심리적인 것을 수리-논리적,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하려 했던 이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포기하고 파기하려까지 했던 이 ‘논고’ 속에는 정신분석의 태아가 잠들어있으며 후기 저작의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지 않고서 정신분석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이 ‘논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후에 일어날 저작들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고는 고도의 ‘사변적 성찰’ 이다. 따라서 이 비평은 하나의 논고로써는 명확하진 않다. 그러나 이를 다룬 문헌들을 통해서 하나의 비판적 검토와 과감한 구상을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것 이다. 그것은 ‘기초’ 에 대해서 논하는 것으로 메타 이론 비평이 될 것이다. 나는 정신분석의 폐기된 구상, 즉 다시 이 귀중한 쓰레기 뭉치로 돌아가 살펴볼 것 이다. 이는 이러한 질문이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동시대의 정신분석적 비평의 기초란 무엇이 될 수 있을 것 인가? 그것은 기계인가, 위상학적인가, 언어학적인 것인가? 또는 심리학적 사변인가? 어쩌면 철학인가?’ 나는 이를 동시대의 부정성, 특히 퀴어 부정성에 연관 시키고자 한다. “퀴어 부정성이란 자본주의-이성애-규범성과 불화하는 가치들을 퀴어한 것으로 전유하는 것이며, 동시에 결코 정합적으로 의미화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의 모순을 여성·성차·섹슈얼리티 같은 개념으로 표시하려 한 시도이다.”[2] 퀴어 부정성이 동시대 비판이론에서 갖는 중요성은 사회가 동성애나 여타 퀴어적 욕망들을 정상화하는 대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또한 그 헤게모니적 사회성을 파괴/해체하는 대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가치들, 이러한 가치들은 퀴어의 삶에서 발견되는 핵심적인 정서적·경험적 자원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보다 보편적인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 인간적·문화적 ‘문제’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미 퀴어 범주 내부에 내적 긴장을 초래한다.”[3] 이러한 부정성은 정신분석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는데 리오 버사니는 “정신분석의 크나큰 성취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4]이라고 말한다. 그 가치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스쳐 지나치는 서점이나 도서관의 책과도 같을지 모르겠지만 아는 자들에게는 불가항력의 끌림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귀중한 수장고 일 것이다.

이 ‘논고’에서 우리가 의도하는 것은, 심리학을 자연 과학의 범주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리 과정을 양적으로 결정된, 구분 가능한 물질적 입자의 상태로 나타냄으로써, 그것을 명쾌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만드는 것 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본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1) 활동과 정지를 구분하는 것은 양적인 것이다. 양Q는 일반적인 운동 법칙을 따른다. 2)뉴런은 물질적인 입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 <과학적 심리학 초고 (구상)>, 지그문트 프로이트.

‘논고’에서 그의 계획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신경의 힘에 경제학과도 같은 양적인 관점을 도입하면 정신적 기능 이론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 또 정신 병리학으로부터 정상적인 심리학이 가능할 것인지가 바로 그것이다. “프로이트의 기계를 이용한 비유와 전문적인 어휘 ‘뉴런’, ‘양’, 두 생물학적 규칙 은 그가 속해있던 세계였던 빈의 종합병원의 언어였다.” 이는 당대 실증주의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5] 잠시 <기록 시스템>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그리고 1985년 발표한 <심리학 과학적 초고(구상)>에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분리된 기능들을 엄격하게 기능적 위상 관계에 의거하여 지형학적 모델로 구조화한다. 영혼을 일종의 블랙박스로 모형화하는 프로이트의 논고는 그 자체가 당대 심리학 모델의 모범적인 사례다. 대뇌 생리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엑스너(1846-1926) 이래로, 뇌라는 중심기관은 ‘교통로들’이 깊숙이 파묻힌 ‘교통시스템’ 아니면 마치 전신 시스템처럼 다수의 ‘중계국들’이 통신로를 따라 즉각적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일종의 정보망처럼 묘사된다.”[6] 그것은 말하자면, “바다 너머의 블랙박스”[7]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받은 신경해부학적 훈련의 영향 때문에, 뉴런과 신경 임펄스에 관한 신경생리학적 지식들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의 의도는 수량화 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마음의 작용에 관한 통합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8] 따라서 그의 ‘논고’에서 제안한 개념들은 본질적으로 뉴런들의 연결망 속에서 순환하는 에너지의 양이라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물리적 환원주의를 표방한다. 여기에서 심적 과정이란 물질의 양의 이동에 불과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심리현상을 과학적으로 기호화함으로써 수학과 논리학을 정신분석에 도입한다.[9]

계속해서 그는 생리적 과정과 심리 과정들 사이에 일련의 등식들을 세운다. 예를 들어서 생리학적 차원에서 뉴런 기능의 근본적 원리를 ‘관성의 원리’라고 정의 한다. 한마디로 말해, 뉴런들은 스스로 과도한 에너지를 털어내어 자유로이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0] “이 법칙에 의하여 흥분 양과 자극으로부터의 도피 노력 사이에 균형이 생겨난다. 프로이트는 양과 뉴런을 결합하여, 어떤 양 Qἠ으로 채워진, 투여된 뉴런 N은 다음 순간에 비워질 수 있다는 관성의 법칙에 도달한다.” 이때, 그는 양을 두 개로 구분한다. 하나는 물리적인 양인 Q이고 또 하나는 심리적인 양인 Qἠ이다. 그리고 그는 양에 이어서 물질적인 입자인 ‘뉴론’ 개념을 제시한다. 이 용어는 1891년에 발다이어(1836-1921)가 처음 소개한 것으로, ‘신경체계의 기본 단위’를 뜻한다.[11] 이때, 프로이트에게 뉴런은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구상된 세 개의 시스템(φψω)으로 연결된 복합체이다. 이러한 ‘관성의 원리’는 ‘일차과정’이며 자유롭고 억제되지 않은 정신적 에너지의 흐름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마음은 일정량의 자극을 견딜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단지 방출의 원리만을 따라 기능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과도한 심리적 에너지의 방출을 견딜 수 있고 일차과정을 이차과정으로 변형시키는 속성을 지닌 마음의 조절체계가 있다고 가정한다. 이때, 이차과정은 에너지를 묶어두고 일차과정을 억제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모든 조절 체계는 ‘항상성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그것은 ‘이차과정’들을 조직화하는 기능을 한다.[12] 그는 ‘논고’에서 인간행동은 ‘항상성의 원리’에 의하여 규정된다고 믿었다. 이는 인간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임상적으로 하나의 폐쇄된 에너지 체계로서 간주하는 것으로서 긴장들은 닫힌 체계 안에서 축적되며 또 그것에 의해서 방출된다는 것이다. 한 통로가 막혀서 그것을 통해서 긴장이 방출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면 긴장을 풀어줄 다른 통로를 찾아야만 한다. 그의 후기 저작에서도 위협받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항상성 원리’는 계속해서 인간 행동의 ‘중심적인 동기’로 남아있게 된다.[13] 그는 두 가지 유형의 뉴런을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1. ‘투과성 뉴런’(뉴런φ), 이것은 “마치 접촉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양Qἠ을 통과시키는 뉴런으로 흥분이 통과한 뒤에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으로서 지각 활동에 기여한다. 2. ‘비 투과성 뉴런’(뉴런ψ), 이것은 “그것의 접촉 장벽이 작용해서 양Qἠ을 저장하는” 것으로서 기억과 일반적인 심리 작용에 기여한다. 이 두 개의 뉴런 체계는 ‘일차 과정’(투과성 뉴런,φ시스템)과 ‘이차 과정’(비 투과성 뉴런,ψ시스템)을 뜻한다, 전자는 양을 투과, 즉 수용하여 방출하는 ‘주어진 것’이고, 후자는 양을 투과하지 않고 방출을 저지하는 것으로서 ‘생의 절박함’에 의하여 획득되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행위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양을 저장해야 한다. 이것이 뉴런 시스템의 이차 과정이 후천적으로 생성되는 이유이다. 이차 과정은 양을 가능한 한 낮게 하고 그 증가를 막는다. 즉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의 형태로 모습이 계속 바뀌어 나타난다.[14]

여기서 그는 ‘질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양이 아닌 질로서의 의식은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질문한다. 그는 지각에 관계되는 뉴런 작용 외에도 지각이 없이 일어나는 작용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뉴런의 일차 과정과 이차 과정의 성질에 포함되지 않는 뉴런이 발견된다. 프로이트는 삼차 과정을 담당하는 뉴런 시스템의 존재를 가정하고 이를 지각뉴런(ω시스템)이라 부른다. 이 시스템은 지각을 행할 경우에도 작동되지만 한번 이루어진 지각이 반복되거나 재생될 때도 그 지각과는 관계없이 자극-흥분의 상태가 발생하여 다양한 질을 낳는다. 즉, 이는 의식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ω시스템은 양의흐름이 적거나 일어나지 않는 곳 즉 저항이 작용하고 외계와 차단된 ψ시스템에서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이 기능상 뉴런은 완전한 방출을 시도하지만 저항이 작동하여 최소한의 양을 저장한다. 최소한의 양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ω시스템은 성립된다. 지각뉴런은 양을 수용하는 능력이 없지만 흥분의 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지각 뉴런의 시간적 특성 때문에 ω시스템에 양의 흐름이 없거나 최소한이어도, 회상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15]

프로이트는 논고에서 많은 심리기제들을 설명하고 있으나, 내가 주목해서 볼 것은 쾌와 불쾌, 고통과 실패경험이 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불쾌는 좌절시키고 고통을 야기하는 것으로 경험된 사람을 향한 적대적 감정을 촉발시키고 만족은 그 역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그는 쾌/불쾌의 원리에 정서적인 차원을 도입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생의 아주 초기부터 고통의 경험과 만족 경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16] 뉴런 시스템은 희한하게도 주어진 것과 획득된 것의 구분 그리고 현실의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정립된다. 이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추진력인 ‘생의 절박함’은 후에 1920년대에 욕동, 에로스와 타나토스 개념으로 확장된다.[17] 그가 이 대목, 그러니까 고통과 불쾌, 만족과 쾌락이라는 의미에서 서술하는 어떠한 ‘만족 경험’이란 ‘본능적 욕구’로부터 나오는 내적 긴장 상태와 함께 시작되는 복잡한 과정이다. “욕구가 강렬해짐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긴장이 증가하고 만족을 얻는 수단을 통해서 방출을 기대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유아의 고통스러운 울음을 들은 외부의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요구되었던 것을 실행하게 되면 ‘방출경로’는 두 가지 수준에서 중요해진다. 1. 그 개인의 마음에 불쾌의 억압과 조력자의 개입 간의 어떤 연결이 생겨나면서 의사소통의 느낌이 생겨난다. 2. 그 개인은 운동기능들을 사용해 불쾌의 억제가 요구하는 것을 신체적 수준에서 수행한다.[18] 그러므로 만족 경험의 결과로 두 기억 이미지들인 소망하는 대상의 이미지와 반사 운동 이미지들 사이(지각뉴런 ω는 Q와 ψQ와 Qἠ을 구분하고 이 두 시스템 사이를 반복하여 오가면서 작동한다. ω시스템은 본능의 에너지를 욕동의 에너지로 몰고 간다. 이 에너지에는 ‘운동 이미지’가 담긴다. ‘운동 이미지’는 동일성을 획득하고자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작동한다. 그에 따르면 사고 과정의 목표와 목적은 동일성을 얻는 데 있다.)에 촉진이 일어난다.[19] 그는 이러한 과정 전체를 만족 경험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개인의 본능적 욕구들을 다루는 능력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생물학적인 체험을 통해 배운”(…)“불쾌감은 유일한 교육수단이다.”)을 한다고 주장한다.[20] 그는 ”여기서 자아가 개입한다.”라고 한다. 이때 자아의 역할은 긴장을 제거하고 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억제 기제들을 사용해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정동의 반복을 막는 것이다. 이 시기의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자아란 항상 ψ뉴런군으로 점령(리비도 집중)된 영토의 부분으로서 항시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뉴런군 지역이다. 이는 ψ에 투여된 양의 총체이다. 자아가 ψ뉴런군이라는 말은 양 Qἠ의 흐름으로 연결된 뉴런군이라는 의미이다. 이 뉴런군은 접촉 장벽의 저항을 피해서 이루어진다. 즉, 점령되는 뉴런은 접촉 장벽의 저항으로 인해 측면 점령된다.[21]

그의 저서 <꿈의 해석>의 7장은 욕동 구조 모델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부분인데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정신적 기구의 작용들에 대한 일반화된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명백하게 ‘논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잠시 비교해보자면, “(…)정신적 기구는 스스로를 가능한 자극이 없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최초의 정신적 기구는 반사 장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정신적 기구에 부딪치는 모든 감각적 자극은 운동성의 경로를 따라서 즉각적으로 방출된다.” 그러나 “‘삶의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은 이러한 작용을 방해한다.” “이러한 방해들의 최초의 형태가 바로 ‘주요한 신체적 욕구들’ 이다. 이러한 욕구들은 운동을 통하여 흥분을 방출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운동은 감정표현의 구성요소가 된다.” “항상성 원리가 충족되려면 ‘만족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욕구에 의해 생산된 흥분과 연관된 기억이라는 형태의, 특별한 지각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음번에 그 욕구가 발생할 때는, 원래의 만족 경험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정신적 기구의 편에서 그 지각을 다시 불러일으키려고 시도한다. 그는 이 충동을 ‘원망’이라고 불렀는데, 그에 따르면 원망의 성취는 그 지각이 재현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재 경험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그 만족에 대한 지각을 환각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원망의 성취는 ‘지각적 동일성’을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22] 하지만 구상을 쓴 후 프로이트는 신경생리학을 정신분석학의 기초로 삼으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라면 웅장한 실패였다.”고 한다. 이 “심리학”이 엄밀하게 정신분석 이론의 초고로 읽혀지지 않고 이본으로 읽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동, 억압과 방어, 여러 에너지들의 힘들이 대립하는 정신 경제학, 인간이라는 소망하는 동물에 관한 프로이트의 생각들이 모두 여기에 희미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세운 이 기획은 지금까지 여러 의미에서 뉴턴 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첫째로 정신의 법칙을 운동의 법칙에 종속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 명제를 찾는다는 점에서 말이다.[23] 이러한 태도들은 후에서도 끝없이 반복되는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후기 메타심리학적 논문들에서.)

 

“분열 분석은 한 주체 안에 있는 n개의 성의 다양한 분석이다. 욕망적 혁명의 분열-분석적 공식은 무엇보다 이럴 것이다. 곧, 각자에게 자신의 성들을.”

– <안티 오이디푸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열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이자

그림자이며 허구다.

그리고 최대의 선으로도 부족하다.

모든 인생이 꿈이며

꿈은 단지 꿈일 따름이다.

<인생은 꿈입니다>,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나는 서두에서 내게 했던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겠다. 내가 보기에 동시대의 정신 분석적 비평의 ‘기초’ 란 그 무엇도 아닌 ‘실패’ 이자 ‘죽음’ 이 그 주제이다. 그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며 정체성이자 삶의 스타일, 차라리 태도이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적 비평이란 무엇이 되어야 인가보다는 무엇이 되어 갈 수 있는 가가 더 좋은 질문이 될 것이다. 첫째로, 이는 하나의 해석학, ‘성좌’를 더듬어 읽는 손가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폴 리쾨르(1913-2005)는 <해석에 대하여>에서 ‘논고’를 비-해석학적인 것으로 또 정신분석이 철학으로 간주되는 분수령으로 본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해명이 시작되는 점과 그의 인성론의 변치 않는 암울한 점을 드러내며 죽음충동의 발견(Q=0)을 예고하고 있다고 본다. 즉. 해석학을 위한 정신분석에 있어서는 이가 불필요 하다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성’을 다시 사유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논고’를 접하거나 읽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시기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과감한 추론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두 사람이 같은 지점의 인식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벤야민에게 준 영향은 일찍이 많은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언급된 바가 있다. (가령 고지현의 연구저서<꿈과 깨어나기>나, Francisco Naishtat의 글을 보라.) 그리하여 발터 벤야민의 ‘성좌’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성좌’ 이미지와 비교될 수 있다. 벤야민의 ‘성좌’ 개념은 희한하게도 프로이트의 치료기술과 닮아있다. 그것은 바로 ‘우회로로서의 재현’이다. 나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첫 장인 <인식 비판적 서론>의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변형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히스테리) 현상들이 이념(진실)들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그 현상들의 개념적 요소(사건)들에서 소진(소산)된다.’[24] 그리고 ‘게다가 그 요소들은 그 극단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요소들을 현상들에서 분리해내는 것이 개념의 과제이다.’[25] 여러 사건이 ‘하나’로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은 요소들을 마치 모자이크를 만들 때처럼 유리를 섬세하게 골라 배치할 때에 그러나 그것의 반짝이는 빛에 침잠해 들으면서 일어난다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논고’의 2부 4장에서 그림으로 도식화한다.

fig1. <도표16>

그에 따르면 ‘억압된 기억은 사후작용에 의해서만 비로소 외상이 된다.’[26]는 것이다. 진리(사실)는 언제나 사후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을 따르면 진리는 “사물들의 ‘개념’도 아니며 ‘법칙’도 아니다.”[27] 이 지점에서 프로이트는 단념했을 것이다. 그리고 언어학으로 넘어가는 모색의 지점이 아니었을까?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성좌 개념은 ‘극단적인 위기 국면의 구제’라는 측면에서 가까스로 일치한다. 미완성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우리는 벤야민(<아케이드 프로젝트>)과의 친화성을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미완된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견될 프로이트의 사고의 정반대 되는 양가감정. 이중 노선과 그로 인한 정신분석적 비평의 자체적인 해석적 불화나 당혹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 내의 긴장감이야말로 그의 이론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날 자그마한 틈새라고 할 수 있다. 꼼꼼하게 프로이트를 독해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신 분석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언제나 그것을 비껴나가는 설명되지 않는 퀴어-아마추어적 성질인 셈이다. 이것은 ‘죽음충동’이다. 여기서 위에서 말한 ‘구제’는 ‘실패’ 한다. 그것은 언어화될 수 없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앙토넹 아르토(1896-1948), 리 엘더만(1953~), 잭 할버스탬(1961~)을 따라가고자 한다.

다시 돌아가서, ‘논고’에서 프로이트가 언급한 ‘삶의 절박성에서(…) 인간을 유일하게 교육하는 것은 불쾌이다.’[28]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잭 할버스탬에 따르면 “퀴어한 신체들은 정신분석학의 틀 안에서 욕망의 실패를 담지하는 것으로서 기능한다.”[29] 그것은 유쾌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차라리 4인칭에 해당하는 ‘누군가’이다. 삶의 절박함(그런 것 이 있다면) 속에서 우리의 욕망을 교육하고 통제하며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게끔 참을성을 길러주는 것이 이러한 불쾌감의 정동에서 기인한다면, 우리는 오로지 실패로써만 학습되고 규정되어지는 정체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만족을 추구하는 잔혹한 것이 지배하는 암담한 세계에 있다는 파국적인 입장이다. 그것은 폴 리쾨르가 말한 ‘무한한 악’이다. 앙토냉 아르토는 삶에 대한 욕구의 의미로서, 우주의 엄격함과 그 불가분인 필요성의 의미로서 어둠을 집어삼키는 삶의 소용돌이, 영지적인 의미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고통을 ‘잔혹’이라 정의하며 선은 행위 결과이지만 악은 영원하다고 한다. 인간에게 잔혹은 필연적이고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30] 삶은 잔혹한 운명인 것이다. 창조 혹은 삶은 사물을 피할 수 없는 종말로 이끄는 일종의 엄격함. 즉 근원적인 잔혹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삶은 잔혹하다.[31] 이것이 쾌락원칙, 즉 삶의 절박성이 보여주는 또 다른 이면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슬픔의 밤에 이러한 지식이 되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내적인 빛, 자연광이 아니다. 오히려 지하의 광채가 대지의 품에서 희미하게 비쳐 나온다. 사탄의 반항적이고 꿰뚫는 듯한 시선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자 안에서 작용하여 그 지하의 광채와 만나 점화된다.”[32] “지식으로서의 충동은 악의 공허한 심연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은 그곳에서 무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닥 없는 깊은 사색의 심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색의 자료들은 철학적 성좌 구조들 안으로 진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하여 그 자료들은 어두운 현란함을 펼치는 단순한 보고로서 바로크의 엠블럼집들 속에 놓여 있다.”[33] “따라서 악에 대한 지식은 아무런 대상도 없다. 그 악은 이 세상에 없다. 그것은 지식에 대한 욕구, 아니 판단에 대한 욕구와 함께 인간 자신 속에서 비로소 생겨난다. 선에 대한 지식은 지식으로서는 이차적이다.”[34] 그리하여 구제적 비평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부정성의 측면에서는 불가능해진다. 리 에델먼 에게서는 “퀴어는 항상 불가피하게 죽음충동과 연관되어 있고 퀴어 주체가 인식론적으로 공허함, 헛됨, 한계, 무효함, 불모성, 비생산성 같은 개념을 거부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부정성의 형식에 퀴어성을 연결한다.”[35] 그는 “퀴어들이 이러한 부정성, 난센스, 반 생산, 불가해함에 매여 있었다고 주장하며 퀴어성을 인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이 특징들을 떨쳐내는 대신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구조적으로 재현하는 부정성을 포용할 것을 제안”[36]한다. 이러한 제안을 우리는 떨쳐낼 수 없다. 왜냐하면 잭 할버스탬이 말하듯이 “산다는 것은 실패하는 것이고 망치는 것이며 실망하는 것이자 궁극적으로 죽는 것”[37]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묵하는 타자, 즉 죽음과 유한성이야말로 퀴어성의 의미이며 그것은 절대 낙관주의적이고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기존 사회문화의 정상적 발달 노선을 거부하는 행위야 말로 정신분석학에 대한 퀴어적 독해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비평적 예시로서는 리오 버사니의 <성에 대한 세편 에세이>에 대한 독해,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의 경제학적 관점의 해체, 정신-기계론, 분열-분석의 유기체적 기관의 해체, 세 가지 에너지 체계와 분자그램적 무의식 개념을 들 수 있겠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욕망을 ‘결핍(아낭케)’이라고 정의한 프로이트를 분열증적 방식으로 가차 없이 분해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초기 프로그램의 ‘기계’ 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신분석이 실패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혼을 밝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삶의 스타일, 다시 말해서 실존이며 일종의 잔혹한-윤리학이다. ‘사유의 무능함’과 ‘불가능성(실패)’이 정확하게 비평의 핵심을 꿰뚫는 것이다. 정신분석적 비평은 언제나 처참하게도 실패하는 주체들을 다루어야 하는 과제를 지닌 것이다. 끝으로,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나라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주석

1) 이에 대한 논의로는 김태희, <후설의 절대의식-근원의식과의 연관 하에서->,철학과 현상학 연구, 44호, 2010를 참조하라.
2) 리타/이연숙,「〈진격하는 저급들〉들어가며: ‘젠더 문제’」, <세마 코랄>,http://semacoral.org/features/yeonsooklee-advancing-of-low-gender-matter, 2023-04-01
3) 위의 링크
4) 윤조원, <리오 버사니의 퀴어한 부정성: 친밀함을 넘어서는 친밀함의 가능성들>, 비평과 이론, 22호 1권, 2017, 153
5) 피터게이, <프로이트 1>, 정영목 역, 교양인, 2011, 172-173, 175
6) 프리드리히 키틀러, <기록시스템 1800.1900>, 윤원화 역. 문학동네, 486
7)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극장판>의 대사
8) 장 미셸 키노도즈, <리딩 프로이트>,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2011, 50
9) 유영미,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연구-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1893-1895)를 중심으로>, 울산대학교 대학원, 2013, 157. 장 미셸 키노도즈, <리딩 프로이트>,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2011, 50
10) 위의 책 50
11) 위의 논문 157-158
12) 위의 책 50
13) 제이 그린버그,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 이재훈 역, 현대정신분석연구소, 1999, 55-56
14) 위의 논문 158, 강응섭, <프로이트 읽기>, 세창출판사, 2021, 75-76
15) 위의 책 82-84
16) 장 미셸 키노도즈, <리딩 프로이트>,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2011, 51
17) 강응섭, <프로이트 읽기>, 세창출판사, 2021, 81
18) 장 미셸 키노도즈, <리딩 프로이트>,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2011, 51
19) 강응섭, <프로이트 읽기>, 세창출판사, 2021, 93-96
20) 장 미셸 키노도즈, <리딩 프로이트>,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2011, 52
21) 위의 책52, 강응섭, <프로이트 읽기>, 세창출판사, 2021, 80
22) 제이 그린버그,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 이재훈 역, 현대정신분석연구소, 1999, 59-60
23) 피터 게이, <프로이트 1>, 정영목 역, 교양인, 2011, 174-175
24)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김유동, 최성만 역, 한길사, 2009, 45
25) 위의 책 46
26) 지크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탄생>, 임진수 역, 2005, 292
27)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김유동, 최성만 역, 한길사, 2009, 45
28) 지크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탄생>, 임진수 역, 2005, 310
29) 잭 핼버스탬,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허원 역, 현실문화, 195
30) 앙토냉 아르토, <연극과 그 이중>, 이선형 역, 지만지드라마, 2021. 186
31) 위의 책 298
32) 발터 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김유동, 최성만 역, 한길사, 2009, 344
33) 위의 책 34734) 위의 책 350
35) 잭 핼버스탬,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허원 역, 현실문화, 2024 222,231
36) 위의 책 222-223
37) 위의 책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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