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것이다

 

공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것이다[1]

5층 높이의 회색빛 건물이 사라졌다. 건물이 사라지자, 건물 뒤편의 녹색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달 전쯤이었을까. 공사 펜스가 건물을 둘러쌌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팻말도 여기저기에 붙었다. “철거 작업 진행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공사장 입구에 펄럭거렸다. 공사장 소리가 듣기 싫어 멀리 돌아갔다. 오랜만에 공사장 앞길로 걸어가려는데, 두 달 만에 건물이 사라졌다. 2년 전만 해도 그 건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사무실이 있었다. 2주 정도 더 흘렀을까. 철거된 5층 건물 옆 건물의 외벽 구조물이 앙상하게 드러났다. 앙상하게 드러난 구조물 앞에 커다란 포크레인이 작업을 이어갔다.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가려는 마음을 먹었다가 여러 번 포기했다. 용기를 내어 카메라를 들고 포크레인과 부서지고 있는 철골 구조물이 가장 잘 보이던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이미 건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사라진 건물의 이름은 청년청이었다. 청년 창업인이나 청년 단체 활동가들이 그 건물에서 소위 말하는 ‘인큐베이팅’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쯤이었나, 아니 여기쯤이었나. 나는 혼잣말을 반복했다. 두어 달 만에 건물 두 개가 사라지니, 이전의 위치 감각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공사장 건너편 3층 다가구주택에 살고 있다. 주방 겸 거실과 큰 방, 작은 방으로 이루어진 열두 평 남짓의 집이었다. 아침이 되면 기다란 햇빛이 넓은 창문을 통해 집 가장자리까지 들어왔다. 그 햇빛이 마음에 들어 이 집을 골랐다. 내 집 옥상에 올라가면 건너편 공사장이 훤히 보인다. 덕분에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살필 수도 있다.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 그것은 내가 이 집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집 옥상에 올라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사장은 사실 공원이었다. 멀리서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충만하게 한다. 하지만 멀리서 공사장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물론 지금도 공원은 반쪽짜리 공원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사라질 공원이다. 공원의 구조와 형태, 성격과 성질을 단숨에 바꿀 힘을 가진 기관이 공원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철거 공사도 매각 준비의 일환이었다. 옛 흔적이 지워진 말끔한 공간이 아마 더 상품성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옛 흔적이 여기저기서 손가락질받던 흔적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빨갱이의 소굴이라거나 시민단체를 위한 ATM 기기라는 별칭이 공간에 따라붙었다. 쓸데없는 공간을 싹 밀어버리고 어서 개발하라는 목소리는 20년 가까이 공간을 휘감았다. 그 목소리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일단 건물들이 하나둘씩 철거되고 있다. 그 목소리들은 지금쯤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공원은 소중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공원은 내게 소중한 첫 연구 공간이었다. 나는 도시 개발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게 공원은 첫 연구 공간이 되어 주었다. 국가가 나서서 조성한 공공 공간이 민간 기업에 매각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은 나에게 매력적인 연구 주제였다. 공간을 다루는 정책의 기조가 변하거나 개발 정책이 진행될 때, 공간을 둘러싼 지역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정치가 어떻게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답을 찾을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혁신파크 연구를 시작했다. 공원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의 관심은 아마도 멋지고 그럴싸한 연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 공원을 지금 모습 그대로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미약했을 것이다. 멋지고 그럴싸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덕분이었을까. 나는 서울혁신파크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다.[2] 혁신파크 덕분에 부끄럽게나마 스스로를 ‘연구자’로 소개할 수 있었다.

부채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현장 연구를 마친 이후에도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오히려 현장 가까이 이사를 와버렸다. 가장 오랫동안 공원의 모습과 변화를 지켜보며 기록하고 싶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 호기로운 말을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공원의 변화를 묵묵하게 살피는 것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공원의 변화를 묵묵하게 살피겠다”는 다짐을 이곳저곳에 말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연구 중에는 평생 이곳에 살 것처럼 행동하다가, 연구가 끝나면 현장을 떠나는 다른 연구자와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측 불허의 상황이 거듭 발생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빈곤의인류학연구팀 2023: 9)하고, 가능한 세계를 그리는 역할 역시 연구자의 역할이라는 그럴싸한 말을 빌려와서, 2년 가까이 연구자와 활동가라는 위치를 오가며 공원 안에 있었다. 공원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공원 안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원에 자주 붙어있으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공원을 지키겠다는 사람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을 출범시켰다. 혁신파크에서, 서울 시청 앞에서 몇 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또 몇 번의 토론회를 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제 성격의 행사도 여럿 개최했다. 팻말을 만들어 출근 시간에 맞추어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카페는 명도 소송의 피고가 되었다. 일하고 있는 와중에 소장이 날아들어 왔다. 과태료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았다. 서울시는 꿈쩍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규합하는 것은 벅찼다. 지대 상승이라는 논리는 공간에 대한 논의에서 불패였다. 운동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왔다. 다른 동네에서, 다른 영역에서 사람들이 왔다.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마다 운동의 성격과 목적을 규정하는 방식은 달랐다. 한 정당은 공원 개발 반대를 총선의 주요 의제로 활용하려 했다. 운동도 커리어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운동의 목적은 뭐지?”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그 질문은 고갈된 나에게 좋은 변명거리가 되었다. 공원 바로 앞에 살면서, 공원 쪽으로 길 건너는 것도 힘들었던 나한테 좋은 이유가 생겼다. “운동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아”. 나는 순수했는지 자문하지 않았다. 분노와 무력감을 저항의 힘으로 바꿔야겠다고 집회에서 발언했지만, 나는 공원 앞에서 점점 무력해졌다.

2024년 9월 29일, 내가 일하던 카페는 문을 닫았다. 퇴거 요청 이후 11개월을 버텼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업소용 냉장고가 차례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책상들도 줄지어 공간을 비웠다. 각종 집기로 빼곡했던 주방이 텅 비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자, 서울시는 문에 각목을 박았다. 다시는 그 문을 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각목에 담겼다. 공간은 그렇게 부서져 갔다. 다음날 날이 밝자 공사 인부들이 찾아와 카페 앞 정원에 높은 비계를 설치하려 했다. 마치 당장 오늘이라도 철거 공사를 진행할 것 같았다. 각목으로 문을 막는 것도 모자라, 비계와 펜스를 설치하려는 상황에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부리나케 공원 안 카페 앞으로 달려와 버럭 화를 내며 막았다. 서울시의원의 중재 아래 협상이 이어졌다. 협상 끝에 펜스를 전면에 설치하지 않고, 카페의 주 출입구 부분만 펜스를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내가 마음을 내어놓았던 공간은 이제 각목과 펜스로 가로막힌 공간이 되었다. 다시는 불이 켜지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내 앞에 남은 것은 각목과 펜스였다. 나는 천천히 고갈되었다.

그림 1. 펜스가 설치된 카페 쓸 전면부 (작성자 촬영)

고갈된 나는 산으로 갔다. 새로운 연구 현장으로 도시 숲이자 산을 택했다. 새로운 연구 현장을 찾으면 다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원에서 만난 인연을 바탕으로 은평구의 봉산이라는 숲에서 숲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은평구청은 지난 2014년부터 위험 수목 정비라는 명목으로 편백나무를 봉산에 심어왔으며, 2019년부터는 “봉산 편백나무숲 꽃동산 조성”이란 사업을 통해 매해 약 5,000만 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하여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심은 편백나무의 수만 1만 3,000여 그루에 달하며, 면적은 13ha가 넘었다. 빈 땅에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기에, 1만 3,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수많은 나무를 베어냈다는 것을 말한다. 면적에 따라 단순 계산을 해보았을 때, 편백숲 조성을 위해 5,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졌을 것이다(봉산생태조사단 2023). 또한 2023년의 경우, 구청은 0.9ha 면적의 숲을 모두베기하고 편백나무를 심었다(봉산생태조사단 2024). 구청의 사업 목적은 고사목 제거와 간벌, 탄소흡수능력 상승을 위한 영급 개선이었다. 하지만 봉산생태조사단의 기록 결과에 따르면 306그루가 넘는 나무가 베어졌으며, 팥배나무 80여 그루, 참나무류 100여 그루, 아까시나무 70여 그루를 비롯해 소나무, 잣나무, 벚나무, 리기다소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물오리나무 등 수많은 나무가 잘려 나갔다. 이들의 나이 역시 10살 미만에서 56살까지 다양했다(봉산생태조사단 2024). 나이 든 나무를 베고 어린나무를 심어[3] ‘영급개선’을 했다는 구청의 설명이 무용해졌다.

그림 2. 봉산에서 잘려나간 306그루의 그루터기들
(출처 : 봉산생태조사단)

봉산의 생태계는 조금씩 파괴되고 있었다. 파괴된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결국 또다시 부서진 곳으로 향했다. 파괴되고 부서진 곳으로 나는 자꾸 향한다. 내 발걸음이 그런 곳으로만 향하는 것인지, 내가 이미 파괴되고 부서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만일 이미 파괴되고 부서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라면, 도망갈 곳은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수많은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고 있는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때려 부수거나 깨뜨려 헐어 버리는 세상, 조직, 질서, 관계 따위를 와해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4] ‘파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게 앞에 무너지지 않고, 고갈되지도 않고 살아 나갈 방법은 없을까. 힘들지만 부서지는 곳 옆에서 그 과정을 조금 더 지켜볼 수 있을까. 지켜본다면, 무엇이 파괴를 추동하는지, 부서짐을 가능케 하는 힘은 무엇인지, 파괴를 둘러싼 관계들은 어떠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힘들더라도 그것들을 끝까지 지켜본다면 다음의 부서짐이 왔을 때 막아낼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막아내기 어렵더라도, 잘 버티는 방법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잘려 나가고 부서진 나무의 그루터기 숫자를 세고, 그 수종을 일일이 파악하고, 나이를 가늠해 보고,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기록해 두었던 봉산생태조사단의 활동이 추가적인 벌목과 파괴를 막아내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오늘도 부서진 곳 옆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파괴되고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나는 파괴 앞에 무력해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겠다고 그래도 다짐해 본다. 내가 원하는 공간은 무엇인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더 말할 것이다. 그것이 부서지고 파괴되는 세상을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다짐이다.

 

주석

[1] 정치학자 채효정의 글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는 것이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채효정은 해당 글에서 단일한 미래 담론 속 ‘노동 소멸 신화’에 대한 반론으로 미래가 현재를 파괴하고, 현재 존재하는 노동을 강제 소멸시키는 점을 지적한다. 나는 채효정의 주장을 거울삼아, 깔끔하고 쾌적한 공간의 미래를 약속하는 개발의 환상성 뒤에는 기존의 공간과 삶이 부서지는 과정이 존재함을 말하고자 한다. 채효정의 글은 링크 참조.
[2] 김흥준, 2024, “개발이 유예된 곳에서,” 『비교문화연구』 30(1): 5-45.
[3] 영급개선에서 영급은 나무의 나이를 말할 때 쓰는 말이다. 한국은 나무 영급은 10살 단위로 정한다. 예를 들어 영급은 1살에서 10살, 4영급은 31살에서 40살의 나무를 일컫는다. 영급개선은 나이든 나무를 베어버리고 어린 나무를 심어서 숲의 탄소 흡수 능력을 높인다는 뜻이다.
[4] ‘파괴’와 ‘부서짐’ 자체가 문제적인가란 고민도 남는다. 삶의 공간을 개선하고, 존재들의 역량 강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부서짐’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례로, 지난 2022년 나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개발 정책에 대한 인류학 현장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인 쪽방촌을 허물고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여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환경개선을 가능케 하는 개발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희망과 염원이었다. 그렇다면 동자동 쪽방촌 개발에 수반되는 부서짐과 서울혁신파크와 봉산에서 진행되는 부서짐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공간 속 삶에 대한 관심이지 않을까. 서울시는 혁신파크 개발에 있어서 혁신파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은평구청 역시 봉산 내 기존 혼합림의 식생이나 생태종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부서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공간 속 다양한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은 부서짐이 문제적이다.

 

김흥준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동물해방물결이란 단체에서 일한다. 다양한 존재들의 삶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축산 피해 동물의 거주 공간인 생추어리(Sanctuary)와 나무와 새, 지피식물, 곤충의 터전인 숲에서 인간 너머의 개발을 고민하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의 초안에 전달했던 공간주의 편집진 의견 가운데 일부를 페이지 말미에 함께 수록합니다. 이후 개고 과정을 거치며 저자가 추가한 관련 내용은 위의 주석4 등을 참고 바랍니다. 이를 포함하여, 편집진이 건넨 대화에 중요한 내용으로 응답해주신 저자께 다시금 감사를 전합니다.

■ 안녕하세요. 공간주의의 ○○○이라고 합니다. 먼저, 도시 개발을 둘러싼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의 선생님의 경험을 보내주신 원고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투고문으로부터 플랫폼 공간주의의 지향과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저희가 도시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구상, 추구하고 있는 ‘공동제작’과 ‘공동진지’라는 방향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고민거리가 제기된 작업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만남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도시 개발 현장에서의 다중 정체성 사이에서 개입 역할과 고갈감, 움직임과 다짐에 이르는 고민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가령, 이른바 ‘연구활동가’라는 합성어의 단순 적용만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세밀한 결들을 읽어볼 수 있었으며, 이에 보내주신 투고문을 플랫폼의 독자들께도 빠르고 중요하게 공유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중략] 도시와 개발을 주요한 연구 관심으로 설정하고 있는 인접분야의 연구자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원고를 읽으며 개발로 집약되어 나타나는 도시적 현상의 이중성 내지 다중성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쓸 데 없는 공간”(1p)을 ‘쓸 데 있는’ 공간으로 전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물리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개발이라고 한다면, 그 중요한 기제의 하나는 그 ‘쓸모’에 대한 특정한 판단 준거의 구성 요인과 과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판단 준거 가운데 특정한 층위만이 공공성을 비롯한 여타의 다양한 가치와 논리에 앞서 정책화·특권화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최소한 서울 대도시권의) 핵심적인 작동 방식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막아내기’와 ‘버티기’의 방법을 찾고 계시는 선생님과 원고 후반부의 방향성에 중요하게 동의하며 또한 지지합니다. 또한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중요한 기대의 마음 역시 갖게 됩니다. 다만, 여기에 ‘개발’이나 혹은 포화된 도시 현실에서 개발에 수반할 수밖에 없는 ‘파괴’ 자체를 전적으로 적대하는 것이 아닌, 개발(과 파괴)의 다른 방향성에 대한 모색과 실천 역시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도시 현실을 상기해 볼 때, 투고문에서 다뤄진 현장의 그것과도 유사한 욕망과 개발 논리로 구축되고 있거나 이미 구축된 수많은 문제 지대와 배제적 영역을, 이와는 다른 (이를테면 ‘공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쓸모’를 가지는) 가치에 기반하는 형태와 내용의 지대로 전화시키는 과정에도 개발 과정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의 의문이 그 까닭입니다. 도시의 포화 상태, 그리고 (또한 무한정의 확대 역시 분명한 부작용을 가지는) 도시 구조와 같은 도시 현실에 대한 진단을 경유해 볼 때, 다른 ‘대안적’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변화(의 한 형태로서의 다른 ‘개발’) 역시도 결국은 어떠한 스케일의 공간에서든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공적·대안적 ‘쓸모’에 대한 추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공간의 부서짐’은 선생님께서 다뤄주신 현장의 ‘공간의 부서짐’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게 되는지의 질문과 함께, 어떤 다른 개입의 논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궁리 역시 또 다른 스텝으로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성의 이론적 논의를 단순화해 말한다면, 건조환경에 반영되고 이를 통해 재생산되는 권력구조의 정지상태를 자연화하거나 낭만화하는 장소론의 보수(주의)적 함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와 방식의 개발에 대해서는 제기해주신 바와 같이 ‘막아내기’ 및 ‘버티기’를 병행하면서도 또 다른 종류와 방식의 개발에 대해서는 도시공간의 공동제작에 대한 개입 방침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질문이 생기며, 선생님의 원고를 계기로 스스로도 다시금 고민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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