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주의 쇼트는 짧은글, 습작, 메모노트, 아이디어노트, 소식 등 가벼운 작업물을 부담 없이 저장하고 공유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제 *짧게* 주의해보십시오.
이 글은 다음의 세 논문을 종합하여 작성한 논평문을 보완한 것입니다.
- Xiang, B. (2021). Suspension: seeking agency for change in the hypermobile world. Pacific Affairs, 94(2), 233-250. DOI: 10.5509/2021942233.
- Ou, T. C. (2021). Spaces of suspension: construction, demolition, and extension in a Beijing migrant neighbourhood. Pacific Affairs, 94(2), 251-264. DOI: 10.5509/2021942251.
- Zhan, Y. (2021). Suspension 2.0: Segregated Development, Financial Speculation, and Waiting among Resettled Peasants in Urban China. Pacific Affairs, 94(2), 347-369. DOI: 10.5509/2021942347.
성중촌 사진 출처: http://tuchong.com/471082/13328033/
샹뱌오(Xiang, 2021)는 초이동(hypermobile) 시대에 부유(悬浮)라는 단어를 통해 현대 중국 사회를 설명한다. ‘부유’란 공중에 떠있기 위해 계속해서 날개를 펄럭이느라 마모되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벌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로, 정착하지 못 하고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계속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 못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샹뱌오는 중국 사회에서의 농민공(农民工)의 상황, 도시에 정착하기도 어렵고 시골로 돌아갈 수도 없는 도농 격차 사이에 놓은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지만,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연시키는 상황은 중국 농민공만의 현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유 상태의 지속은 이동과 정주, 계급 의식, 정체성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간의 변화까지도 초래한다. 그리고 부유하는 공간의 생산은 다시금 사람들이 부근(附近)에서 멀어지게 하고, 크고 작은 사회의 개선에 관심을 잃게 한다(項飆, 2020/2022).
최근 나는 동료들과 함께 플랫폼과 도시공간에 관해 연구하면서, 플랫폼으로 인해 도시 공간이 ‘팝업(pop-up)’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팝업이란 도시 공간이 다양한 ‘임시 용도’에 의해 지속해서 변형을 거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팝업 스토어나 팝업 주택과 같은 일상 속 다양한 관행을 통해 이를 접할 수 있다(Harris, 2015). 팝업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로부터 느낄 수 있듯, 빠른 생성과 소멸을 전제로 하는 역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리가 플랫폼 연구를 통해 확인했던 것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어떻게 도시 공간의 유연성을 촉진하고 있는가였다면, 오우쯔치(Ou, 2021)의 연구를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팝업이 자본주의 역학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더욱 깨달았다. 오우쯔치는 베이징 변두리 마을에서 2년간의 현장연구를 통해, 중국 정부의 거듭된 단속에도 불구하고 성중촌(城中村)이 지속되고 번성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여기서 성중촌이란 말 그대로 도시 안의 촌락을 뜻하는 것으로, 행정구역상 주로 도시에 포함되지만 대개 외지 출신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촌락이다. “이들 성중촌은 도시의 시가지 공간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연쇄적으로 철거되어 재개발되는 한편, 거주지를 잃은 기존 이주민들과 새로 유입되는 이주민들이 보다 저렴한 거주 공간을 찾아 개발이 덜 된 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더 외곽 지역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장호준, 2016, 14쪽)

중국은 도시토지는 국가가, 농촌토지는 집체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도시화 과정은 집체 소유인 토지를 국유로 바꾸는 과정을 수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은 불법 건축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자 시도하며 벽돌 더미, 콘크리트 포대, 잔해 더미가 사방에 널려 있는 모습은 성중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다. 오우쯔치가 연구한 베이징 후아 성중촌도 대규모 철거와 재건축이 반복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민이 저렴한 비용으로 도시 경제에 진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점차 국유 도시로 전환되면서 농지를 잃은 주민들은 이주민에게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사람들은 미래에 집을 사기 위해 지금의 희생을 감수하며 이곳에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다. 단편적인 철거가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마을이 어떻게 바뀔지 주민들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점검과 철거 역시 불규칙하다. 철거 역시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가 진행된다. 불법 건축물에 있어서도 눈 감고 넘어가거나 혹은 일부 마을 주민들은 불법 건물 철거가 단순히 ‘做样⼦(흉내만 내기)’라 여기기도 한다. 일종의 쇼처럼 여겨지는 감독관의 점검이 떠나면 건물주들은 곧바로 다시 건물을 재건한다. 물론 정부가 강력하게 법으로 집행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점검과 철거를 통해 임대 주택의 무분별한 확산을 ‘통제 가능한’ 일정 경계 내에서 억제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항상 공격적으로만 이 공간을 철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 정부는 이러한 임시 주택을 근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도시 경제에 필요함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중앙 정부는 이러한 임시 건축이 통제 불능 상태에 다다르지 않도록 반복적인 점검과 철거를 시행한다. 시 정부와 중앙 정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 정부는 왜 이러한 임시 주택촌이 도시 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연구자의 관찰에 따르면 후아 마을에 거주하는 중년 이주자들은 가사 노동, 청소 노동, 건설 노동 등에 종사하는 경향이 있었고, 젊은 이주자들은 IT 프로그래머, 회계사, 부동사 중개인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나열된 직업들은 모두 베이징의 도시화를 지탱하는 직업들이다. 후아 마을이 ‘베이징’ 북부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은 이 연구에 등장하는 모든 행위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는 듯 보인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국가의 도시계획으로 인해 농촌 토지가 빠르게 도시 토지로 전환된 사례 그 자체는 크게 낯설지 않지만, 아주 공격적이지도 아주 소극적이지도 않은 정부의 철거와 그로 인한 빠른 마을 재건의 과정은 매우 특수한 중국 도시의 팝업 양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임시 주택촌은 모든 것이 임시적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은 생활면에서도 편리하지만, 이주민들이 소규모 사업을 쉽게 시작하는 계기로도 작동한다. 임대료가 베이징보다 저렴한 것도 이러한 성중촌의 큰 장점이다. 그러나 잦은 점검과 철거로 인해 자주 이동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철거가 이루어질 때마다 이주민들 간에 네트워크는 해체되고 이로 인해 이들의 사회적 관계와 연대는 취약해지거나 끊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 체류자로 생각하고 설령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다른 도시에서 집을 살 계획인 경우가 많아서 이 마을에서의 미래나 개선을 꿈꾸지 않는다. 이러한 부유의 공간은 일정 부분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매력적인 공간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보호도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도 없는 공간이자,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서 공격적인 정부의 철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사람 간의 친밀함 뿐만 아니라 사람과 지역 사이의 친밀함도 발생하기 어렵다. 더욱이 짠양(Zhan Yang, 2021)의 연구에서처럼, 사람들은 매우 불명확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붙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를 위해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현재가 어떻게 상상 속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두 연구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샹뱌오는 역학 관계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얽혀 있는 발전을 ‘복합적 발전(complexed development)’이라 일컫는데, 이는 ‘발전’이라는 것이 시점에 따라 주민들을 풍요롭게도 하고 소외시키기도 하는 모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발전 과정에서 주민들은 경제적 참여를 확대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소외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발전은 ‘발전’이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그저 투명한 기표로 남는 상황에서도, 또 여러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를 인내하게끔 추동한다. 복합적 발전이 지닌 모순은 이러한 ‘발전’과 주민인 ‘나’의 관계를 추측하기 어렵게 하며 혼란을 일으킨다. 샹뱌오는 “현재를 문제 삼고, 다른 집단적 미래를 구상하고,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여정을 계획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235쪽)을 이동하는 노동 인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부유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이미 삶의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끊임없이 억압되면서도 여전히 특정한 ‘욕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연구자는 계속해서 상기할 필요가있다. 도시에서의 팝업을 말한 해리스는 팝업이 지속해서 단절을 만들면서도 기존의 도시 프로세스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급격히 도시로 전환되었다고 해도, 도시 내 철거와 재건축이 지속해서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후아 마을 내부의 프로세스가 완벽하게 단절되었다가 다시 생성되었다는 것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취약해진 연결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얽히고 연결된 것들에 관해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단절과 연결, 소외와 참여가 동시에 발생한다면 그 역동적인 역학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연구자-작업자의 역할일 것이라 생각한다.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문화인류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동아시아와 이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