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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은 ADOR의 총괄 프로듀서이다. ADOR라는 회사 이름은 독특한 공간성을 제시하는 회사 이름이다. ‘all doors, one room’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방 하나. 문만 있음.’ 문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사방의 벽이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 공간일 수 있다. ‘다공성’이다.
뉴진스는 ADOR 소속 걸그룹이다. 뉴진스의 아이코놀로지에서 토끼는 뉴진스를 가리킨다. 뉴진스를 상징하는 로고가 토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끼는 뉴진스의 팬덤을 가리키기도 한다. 뉴진스 팬의 공식 명칭이 버니스(bunnies)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토끼는 ADOR의 총괄 프로듀서 민희진이기도 하다. 다음은 2023년 1월 인터뷰 발언이다. “<Ditto>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기 직전이 떠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10년 전, f(x)의 ‘핑크 테이프’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회사에 새로운 개념의 필름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너무 신나서 가슴이 두근거렸죠.” 민희진은 대다수의 토끼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높은 심박수를 유지하는 존재이다.
문으로만 이루어진 원룸의 잠재적 다공성은 이를테면 토끼굴의 다공성이다. 토끼들이 사는 땅굴은 통로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 공간은 전체가 하나의 복잡한 방이다. 민희진의 작업실 벽면에 붙어있는 파이프는 민희진적 공간의 통로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토끼가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처럼 (‘all ears’), ‘호기심이 많고 무모한 기질’의 민희진은 모든 재미의 가능성을 향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 (‘all doors’)
토끼굴적인 공간에서 민희진이 점하는 위치는 엄마의 위치이다. 실제로 민희진은 ‘엄마’를 자처한다. 민희진은 확실히 엄마이다. 뉴진스를 ‘가슴으로 낳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멤버들의 엄마와 동년배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높은 가성비를 확보하고, 남부럽지 않게 가정을 운영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엄마적인 능력이라 하겠다. 특히 생활비의 규모가 옆 집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우리의 예산은 타 회사나 다른 레이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엄마이긴 엄마이지만, 그러나 토끼의 엄마라는 점에서 엄마 토끼이다. 새끼 같은 측면을 내재하고 있는 토끼 같은 엄마인 것이다. 말이나 소와 구별되는 토끼의 특징이 있다. 성체가 새끼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쿠키>는 민희진의 비-엄마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엄마의 입장에서는 식사에 대한 디저트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편, 민희진은 사춘기 감성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깊다. 민희진은 사춘기 문법의 전문가이다. 그런데 그는 사춘기적 감수성의 효과적인 연출에도 소질이 있지만, 자기 자신이 일종의 사춘기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는 한 치의 오해, 한 치의 몰이해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소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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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의 공간성은 그 안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 나올 수 있는 공간성이다. 실제로 토끼는 굴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튀어 나온다. 여러 구멍 중에서 어느 구멍으로 나올지도 알 수 없다. 토끼굴은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마술사의 모자’ 같은 공간이다. 민희진은 스스로를 ‘의외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소개하기를 좋아한다.
민희진은 <Ditto> 도입부의 허밍 부분을 ‘하얀 눈밭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슴’의 이미지와 결부시킨다. ‘하얀 눈밭’과 ‘사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해도 좋다. 중요한 부분은 ‘갑자기 툭 튀어나옴’이다. 사슴의 갑툭튀는 요컨대 토끼의 갑툭튀이다. 뉴진스는 확실히 ‘갑툭튀’이다. 토끼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토끼이다. ‘갑툭튀’ 라는 속성은 일종의 비전형성을 내포하고 있는 속성이다.
뉴진스의 비전형적 부분을 잘 보여주는 곡으로 <쿠키>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쿠키>의 화자는 소구대상을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우리 집에만 있지 / 놀러 와’. 현실 세계에서, (몇 가지 조건이 총족 되었다는 전제 아래) 식사의 제공(‘라면 먹고 갈래?’) 및 음료의 제공(‘둥글레차 한 잔 하고 갈래?’)을 권유하는 유형의 초대는 육체 결합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래서 ‘쿠키’라는 디저트의 제공 또한 성적인 함의를 가진 것인지, 혹은 가지지 않은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쿠키’는 ‘내가 만든 비전형적 K팝’를 가리킨다. ‘내가 만든 쿠키’는 하얀 눈밭의 사슴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K팝이다. 민희진은 “기존의 K팝이 지향해온 다소 전형적인 멜로디 전개 방식이나 가창 스타일 등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 (…) 그런 요소를 제한 결과물이 세상에 등장하길 바랐[다].”
뉴진스는 대중의 관심(attention)을 확실히 원한다. 그런데, 대중의 전형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관심을 얻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식사는 없어 배고파도 / 음료는 없어 목말라도’ 라고 노래하는 후렴구는 ‘기존의 K팝’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반영하고 있다. ‘내가 만든 쿠키’는 ‘그런 요소들을 제한 결과물’에 해당한다.
노래 뒤쪽으로 가면 뉴진스는 ‘레시핀 없어 / 딴 데서는 못 찾아’ 라고 노래한다. ‘레시피’가 없다는 것은 ‘K팝 공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희진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공식을 깨고 싶은 사람이다. 어떤 이들이 자신 있게 주장하는 K팝 성공 공식이라는 것을 깨버리고 싶었다.” 이렇게도 말한 적 있다. “‘이런 스타일이 먹힌다’, ‘이런 게 정답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좀 답답해요. 정말 그런 공식이 있다면 일부가 아닌 모두가 성공했겠죠.” 요컨대, ‘레시핀 없어’ 인 것이다.
3 .
토끼굴은 ‘울림통’이 되기도 한다. 토끼굴 바깥의 동떨어진 공간과 일정하게 공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Ditto>의 도입부 허밍을 들었을 때 민희진은 순간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시각화 했다. ‘하얀 눈밭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슴’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해당 이미지는 민희진의 주관적 이미지이지만, <Ditto> 공식 뮤직비디오에 비해서 민희진식 공간 구성의 개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래도 <Ditto> 뮤직비디오는 타 작업자에게 전권을 부여하여 얻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뮤직비디오에도 ‘사슴’이 등장하기는 등장한다. 하지만 그 사슴은 ‘하얀 눈밭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슴’은 아니다.
민희진의 내부에서 발생했던 몽타쥬를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자. <Ditto> 도입부의 허밍은 여성의 허밍이다. 에코 또한 걸려 있다. ‘여성의 에코 걸린 허밍’과 ‘눈밭’ 이미지의 몽타쥬는 독특한 공간성을 암시한다. 여자의 가성이 메아리 치는 눈밭이라! 그런 공간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공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희진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특이한 공간이다. 그 공간의 배후에서 프랑시스 래(Francis Lai)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래의 곡 <Snow Frolic> 또한 한편으로는 여성(Danielle Licari)의 에코 건 허밍, 다른 한편으로는 눈에서(snow) 즐겁게 뛰노는(frolic) 이미지를 결합하기 때문이다. 민의 공간성과 래의 공간성은 서로 공명하면서 부- 떨린다.
<Ditto>의 허밍은 <Attention> 후렴구 너머로 들리는 허밍에 대한 에코이기도 하다. 실제로 민희진은 <Ditto>가 팬들의 관심(attention)에 대한 답례이자 ‘피드백’이라 밝힌 바 있다. 민희진은 세계관의 존재를 부정한다. (“나는 K팝이 말하는 세계관에 반감이 많은 사람이다. 뉴진스는 K팝에서 말해온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없는 팀이다.”) 하지만 간텍스트적 피드백 효과가 민희진적 공간 구성의 짜임새를 가늠하게 하는 점은 사실이다.
4 .
민희진의 집 공사를 담당한 작업자는 물었다. ‘이곳은 일반 가정집이 아닌가 봐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토끼굴의 공간성은 일반 가정집의 공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끼는 일반 가정집에서 거주하기 싫어하는 들짐승이다. 토끼는 딱딱한 어둠 속으로 굴착해 들어간다. 토끼는 쉽게 상처받는 존재이다. 토끼굴의 가장 끝, 가장 깊은 공간에는 종교가 있다. 엄마 토끼의 배후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다. “하나님께 의지를 많이 한다. 삐뚤어지지 않은 내 의도를 누구보다 제일 잘 아시니 도와주시길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새로운 재미의 세계로 가는 문이 많이 달린 토끼굴의 뒷켠에 민희진은 영성의 영역으로 가는 뒷문 (back door)을 열어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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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연구자. 이른바 ‘공간적 전회’에 대한 지식은 짧습니다. 그치만 공간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고방식에 언제나 유혹 당하고는 합니다. 그중에서도 ‘감성의 형식’으로서의 공간 개념은 생각할수록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동숭동 후미진 정원 (‘솔방울.고백.전략’)에 앉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