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모든 실재들 사이의 실재

 

알라딘: 에스에프널 SFnal 2022 Vol.2 (aladin.co.kr)

에스에프널 2022 Vol.2를 빌려서 모린 맥휴의 <노란색이 있는 현실>(Yellow and the Perception of Reality)을 읽었다.

화자는 사회복지사고 라틴계 여성이고 동생으로 수학 천재 신경물리학자?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다. 화자의 동생은 문어의 지각과 실재에 관한 어떤 실험에서 사고로 지각되는 ‘현실적’ 대상 혹은 실체들의 경계를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예를 들어서 그는 샌드위치를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초록색 상추 질감과 맛, 빵과 이것저것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다발로 지각한다. 작중에서는 이를 전지구적 실인증 상태라고 부른다.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이 와해된 상태를 이르는 방식인 것 같다.

소설은 고양이에게도 의식이 있을까? 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해 화자의 동생과 그의 동료들이 연구하던 문어를 일종의 실마리 내지 개연성을 주는 매듭으로 제공한다. 한때 남한에도 번역되어서 화제가 되었던 문어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문어의 신경계에 관한 어떤 글에서 문어는 사지와 감각, 의식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 전체에 편재하는 무엇인가로 다뤄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상어가 인간이 시각과 청각에 의지하는 방식과 달리 펄스를 감지하고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처럼 문어는 문어 나름의 체화된 인지를 가지고 세계와 실체들의 경계를 지각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어를 상대로 개발되었던 지각의 방식을 확장하는 어떤 헤드셋을 자신들 스스로에게 적용한 과학자들이 당한 끔직한 사고와 살인, 자살이 강한 관계가 있을 거라는 어떤 실마리를 남겨두는 것이다.

소설이 제시하는 또 다른 주제는 실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화자는 자기 동생과 같이 연구했던 젠틀하지만 눈치 없고 재수 없는 학구열로 불타는 어느 인지과학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여기서 학자는 양자정보의 관점에서 우리 직관에 들어맞는 뉴턴식 물리계와 달리 정보의 저장용량은 부피가 아니라 표면적에 좌우된다는, 그러니까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과 실재로 현실이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상의 인공생명들을 상대로 진행한 무수한 실험에서 실재가 존재하는 그대로 지각한 인공생명들은 100% 멸종하였고 번식에 적합하게 실재를 지각한 개체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음 장면에서 실인증에 걸린 동생을 끌어안는 화자.

번식에 적합한 인식론? 이라는 수사는 내 머릿속 어떤 맥락에서는 번식하는 삶이라는 목적? 을 넌지시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초점을 지각과 실재의 괴리 쪽에 맞추어서 실인증에 걸린 화자의 동생을 인간적인 존재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지각과 실재의 필수불가결한 괴리’가 와해된 자로 해석한다면 좀 더 너그럽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러니까 번식을 생명활동 일반을 가리키기 위한 환유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문어에게 화자의 동생과 그의 동료들이 시도하고 다시 그들 자신에게 했던 실험이 지각과 실재 사이의 거리를 변형하거나 그 둘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실험이었고, 그 결과 세계가 실재하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게 된 결과가 그들의 파멸이었다면?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각과 실재의 괴리 위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환기시켜주는듯 하다.

하지만 어떤 지각과 실재의 괴리를 인식과 존재의 불일치 혹은 이데올로기론의 관점에서 다룰 때 이러한 인지과학의 ‘과학적’이고 ‘다채로운’ 세계에 관한 어떤 찬가? 를 다시 생각할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인식과 존재의 괴리로 우리의 존재양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식과 존재가 괴리되는 양식을 어느 영역과 어느 세계들에 대해서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koi

SF를 읽고 범속한 세계의 모습을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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