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이하 ‘팔연대’)의 5월의 책읽기 모임에 다녀와 작성한 후기로, 이후 팔연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책읽기 모임의 책은 원혜진 작가님의 <필리스트>였습니다. <필리스트>는 팔레스타인의 한 ‘점령촌’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이 글에서는 ‘이동’에 보다 주목하여 독해를 시도해보았습니다. 다음 책읽기 모임은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을 함께 읽는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추후 팔연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지난 겨울, 임시직으로 일했던 곳에서 만난 팔연대 활동가의 집에 방문했고, 우리는 <인디파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보드게임을 했다.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점령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게임을 통해 내부 지역을 이동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고, 동시에 공통된 제약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우연히 모빌리티 세미나에서 하가르 코테프(Hagar Kotef)의 <이동과 자유>(2015/2022)라는 책을 읽었고, 거기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둘러싼 이동에 대한 통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동과 자유>에서 나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진을 보았는데, 이 사진은 바로 예루살렘과 구시 에치온 정착지를 잇는 60번 도로의 모습이다. 위에 있는 직선 도로는 이스라엘 시민과 관광객만 이용할 수 있고, 아래의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다닐 수 있는 도로다. 하가르 코테프는 이 사진을 인용하며 “여기서 이동이란 하나의 상징이자 동시에 테크놀로지이자 분리의 대상(또는 문제)”(114쪽)라고 지적하면서, 이 사진이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이스라엘 점령의 운영 방식과 규칙에서 이동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같은 쪽)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인의 이동은 빠르고, 보호받지만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은 느리고 방해받으며,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러한 차이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위에 있는 도로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아래의 도로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점령지에 퍼져 있는 수많은 검문소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지연시키고, 기약할 수 없는 생활을 구성한다.

이스라엘은 장벽, 군사 검문소, 도로와 같은 물리적 장애물을 활용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었고, 이는 코테프가 지적하였듯 이스라엘의 점령 방식과 규칙에서 핵심적이었다. 이러한 점령에는 생체 인식 신분증, 여행 허가증, 점령 지역의 인구 등록 시스템을 이용한 감시와 제한도 동원됐다. 책모임에 참여한 이후 추천받은 IMEU(중동이해연구소)의 한 자료를 읽고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녹색 신분증을, 동예루살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파란색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녹색 신분증을 가진 이들은 특별한 허가 없이 예루살렘이나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 진입할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밖에 사는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방문하는 것에도 해당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바깥에 내부보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은 이러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귀환 권리를 거부했다.
나는 학술서와 뉴스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파편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이러한 제약들이 어떻게 그들의 실제 생활을 구성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필리스트>(원혜진, 2021)를 읽고 싶었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5월의 책읽기 모임에도 참여를 결심했다. <필리스트>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여러 폭력과 제약이 등장하지만, 이 글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이동의 문제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책에서 이동이 제약받기 때문에 거의 등장조차 하지 못하는 인물이 바로 아빠 다르위시다. 의사인 그는 가자 지구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몇 년째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6년 만에 돌아온다던 그를 가족들은 기다리지만, 또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검문소에 통행 허가 서류를 제출하고, 반나절을 기다리고 있었대. 그런데 갑자기 보안 문제를 핑계로 취소시켰다는구나.”(31쪽) 책이 끝날 때까지 아빠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한다.

책의 배경은 ‘쿠프리깟둠’이라는 마을로, 이스라엘 군인들과 유대인들이 언덕 위의 마을 사람들을 내쫓고 ‘점령’한 곳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빨간 지붕을 얹은 하얀 집들을 짓기 시작한 그들은 어느 날 마을 도로도 막아버린다. 도로가 막히면서 사람들은 이동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고, 마을 길을 열고 불법 연행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기 시작했다. (책읽기 모임에서 팔연대 활동가분들이 꼬여버린 이동 과정을 디지털 지도를 통해 보여줘서 이들이 느낄 불편함을 더욱 알 수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리나가 일곱 살인데, 리나가 태어나기 1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니 8년째 진행 중인 것이다. 리나네 집과 리나네 할아버지 농장 위쪽에 바로 점령촌이 만들어진 바람에 할아버지는 “우리 집을 지키는 게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거”(51쪽)라고 말한다. 엄마와 할아버지가 집회 중에도 집을 떠날 수 없는 이유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 이 집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인 이유도 점령촌과 맞대고 있는 집의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군은 리나의 집과 할아버지의 농장을 공격하며 점유 면적을 늘리고자 지속해서 시도한다. 이들의 거주권과 마을의 경계선은 계속해서 위협받는다.
<필리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 부분이다. 이곳에선 숨이 막힌다며 떠나겠다는 손녀 마리암에게 할아버지 이브라힘은 말한다. “하지만 아가야, 떠나는 건 네 자유지만,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애쓰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라.”(61쪽) 운동(movement)은 한국어에서도 영어에서도 ‘몸을 움직이거나 공간적 위치를 바꾸다’는 뜻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쓰다’는 뜻을 함께 지닌다. 그래서 마치 후자의 의미에서 운동한다고 했을 때 어떤 역동적인 움직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집을 지키는 아브라힘의 모습은 자리를 지키는 것 역시 강력한 운동이고 투쟁임을 상기시킨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과거의 마리암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이 땅 밖으로 나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떠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제재와 위험을 뚫고 가야 하는 일인지도 알지 못했을뿐더러, 떠나지 않는 것이 땅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투쟁이 될 수 있음을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필리스트>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동과 거주라는, 모든 이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권리를 곳곳에서 침해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은 더 많은 땅을 점령하고자 시도하고, 더 많은 장벽과 검문소를 세워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고자 시도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이에 대항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저는 이 순간에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신이여, 부디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하소서.”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어느덧 서울살이 8년 차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터를 잡고 살지 고민 중이다. 문화학을 전공했고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 몸-환경의 관계, 그리고 이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