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식물일기2; 20200701

 

– 식물 꿈

식물과 살다 보면 식물과 관련된 꿈도 하나씩 꾸기 시작한다. 나는 주로 내가 몰입하면서도 몰입한 줄 몰랐던 생경하고 작은 일상을 다시 경험하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기의 순간을 시뮬레이션하는 꿈을 꾼다. 식물도 이제 그런 일상과 위기의 일부다. 오늘 점심엔 써니사이드업으로 조리한 달걀을 올린 김치볶음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낮잠을 잤다. 이것저것 바보 꿈을 꾸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꿈이었다.

식물꿈에 입장했을 때 나는 커다란 원룸에 있었다. 그 원룸은 크기가 15평은 되어 보이고 전혀 나누어져 있지 않은 정사각형 모양의 큰 방이었는데 천장도 거의 2층 높이여서 빛의 양에 비해서 넓고 높고 어두웠다. 어둡고 조금은 습하지만, 빛과 안락함이 있는 큐브. 내가 꿈에 처음 들어온 방 왼쪽 아래의 모퉁이에는 침구가, 왼쪽 위 모서리와 방의 위쪽 변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같은 조리시설이, 오른쪽 위 모퉁이에는 입구가,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는 촉촉한 흙이 있었고 가운데 무궁화가 수직으로 줄기를 올리고 있었다. 흙 이곳저곳에는 넓적한 돌이 있었고 이끼가 자라 있어서 무척 이상했다. 방 안에 이런 정원이라니. 모퉁이 정원 더 안쪽에는 천장보다는 낮은 나무가 좀 자라고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어둡고 큰 정육면체의 방을 걷는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면 내가 금붕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항 같은 방. 나는 어항 같은 방을 가로질러서 갔다. 싱크대로 갔는데 거기에는 냉장고 두 대가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냉장고 문은 둘 다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기르는 식물이 있었다. 화분이 가득한 냉장고 속에 내 식물이 있는데 냉장고 안에 식물이 있는 점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냉장고 안에 물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화분들이 저면관수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면관수는 화분의 물받침에 물을 가득 부어주는 방식으로 하는 것일 텐데. 냉장고 안에 물이 가득했지만, 흙은 날리지 않았다. 식물들은 거기가 원래 자신의 장소인 것처럼 반찬통처럼 가지런히 들어가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항 같은 방의 물고기 같은 나. 어항 같은 냉장고의 물고기 같은 식물들. 잎이 물에 푹 잠겨 있어서 걱정되었다. 걱정. 그런 감정이 들자마자 걱정은 구체적인 사건이 되었는데 나는 내 비단삼나무가 너무 오랫동안 저면관수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냉장고를 하나씩 열어 보고 삼나무를 찾았는데 냉장고에서 물은 쏟아지지 않았지만 삼나무는 어느 냉장고에도 없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짝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 식물과 만나기

아산은 작은 도시고 수목이 많다. 사실 아산이 어떤 도시인지는 토박이도 아니고 도심에 사는 것도 아닌 나는 잘 모르겠다. 천안과 접경에 있는 작은 시가지를 걸으면서 조금 생각을 할 뿐이다. 동네 길을 걸으면 보도블록 사이사이 뿐 아니라 맨홀과 길 가장자리 이곳저곳에 초록 잎이 나와 있다. 서울처럼 극단까지 도시화가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어서 시 당국도 생태환경을 인간의 일상적 주거공간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열심인 것 같다. 내가 사는 주택가가 모여 있는 지역 근처에는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잘 조성된 공원과 산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주택 거주민도 작은 정원을 꾸려서 율마부터 토마토, 감자, 다육식물까지 여러 식물을 가꾸면서 이 초록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황톳길과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여러 식물을 본다. 화훼시장이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자귀나무가 3m 크기의 조경수로 자라 심겨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단단한 열매가 영글어 있는 상수리나무를 볼 수도 있다. 이름을 잘 모르겠는 하얗고 노란 들꽃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우거져서 풍경을 지저분하고 충만하게 만든다. 산책로 가운데를 따라 심은 묵직한 수형의 침엽수 사이를 걷다 보면 통통한 꿀벌이 바람을 타고 꽃에 앉아 분주히 움직인다. 짙은 녹색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생경한 장면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인공물보다 식물이 더 많은 이 풍경 속을 움직이면 가슴이 어떤 물질로 꽉 찬다. 이런 세계를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같이 이 공기 속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울에서 길을 걸으면서는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식물을 기른 뒤부터 나는 서울의 일상공간에서도 많은 식물을 발견했다. 길가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사이에서 몰래 작은 식물이 자라나고 공무원의 눈을 피한 잡목은 몇 미터 크기까지 자라난다. 도심의 여기저기에도 가로수가 많고 작은 화단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인지환경은 내가 식물에 집중할 수 있게 하지 않는다. 너저분한 간판과 플라스틱 입간판, 인파와 차를 애써 무시하고 장애물로 여기며 피해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의 혼잡한 인상만 남게 된다. 여기서는 식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길가에 멈춰서 식물과 뭔가를 선뜻 시작하기에 서울은 최악의 도시다. 단순히 식물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식물과 어떤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제 식물을 길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인파를 헤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과 차를 피해 식물의 곁에 머무르는 일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다른 양식은 뭐가 있을까. 등산? 한 지인은 마당에서 정원을 가꾸던 문화가 경제상황과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등산 문화로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서울이 마당을 갖기 힘든 도시가 되면서 산에서 식물을 만나는 문화가 되었다는 얘기다.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식물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에게 선뜻 등산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나는 네트워크 이곳저곳에서 교점을 만들며 정보와 식물을 나누고 매매하며 어떤 집단적인 몸과 감정을 만드는 사람들에 관하여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에게 그 공동체의 성원이 되보지 않겠냐고 권하고 화분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식물 클러스터에 속하기 위한 아이디를 만들고 식물과 화분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분무기와 물뿌리개, 모종삽, 수액, 농약의 종류와 쓰임새를 조금씩 배우면 될 것이고 나중엔 식물 종자와 삽수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충 방제 정보를 알려주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가 여러 식물계를 팔로우하고 식물을 돌보고 이미지를 올리면서 이 문화의 일부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주선과 확장이 집과 식물계 네트워크라는 제한된 친밀함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걷는 일상의 여러 공간으로 퍼질 수도 있겠냐는 물음이 들기도 한다.

 

김영대

테크노사이언스와 미디어의 생태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역동을 좇고 있다. 또 사회의 행위자뿐 아니라 연구자 자신에게 기술적 장치가 미치는 효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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