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페미니스트 도시를 위하여

For the Feminist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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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레슬리 컨의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더 넓은 포용성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 원제목 “Feminist City”를 가져와 이 글에 제목을 붙여 보았다. 책은 여성 친화적 도시가 “완성에의 유혹에 저항하는, 완성 계획이 없는 프로젝트”(264)라고 말하며 마무리된다. 자못 시시한 마무리처럼 느껴지면서도, 서로 다른 도시 환경과 맥락, 도시 내부 구성원들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강조했던 전체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보다 나은 결론은 떠오르지 않는다. ‘여성’ 나아가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이 끝없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면, 결국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아이디어들을 덧붙여 나가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 도시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왜 도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도시 공간을 논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컨이 지적하듯, “도시 환경은 가부장제, 성차별적 노동 시장, 전통적 성 역할을 지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22) 도시가 국가, 글로벌 스케일 등에서 대표성을 갖는 공간 중 하나일 때, 이러한 지탱은 도시 공간이 특정 체계를 도입하거나 혹은 기존의 지배 체계를 지속 및 강화하는 데 매우 강력하게 일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드러내고 지적하는 과정은 기존의 체계가 낳는 간극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또한, 도시는 비교적 개방되어 있고, 다양한 차이를 지니는 구성원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는 “다층적인 스케일의 문화와 정치의 측면들이 상호 교차되는 개방성과 차이의 지점”(8)으로, 다양한 저항과 실험의 공간이다. 컨이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성적 지향, 장애 등의 요소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읽어 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도시가 차이들이 만나는 공간이자, 차이들이 지속해서 생산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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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시들은 특정한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당연한 소리지만) 서로 다르다. 도시 구조나 형태가 성차별적 체제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예시로 컨은 ‘교외(superb)’ 문제를 가지고 온다. 교외의 단독 주택이 경제적 성공, 신분 상승과 같은 (북)아메리칸 드림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교외 개발에 인종과 젠더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남부 농촌을 떠나 북부 도시로 대거 이주하자, 북부의 많은 백인 가족들이 교외로 이주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이 지속되면서 비백인들은 낙후되고 순찰 당하는 시내로 거주지가 한정되었다는 것. 지리적으로 고립되며, 이동을 위해서는 자가용이 필수적인 교외 환경은 전통적인 이성애자 핵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 분업에 맞는 인프라를 만들었다. 이러한 나열을 읽으면 밝은 페인트가 칠해진, 미국 국기가 걸려 있고 집 앞뜰에 꽃이 잔뜩 심어진 백인들의 집이 상상된다. 이는 도시 구조가 어떻게 불평등과 분리를 생산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이지만, 한국의 광주와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만약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한국의 도시 공간을 예로 한다면 ‘교외’ 대신 한국의 지배적인 주거 형식이 된 ‘아파트’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해천은 아파트 입주자들이 시세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중산층 소비자’의 일상을 만들어 갔으며, 이 시기에 아파트 주변의 학원가, 쇼핑 시설, 교회 등이 입주 첫 세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확장해갔다고 지적한다. “아파트는 중산층 위주로 물질적 부를 분배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나 다름없었다“(4) 그렇다면 아파트라는 한국 도시의 주류 공간은 무엇을 공고히 했을까, 이로 인해 밀려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1980년대 중반 도시 중간계급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력 성장 시대로의 전환에 맞추어 정부는 계속해서 중산층을 ‘육성’하는 것을 긴급한 정책 문제로 강조한다. <중산층 육성대책>(1986년 3월 경제기획원)을 시작으로 한 이러한 정책의 확장 속에서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사람에게 집을 지원한다는 것, 특히 서울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려움 속 나온 타개책 중 하나가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었고 이때 서울 내 아파트 수급 불일치에 대한 해법으로 교외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를 대체할 만큼 매력적인 주거지를 서울 안 재개발 지구와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신규택지에서 공급하는 것이 계획의 초점이었다.”(140) 이는 수도권이 아파트 지대로 편입되는 결과뿐 아니라 이러한 “도시 가정의 원형을 현대화된 한국 가정의 전형으로 확장하는 팽창이 일어났다.”(141) 거실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고, 솔나무 모형이 움직이고 있는 뻐꾸기 시계가 째깍거리고, 식탁보가 깔린 4~5인용 테이블에는 김자반과 영양제들이 올려져 있는 그런 이미지들. 중산층 생활양식과 정서가 아파트라는 양식을 타고 퍼져나갔다. 대대적인 중산층 육성대책 이후 태어나,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동네에서 19년 간 살았고,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의 이사만 가봤던 나의 경험을 떠올려본다. 재개발과 아파트 이전의 우리 동네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을 찾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재개발로 집과 일터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아파트는 점점 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누구나 출입 가능하던 (이것도 입주민의 기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와 작은 상가들이 밀집했던 예전의 아파트와 다르게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더 많은 시설들을, 가능한 아파트 주민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몇몇 고급 아파트는 단지 출입문에도 점점 더 문을 걸어 잠근다. 이러한 구조는 그 폐쇄성도 문제지만 점점 더 도시를 사유화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공공시설들이 아파트에게 외주화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파트, 그중에서도 더 큰 단지와 많은 시설을 지닌 곳들을 선호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더 열악한 도시 환경 속에 놓이는 것 아닐까. 또한, 아파트는 중산층-이성애-핵가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공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더 유리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신혼부부 전세임대’, ‘0순위 신혼부부’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보라. 신혼부부임에도 법적으로 등록될 수 없는 사람들, 비혼주의자, 친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밀려난다. 한국은 동성혼 법제화조차 실현되지 않은 사회이지만 킴 톨베어(Kim TallBear)가 지적했듯, 이성애뿐만 아니라 동성애 규범성까지도 정착민 섹슈얼리티(settler sexuality)의 일부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Settler sexuality—this hetero- and increasingly homonormative compulsory monogamy society tied to settler-colonial ownership of property and Indigenous dispossession—is a structure.(정착민 섹슈얼리티는 이성애와 동성애 규범성, 1:1의 독점 관계를 점하는 사회가 강요하는 정착민-식민지적 소유와 선주민 몰수를 의미하며, 이것은 하나의 구조다.)” 정착민 섹슈얼리티는 식민지를 정상으로 규정짓는 체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우정이나 비(非)일부일처제, 인간 이외의 것들과의 관계 등을 평가절하한다. 우리에겐 예외적 관계 맺기에 대한 인정, 그것이 더 활성화될 수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 다양한 관계 맺기를 포용할 수 있는 도시 내부 공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택, 도서관, 공원과 같은 더 많은 공공시설이 있어야 하며, 어린아이와 동물들이 함께 갈 수 있는 시설들이 다양화 및 확장될 필요도 있다. 특히 도시 공원은 쾌적함이나 휴식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홍수 등 재난 상황에서 방재 기능을 할 수도 있고, 피난처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더 중요한 도시 공간이 될 것이다. 컨의 책에 등장하는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니지만 지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비공식적인 모임 공간”(161)인 ‘제3의 장소’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공공 공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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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컨이 지적하듯, 정치적 행동이 활발하게 나타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도시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회 운동이 뒤따를 것이며, 우리는 그 역할과 의미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내부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시위는 없다. 그 모든 갈등과 모순 때문에 나는 무엇이 페미니즘이고 여성 친화적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183) 컨은 TBTN(Take Back The Night, 밤을 되찾아라) 운동에 참여했던 때를 회상한다. 뉴욕, 필라델피아와 같은 북미 도시에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폭력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연 시위에 참여한 저자에게 ‘“여성만 허용”이라는 특징은 흥분과 우월감의 요소였을 뿐”(186)이었다고 떠올린다. 행렬을 통해 ‘탐험’한 동네의 성 노동자들이 이 시위를 어떻게 생각할지, 시위에 환영받지 못한 젠더플루이드, 논바이너리, 트렌스젠더 여성들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저자는 “시위 공간이 특권과 억압의 체제뿐 아니라 폭력적 관행까지도 재생산할 수 있고 실제로 재생산하고 있음을 더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186)

이 단락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최근에 다녀온, ‘어렵게’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떠올렸다. 서울광장은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에 사실상 ‘허가제’의 태도를 보였고, ‘신체 과다 노출, 청소년보호법상 유해·음란물 판매 및 전시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추가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가 광장 사용신고서를 제출한 지 두 달 만에 허가한 것이었고(48시간 내 통지가 원칙이다), 조직위가 신청한 6일 중 단 하루만 허가한 것이었다. 이렇게 코로나19와 서울시의 ‘훼방’을 넘어 3년 만에 개최된 축제는 기쁨과 해방감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13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방문하면서 광장에서 들어가는 것부터 시간이 지체됐고, 입장 후에도 이동하고 부스에 참여하기 힘들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걸음이 느린 사람들은 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광장을 둘러싼 펜스(fence)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저 너머에 혐오 발언을 엄청난 데시벨로 외치고 있는 세력들이 있고, 한국에서 아웃팅(outing)의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으니 만들어진 펜스 벽이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 벽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제한된 공간을 광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펜스가 본질적 문제로부터 회피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광장과 혐오세력을 위에서 찍은 사진을 봤을 때도 ‘왜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비가시화되고 이 펜스 안에 있어야 하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행진을 하긴 하지만 광장이 있는 시청 쪽을 지나는 사람들 눈에는 광장 속 수많은 사람보다 목소리 큰 혐오세력만이 보일 것 같았고 그건 매우 슬픈 일이었다. 이전의 퀴어문화축제보다 경찰들은 훨씬 더 강경하고 준비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그것은 혐오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건 사고를 차단하기 위한 태도로 보였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감각이 들진 않았다. 강력한 분리와 벽을 높이는 것이 온전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펜스는 둘째치더라도 이제 이 인파를 다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펜스를 없애고 더 열린 광장으로 가자는 것은 섣부른 제안일지라도, 비가시화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열려 있는 광장을 점유하는 것에 대해, 경찰의 소극적인 태도와 입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게이팅(gating)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이러한 부분적 점유가 체제를 강화시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2019년에 이어 초국적 기업의 참여에 관한 논쟁은 올해도 있었다. 2019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스폰서 중 한 곳인 (Blued)의 후원 계약을 취소하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중국의 동성애 데이팅 어플 회사인 블루드의 자회사가 블루드 베이비(Blued Baby)라는 해외 원정 대리모 출산 서비스를 출시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한 논란은 올해 초국적 제약 기업인 길리어드(Gilead)가 퀴어 퍼레이드 트럭에 참여하면서 발단이 됐다. HIV 노출전 예방요법(프렙, PrEP)에 사용하는 ‘트루바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알려진 길리어드는 특허권을 내세워 높은 약가를 유지해오고 있고, 트루바다의 높은 가격은 프렙에 관한 접근을 제한하는 데 강력히 일조하고 있다. 더욱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트럭 행진 단위 선발에서 탈락하면서 논란은 확대되었다.(이에 대해 서울퀴어퍼레이드집행위원회는 트럭 선정 과정에서 금액은 고려되지 않았고 컨셉, 연출계획, 퍼포먼스 계획, 셋리스트 등의 완성도가 기준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란은 ‘윤리적 문제’를 지닌 기업의 퀴어문화축제 참여에 관한 것이지만 더 확장한다면 퀴어문화축제가 기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부스 한복판을 다수 차지하고 있는 1세계 주한 대사관들의 부스(이들이 밀어낸 부스들엔 누가 있었을까?)와 백인 대사들의 연대 발언을 들으면서 “프라이드가 상업적이고 백인화된 공간”(210)이라는 컨의 지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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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추가하기”로 배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법에는 늘 변화의 힘이 결여되어”(31) 있다는 말이었다. 단순히 도시 계획이나 정책에 ‘여성’을 추가하여 사고한다는 것만으로 여성친화적인 도시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모든 여성을 포괄할 수 있는 정체성과 양식이란 없다는 점에서도 불가능하다. 컨이 계속해서 “돌봄 노동과 사회적 재생산을 공동화”(85)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공론과 공동화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차이의 공간인 도시가 더 평등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두려워하도록 사회화함으로써 여자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의 다른 형태의 배제, 분리, 차이에 대한 공포를 강요하는 시스템의 일부임을 깨달아야 한다.”(255) 성적 대상화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제약과 폭력이 다분한 한국의 도시에 살면서 나 역시 더 분리되고 보안이 철저한 곳에서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사람과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서로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이 단기적인 해법에 안주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폭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속해서 필요하다. 이 글을 쓰던 때, 인천의 인하대학교에서 성폭행 사망 사건이 있었다. 사건 이후 나와 친구들은 대학 공간에서의 각자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학이 누군가에게는 밤낮없이 안전한 공적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한 기사에서 인하대가 2012년 경비 업무 형태를 ‘출동 경비’로 전환하면서 경비 노동자가 35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건이 발생하던 때 근무 중인 경비 노동자는 단 4명뿐이었다. 이후 인하대는 보안·순찰인력을 늘리고 건물 출입 가능 시간대를 조정하겠다고 발표했고, 교육부는 각 대학에 ‘성폭력 특별교육’을 제대로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공간이 이용자들별로, 시간대별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논의와 합의, 대학 내 증가하는 성범죄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본질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건물 출입 가능 시간대를 조정하겠다는 대학 측의 일방적인 결정은 단순히 이용자들을 특정 시간대에 바깥으로 밀어냄으로써 대학 공간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조치 때 다수가 경험했듯이) 이용자들은 자신의 필요에 맞춰 이용 가능한 공간을 찾아 나서야 하고, 여기서 또 다른 소외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여러 차이와 차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연쇄 반응들, 그리고 공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도시는 어디로 향해 갈까?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어느덧 서울살이 8년 차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터를 잡고 살지 고민 중이다. 문화학을 전공했고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 몸-환경의 관계, 그리고 이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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