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변으로 상상력을 수혈하기 (2/2)

 

  • 이 글은 김영대 (2021). 물과 변으로 상상력을 수혈하기.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31-64).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

1972년 전까지 남한엔 수도 서울에도 하수처리장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인구 500만이 넘은 서울의 지배적 분뇨처리 기술체제는 여전히 부실한 도로망 위를 움직이는 지게꾼과 트럭, 일제시대에 설치된 빗물 흡수 목적의 우수관,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 12개로 증설된 분뇨탱크였다.

이런 분위기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던 80년대 초반에 바뀐다. 1983년 김상협 국무총리의 도시미관에 대한 언급에서 확인할 수 있듯 종전과는 다른 도시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 혹은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서 전제된 관점의 주인은 외국인이다. 원주영(2020)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1982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마라톤 선수 앨리슨 로(Allison Roe)는 우승 인터뷰에서 서울의 대기오염이 기록단축에 방해가 되었다고 말했고 이 인터뷰는 환경과학자 노재식(1984)과 권숙표(1987)의 글뿐 아니라 공해를 지적하는 기사에서도 거듭 인용되며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되새겨진다.

대통령 지시로 시작된 1983년의 ‘한강종합개발’, ‘한강 되살리기 사업’은 서울과 한강을 “우리민족번영의 상징”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국가적 건설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주택가 민원과 성산시영아파트, 목동아파트 단지를 사유로 성산동, 고양 분뇨처리장이 각각 난지, 안양 하수처리장 옆으로 이전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성산동 분뇨처리장 이전계획은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인 서부간선도로와 성산대교를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의식하고 있기도 하다. 급하게 강바닥 퇴적물을 긁어내면서 한강은 본래의 모습을 찾는듯 보였고 낚시대회와 물고기 풀어놓기, 요트 띄우기 행사를 포함하는 한강의 날 행사도 기획된다.

사실 국제적 행사 유치 이전에는 서울시 조차도 연세대와 학계를 압박해서 수질문제에 입다물게 하려던 정황도 있었다(1981). 지자체 행정이 과학의 목소리를 억눌러야 했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경제적 문제는 분뇨처리플랜트 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이었을 것이고 분뇨정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지자체 수준에서 진행된 환경과학적 조사와 조치를 배경으로 한 과학 간의 마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선해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공해에 국가 수준의 대대적 개입이 일어난 이유로 그 직후 준비된 두 차례의 국제적 무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국민이 겪는 공해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손님맞이가 국가를 움직였다고 생각하면 씁쓸한 뒷맛도 감돈다.

하수처리장이 4개로 증설된 서울의 하수처리흐름

게다가 무대는 어디까지나 행사기간 동안의 경기장 주변의 도시경관이었고 서울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규모 탈취제 사용과 분뇨처리장 가동 중단은 일시적인 조치일 수밖에 없었다. 하수처리장이 4개로 증설되고도 처리용량이 모자랐고 민간업체의 불법방류는 계속 되어서 한강은 계속 더러웠다. 하수처리장이 있으나 마나라는 말도 나왔다.

서울시 안팎에서 똥물로 괴로웠던 시민들은 외국인 관광객, 국제사회의 눈이나 민족, 국위보다 후순위에 있었지만 고통은 시민 사이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갈렸다. 처음으로 서울시 밖에 지어진 고양군 습식산화식 분뇨처리장은 고양군 주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어졌는데(1972) 주요 일간지의 몇몇 기사 언급 이후로 고양군 분뇨처리장은 순탄히 준공된다. 고양군의 침묵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서울에서 온 변이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고 농업용수까지 오염시키는 데에 고양군 주민은 어디까지 동의했던 것일까.

서울시와 고양군의 시민권을 대변해야 할 각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떠밀었다. 수계 광역화가 해법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악취를 맡지 않을 권리나 주민의 괴로움 대신 기사와 학술지에서는 불특정다수 수혜자나 투자효율성 증명 같은 인식론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상상력을 과점했다. 주요일간지는 이들의 반대를 국가적 관점을 고려하지 않는 지역이기주의, 님비운동이라고 보도했다.

창릉천의 수리조합은 관과 공무원의 도시계획이 내버린 공간에서 마련된 나름의 돌파구를 만들었다. 상류의 분뇨처리장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내려오면서 창릉천은 하루 종일 악취를 풍기고 간장색이 됐다. 가끔은 똥이 그대로 떠내려오기도 할 정도였다. 창릉천은 이미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인근의 고양군 주민들은 지하수로 채소 농사를 짓고 수리조합을 조직해 한강에서 끌어올린 물로 논물을 댔다.

그러나 국가가 멈춘 곳에서 시민들 스스로 조합을 조직하는것 말고 다른 방법은 불가능했을까? 한강 수계 전역에서 배출되는 분뇨처리장과 축사, 공장 폐수를 정화하거나 차단하려면 국가 수준의 스케일 횡단과 인프라의 조직이 필요했다. 이 시대의 국가는 도시세계 변두리의 민원보다는 산업지표를 택했다.

4. 세계를 짓고 살아가는 상상력에 관해

이제 내가 하려던 얘기를 마저 해볼 수 있겠다. 세계를 짓고 살아갈 때 어쩌면 유용할 지도 모르는 상상력에 관해서 말이다.

해방전후의 서울은 처음부터 변을 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과거로 소급해보면 서울은 하수도 없이도 사람이 살 법한 동네였다. 두 시점의 차이에서 위생 지식과 기술, 정치의 변화를 고려하기도 해야겠지만 두 풍경은 공통적으로 사회와 기술, 자연이 뒤죽박죽 섞인 풍경이다. 우리가 도시의 기간시설로 여기는 상하수도는 토양과 지형 아래의 지하수와 한강 지류들을 땜질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전에 한강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도 한강이 한강이라고 불리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사람들이 살기 이전에 강이 만든 세계를 터전으로 삼았던 배역들도 각각의 실천 속에서 세계를 지으면서 삶을 꾸려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규모 도시기간시설은 상대적으로 아주 어린 인식론이다. 하지만 이 젊은 인식론이 만든 세계가 어떤 세계였는지 물과 똥이 만든 풍경을 돌아보며 따져봄직 하다.

해방전후 서울은 갑자기 엄청난 인구가 늘어날 만한 상황에 대비되지 않았다. 공공변소 수는 적고 관리인력은 부족했다. 아마도 권위주의 국가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이곳저곳으로 분산시켜서 기간환경이 지게 될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한은 자유대한이었고 미군정에 크게 의지하던 상황에서 그만한 인구를 속속들이 알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바로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주어진 미래는 어쩌면 선진 자유세계와 마찬가지로 상하수도를 갖춘 위생 도시였고 다른 미래를 택할 경우 어쩌면 빨갱이로 몰려 죽었을 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선진세계의 선진됨을 직접 경험하기 전에 마다하거나 고민할 법한 상황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그런 미래를 위해 지불해야 할 기술과 자원이 우리에게 없었다.

그러므로 서울은 처음에는 교외로 변을 밀어냈다. 하지만 서울이 점점 몸집을 불려나가면서 원래 교외였던 곳들엔 사람들이 살게 됐고 원래는 똥이 있어야 할 바깥에 똥과 사람이 함께 사는 모양이 됐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변을 누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어딘가에는 분뇨탱크들이 있어야했고 탱크들은 오랫동안 거기 남았다. 남한은 그 후 하수도망과 하수처리장을 어렵게 마련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까지 우마차와 트럭, 지게로 변을 옮겨다가 거름으로 쓰거나 분뇨탱크에 쌓아두고 한강에 변을 풀어놓는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강에 풀려난 변은 수중 생태계를 파괴했을 뿐 아니라 한강 수계를 따라 내려가면서 강물에 의존해 농사를 짓고 강과 하구에서 어업을 하는 농어촌 사회경제도 줄줄이 파괴했다. 도시와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행위능력들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사회생태적 지형도 와해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당연한 일만은 아니었을 텐데 당연하지 않은 여러가지 일 중에서 어떤 일을 당연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다. 위 상황에서 뒤늦게 활약하기 시작한 상하수도학과 기술관료적 인식론에게 한강 수계의 세계가 겪은 재난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변화였거나 서울 아파트촌이 겪는 변화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어떤 변화였고 관료들은 최적화된 순서로 문제를 해결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국가와 지자체가 조치를 취하는 순서를 기다리면서 도시세계 변두리의 절망과 곤궁은 직접 해결해야 하거나 포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도시 인프라 수준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변화는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처방을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였고 소수의 개인과 소규모 집단은 그만한 세계를 건설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동등한 정치적 행위능력이라는 민주주의라는 이상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사회공간에서 목소리의 증폭과 감쇄

어쩌면 다른 상상력으로 한 곳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서 변을 누고 기술과 행정으로 땜질을 하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의 남한은 그렇지 못했다. 관료들은 처음엔 변을 강물에 방류했고 거기에 따른 정치생태학적 비용은 대장균과 악취, 수인성전염병, 간장색 강물로 돌아왔다. 서울 바깥으로 몰아낸 변은 한강 하류의 생태와 경제를 망가뜨렸다. 이후 우리는 외국 손님을 맞으면서 준비한 겉치레가 도시세계가 초래한 비용을 완전히 정산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세계 밖으로 밀려난 변과 함께 탄소를 생각한다. 한강이 자정능력을 유지하던 60년대 중반까지도 변은 배출해선 안 될 무엇이기 보다는 길바닥에도 널려 있는 범속한 더러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교토의정서 등 몇몇 이른 합의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빙하 융해 티핑포인트와 기후재난의 조짐 이전까지 탄소도 거의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우리가 하나하나 알 수 없을 많은 노력 끝에 우리가 누는 변은 이제 하천과 세계에 극적인 재난을 가져오진 않는다. 대신 탄소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강물에 변을 풀던 시절 그랬듯 우리가 별 생각 없이 풀어놓는 탄소는 이제 행성적 역량을 가진 기후재난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바깥으로 내보낸 변이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온 것처럼 남한 바깥으로 내보낸 탄소는 이상기후와 먹거리공급망 붕괴 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돌아온다. 지구가 도시로 뒤덮인 상황에서 도시세계의 변두리는 없다. 도시는 다른 도시에게 그대로 영향을 주고 우리는 이제 원하든 원치 않는 행성에서 함께 사는 데 치러야 할 비용을 함께 치러야 한다. 아직 미진한 수준이지만 위 비용을 두고 경제와 생태 간의 번역은 점점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유럽연합이 준비 중인 탄소국경세가 대표적인 예다. 환경은 이제 경제다.

문화산업에서 국적의 약진에 기뻐하는 만큼이나 우리는 정치생태적 비용을 정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우린 여러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능력이 있고 뜻밖에 전지구적 주목을 받는 국가가 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세계에 내보내고 있는 영향력에 변명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우리의 새 문화적, 경제적 성공을 누리는 것만큼 우리가 초래하는 재난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린 말 그대로 정치와 생태를 가로지르며 이 행성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잡종도시에서 삶을 위한 상상력이란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것 이상의 세계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다른 세계들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정치의 기초다.


참고문헌

 

 

김영대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하고 개발했다. 기술 인터페이스와 생태계가 생산하는 정치와 경제, 상상력의 양식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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