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020년 즈음부터 레딧(Reddit) 같은 북미 웹 커뮤니티에서는 리미널공간(liminal space) 이미지와 이야기가 오가고 이제 어느 정도 덩치를 가진 군집이 되었다. 리미널공간의 이미지를 공유하고 느낌을 토로하는 문화는 인터넷 이곳저곳으로 확산되어 이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도 리미널스페이스를 검색하면 여러 쎄한 공간 이미지를 접할 수 있다.
리미널공간의 이미지들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지만 쎄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무엇이 이 공간을 불편하게 하고 또 매혹적이게 만드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리미널공간이 가진 위력과 가능성을 탐구한다.

2. 문턱과 경계들
리미널공간에서 리미널(liminal)은 문턱(영어로는 threshold라고도 하는)을 의미하는 라틴어 어근 limen에서 나온 단어이다. 문턱은 말 그대로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틈새, 사이를 가리키는데 학술담론에서도 이 문턱됨은 빅터 터너 같은 사회인류학자가 통과의례가 벌어지는 시공간을 다룰 때나 상징적 상호작용론 전통의 사회학이 사회세계들의 경계를 다룰 때 혹은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문턱, 자크 데리다의 울타리 같은 용어로 나타난다.
위 배경을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문턱됨은 과도기적 시공간이나 서로 다른 규범이 작동하는 사회세계의 경계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생애주기를 공간처럼 쪼개서 본다면 문턱은 청소년기, 성인식, 휴가, 잠 들러 가는 시간, 이혼, 독립, 이직 후 같은 시간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간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이도저도 아닌 중간의 공간에서도 문턱됨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간의 예로는 리미널공간을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 식당, 휴게실, 호텔, 공항, 미술관을 떠올리면 좋다.
이렇게 보면 문턱됨을 시간과 공간이 맞물린 특정한 상황의 성질로 생각하는 쪽이 유용하다. 위 상황에서 시간 양태와 공간 양태 중 특정한 양태가 더 부각될 때 리미널 시간과 리미널 공간에 관한 예를 읊어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둘은 맞물려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3. 인간 세계의 붕괴와 문턱
그렇다면 북미웹에서 순환하는 리미널공간의 감각적 양태는 어떻게 나타날까? FANDOM Aesthetics Wiki 의 리미널 공간 항목 이 유용한 출발점이다. 이 집합적 탐구에서는 리미널공간과 유사한 스타일로 Acidwave, After Hours, Dark Paradise, Dreamy, Glitch, Hydrogen, Surrealism, Traumacore, Urbancore, Vaporwave, Weirdcore를 지목한다. 위 스타일은 한 편으로 비논리적이고 환각적, 환상적인 신기루의 느낌을 동반하는데(Acidwave, Dreamy, Hydrogen, Surrealism, Vaporwave) 다른 한 편으로는 어두운 시간의 도시(After Hours, Dark Paradise, Urbancore)와 트라우마, 향수 같은 과거에 대한 감정과 묶이기도 한다(Traumacore, Weirdcore).
리미널공간은 단순히 땅거미가 진 후 도시공간의 이미지 만으로 어떤 문턱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주로 레딧에서 순환하는 리미널공간은 어두운 밤의 빈 거대한 공간을 다루는데, After Hours, Dark Paradise의 고요와 편안함과 달리 리미널공간은 불쾌감을 준다. 소프트웨어적으로 Vaporwave, Acidwave, Glitch의 시각적 양식을 적용해 특정 시간의 광량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문턱됨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스름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무엇이 리미널공간의 충분조건일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간 활동의 부재이다. 주로 리미널공간으로 지목되는 어두운 쇼핑몰, 식당, 엘리베이터가 평소처럼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움직임과 소음, 빛 같은 생활감과 인적이 필요하다. 쇼핑몰, 식당, 공항 같은 환승 공간은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론 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장소의 주요한 특징은 끊임 없는 사람들의 스쳐감 그리고 익명화된 개인이 되어 받는 서비스이다. 비장소의 두 특징은 사이공간인 리미널공간의 으스스함 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평소처럼 위 환승공간에서 군중의 일부가 되고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스쳐 가는 사람과 위 장소의 서비스 노동자 양측의 실천이 공간을 매개로 순환해야 한다. 주로 어두컴컴한 밤에 찍힌 리미널공간의 이미지는 직원도 퇴근하고 스쳐가는 사람도 없는 공간이 본래 작동하도록 설계된 맥락에서 작동하기 위해서 낮 동안의 집합적인 유지보수 활동의 순환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판데믹 상황과 함께 레딧에서 리미널공간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는 보고 는 일상의 토대가 되던 친숙한 공간이 락다운과 함께 버려지고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미국의 상황과 같은 궤에 있겠다.
그렇다면 어떤 공간이 제공하던 의미와 기능, 세계성이 단순히 공간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결과라면 인간 없는 공간의 쎄함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리미널공간의 이미지가 주는 불안 중 하나는 공간의 새로운 행위능력에 있다. 인간 활동의 순환에서 공간은 길들여져 있고 언제까지나 같은 서비스와 분위기를 제공할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아포칼립스 배경의 창작물에서 쇼핑몰 선반을 헤집고 다니는 주인공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유지보수 인력 없는 건축물과 인공환경, 인테리어는 일종의 해방과 기쁨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은 동시에 위험과 불안이기도 하다. 다시 포스트아포칼립스 무대로 돌아가본다면 방심한 틈을 타 주인공 일행을 덮치는 돌연변이나 약탈자, 바이러스를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일상의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은 방문자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공간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방문자를 환대하지 않으며 이전과 같은 방식의 관계를 맺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익숙하던 객체가 아니며 거꾸로 우리를 응시하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던져버린다.

4. 리미널공간다발과 회고
그렇다면 트라우마와 향수는 어떤 방식으로 리미널공간과 관계할까? 리미널공간과 감응하는 주목할 만한 경향 중 하나는 회고이다. 리미널공간의 이미지는 관계가 소거된 상황을 포착하고 있는 데서 관찰자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을 동원하게 한다. ‘왜 이렇게 으스스하지?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이었지?’ 익숙한 공간의 낯선 정조와 함께 리미널공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이한 실체가 된다.
예컨대 레딧의 어떤 반응 계열이 판데믹 이전 시간에 대한 향수로 나타나는 반면 틱톡의 반응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VHS 질감 비디오 푸티지와 유년기 놀이터, 학교 공간 따위를 동원해 리미널공간을 순환시킨다. 하지만 레트로게임 플레이어에게 리미널공간은 플레이스테이션1 시절의 로우폴리곤 레트로호러게임이나 RPG게임의 공간 혹은 유지보수되지 않은 다중접속온라인 게임 서버의 황량한 풍경과 저해상도 텍스처의 모습으로 순환한다. 혹은 Weirdcore 스타일에서 참조되는 것처럼 2000년대 초기 인터넷 문화의 아마추어적 합성물과 웹 인터페이스가 다시 순환하기도 한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찰자는 리미널공간의 결핍에서 생기는 으스스함에 대해 각기 다른 처방을 내린다. 위 회고적 결합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경험한 공간이 소위 원초의 설계의도에 따라 정해진 사용자에게서 버려진 모습을 각기 다른 질료와 함께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회고적 감응에서 공간은 과거에 속해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경험할 수 없지만 분리된 관계 때문에 다시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실감으로 나타난다. 으스스함 다음에 오는 어떤 슬픔은 위와 같은 회고적 태도와 함께 한다.
5. 맺으며
북미 리미널공간 문화는 몇몇 논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북미 소비문화 공간 이미지들이 주로 제시되고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위 공감 가능성은 아마도 전지구적 매체지리적 공급망이 형성한 문화적 향수와 초국적 기업이 생산하는 비장소의 일반화된 경험을 공통분모로 삼는 것 같다.
위 가설을 따른다면 구체적인 사회지리적 공간의 리미널한 이미지에 감응하기 위한 조건은 특정한 인공환경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며 오늘날 이 공통의 토대를 만드는 것은 전지구적인 기업활동과 소비문화이다. 미디어 하부구조와 비장소의 확산이 공간에 감응하는 공통의 감수성을 순환시킨다.
한편 리미널공간의 이미지가 동시대에 유행 중인 Vaporwave, Acidwave, Glitch 같은 회고적 스타일과 향수, 트라우마와 결합하는 양태로 수렴하는 경향은 리미널공간이 가진 문턱됨의 역능을 심리적 퇴행으로 수렴시킨다. 하지만 문턱됨이란 무언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감각이다. 한 세계의 공간과 시간이 끝나고 다른 세계의 공간과 시간이 시작되는 감각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리미널공간은 알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불안의 방어가 아니라 새 가능성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까?
만약 우리가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거꾸로 이 불안 호기심의 회로로부터 통해 판데믹과 지구가열, 불평등 같은 공통의 문제에 대해 감응할 수 있는 어떤 소통규약을 발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경우 리미널공간에 대한 처방은 회고가 아닌 다른 벡터로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리미널공간은 사회구조가 붕괴해 새로운 질서가 창발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시재생이나 범죄를 작당모의 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리미널공간은 여러 관찰자가 나름의 상상을 통해서 꿰매지 않으면 안 되는 으스스한 틈을 벌리면서 관찰자의 세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리미널공간에 대한 관심은 아직 북미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나는 GS25, CU, 스타벅스, 버거킹, CGV, 이마트24, 베스킨라빈스, 파리바게트 등으로 이어지는 어떤 상업지구가 공동화된 풍경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원인이 락다운을 경험한 적 없는 K-방역의 성과인지 세계의 다른 차이에서 온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계 너머의 세계에서 온 쎄하고 으스스한 감각을 거듭 접하고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간에서 으스스함을 발견하고 어떤 상황에 새로운 삶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조금이나마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할 때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구체적인 공간이 리미널공간이라면 말이다.
김음
테크노사이언스와 미디어 그리고 우리 세계의 위험과 경제에 관심이 있다. 플랫폼화되는 인터넷에서 공동의 공간과 감정, 정체성이 조직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고 조사에 유용한 디지털도구의 디자인과 협업 양식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