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미널스페이스 챌린지를 열면서, #쎄한공간 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문턱된다는 경험이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쎄한 공간에 대한 반응도 다발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미웹의 리미널공간에 대한 반응은 영미웹의 지역성을 반영합니다. 공간주의의 #쎄한공간 이벤트는 리미널공간의 지역성이 공간주의 이벤트와 구독자 각각의 고리에서 어떤 양식으로 번역될 것인가 함께 확인해 보는 계기였습니다.

발견한사람 @dkfjdbqgwi
우리는 리미널 스페이스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챌린지를 진행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분명 그 개념이나 선정기준에 대한 명시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도 각자 얼만큼씩의 금액을 상금으로 각출하는 데에 동의했다. 나는 그것이 공간의 일정 맥락에 대한 소거를 반드시 수반하게 되는 디지털 이미지화 ─ 물론 그것은 공간 그 자체와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 과정에서 새로운 맥락이 구성되고, 그 맥락이 ‘리미널’함을 구성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에 ■■(■■■ ■)는 리미널 스페이스를 선험적으로 정의하고 들어가기보다는 챌린지를 통해 리미널 스페이스의 이미지를 한데 수집하고, 그 수집물들로부터 포착되는 공통 요소들로부터의 선정을 결정했다. 챌린지를 통해 수집된 리미널 스페이스 이미지들로부터 ■■ ■■■■■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의도적으로 구축된 것으로서의 건조환경과 도시조형으로부터의 쎄함을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김음이 설명한 ‘문턱됨’의 논의를 경유해 수집된 이미지들을 검토해볼 때, 리미널 스페이스의 쎄함은 건조환경과 도시조형을 직조한(것으로 여겨지는) 저자의 의도의 원초적 기능에 상당한 훼손이 나타났을 때 발생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리미널 스페이스(그리고 그것의 쎄함)는 저자의 어떤 특정 의도에 충실해/충실했기에 만들어진 건조환경이 ‘무엇인가’[주]에 의해 굴절되어 훼손될 때 발생한다. 여기서 위 이미지의 흥미로움이 나온다. 사실 이 사진 파일은 ‘우선적으로’ 상술한 리미널 스페이스이미지의 전형적 문법에 충실하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문법의 충실함 속에서 리미널 스페이스의 공통감각을 구성하는 저자 의도/제작자 의지의 굴절의 요소가 한국 근대의 통념상의 축, (자연물의 인공화로 ‘흔히’ 상상되는) 토건자본주의라는 로컬 저자의 의도에 대한 충실함과 접선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시선은 리미널 스페이스의 극단적인 소실 지점을 찾으려다가, 곧 컨테이너 상단의 “어서오세요 …“로 우회하게 된다. 그리고 문법상 먼 곳의 너머공간이 배치되어야 할 듯한 위치에 쌓여 있는 암석과 흙, 모래의 무더기를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거의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나는 물론 이미지 좌편의 흙과 암석이 의도적으로 축적된 것인지, “원래”의 자연환경인지, 혹은 낙석 사고에 의한 다른 종류의 축적물인지 그 물질세계에서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에서 프레임이 적절하게 잘리고, 또한 포커싱되어 있다는 점은 이 이미지의 디지털 수용의 수준에서 맥락을 ‘추출’하고 새롭게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가령 (프레임 내부에서의 위치나 초점을 고려할 때 선택적으로 삽입된 것임이 분명해 ‘보이는’) 조형(간판)의 “건설 …“과 “모래 …“의 언표들로부터 그 실체들은 어딘가에서 의도적으로 옮겨져왔고, 또한 다른 곳으로 의도적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 이미지는 (흔히 어둠으로 재현되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어둠으로 재현된) ‘너머 공간’에 ‘무언가 있을 것’ 이라는 (서구) 리미널 스페이스의 전형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그 너머에 무엇인가 있긴하되 ‘별다른 것은 없을 것’ 이라는 한국 근대에 대한 우리의 통념까지도 동시에 자극한다. 이렇게 우리는 리미널 스페이스의 (비교적) 전지구적인 공통 감각(저자 의도 내지 제작자 의지 굴절의 매혹)과 그 감각으로 인한 전형적 문법을,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의도에 충실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다고 여겨지는 ─ 그래서 더 이상 현대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서의 ─ 한국 근대(에 대한 통념)를 목격하게 된다. 즉, 위 이미지는 지금-여기에서의/로서의 리미널 스페이스의 ─ 수용과 생산의 ─ 맥락이 상이한 문법들의 겹쳐짐으로서의 비동시성의 동시적 작동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나는 위 이미지가 묶음의 다른 이미지 파일들과 함께 드러내지 않았던 ─ 그리고 리미널 스페이스 이미지 소비의 놀이에서는 언급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 디지털 도시의 상상계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소거된 맥락(예컨대 지리적 좌표, 일자와 시간, 촬영자의 정보, 촬영 목적, 해당 ‘현장’의 산업지형 따위)이 궁금하다. 그 도시 실재계적 맥락과 사회-공간적 맥락을 알게 된다면 위의 이미지를 리미널 스페이스로 제시·수용되도록 만들었던 요소들은 어떻게 재구성될지, 이를테면 이 이미지를 이른바 리미널한 그것으로 계속 볼 수 있을지 혹은 접선을 약화시키며 한국 근대의 이미지로 보다 가까이 다시 보(이)게 될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선정평1)

발견한사람 @dasistnacht
리미널 스페이스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구글에 “What is liminal space?” “What does liminality mean?”을 검색해서 정의를 읽어보아도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불편하고 으스스한 기운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공간이라는 것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리미널 스페이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인지하게 되는 그 과정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텍스트로 온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감각이 오히려 리미널리티를 완성시키는 것 아닐까?
140장에 달하는 여러 리미널 스페이스들 중에서 내게 이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이 사진이 그야말로 ‘문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진들과 다르게 이 사진은 광활한 자연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자연물(바다)과 사진을 찍은 인공 공간 사이에 어떤 또 다른 자연물과 인공 공간이 있으리라 추측되지만 이 사진에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고 그 점은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문턱됨은 마치 그림처럼 조각나 나뉘어있는 여러 프레임들, 그에 따른 각기 다른 선명도에 의해서도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비상구 마크와 커다란 X 마크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디인지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비상구와 X자는 사진이 찍힌 공간의 내부를 뜻하는 것일까, 외부를 뜻하는 곳일까? 그러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다일까, 사진을 찍은 이 공간일까? 비상구 내지 탈출구는 바다인가 혹은 바다로부터 격리되는 공간인가. 더불어 이런 기호들과는 상반되게 반쯤 열려 있는 문은 어떤 불안감과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렇듯 이 사진이 모호성과 방향감각 상실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또한 다른 사진들에 비해 이 공간이 속한 국가나 도시를 추측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진에는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단서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온전히 동일한 공간은 있을 수 없다. 어떤 공간, 어떤 맥락 위에서 찍혔는지 너무나 알 것 같기 때문에 흥미로운 사진이 있는 반면 종잡을 수 없어 흥미로운 사진도 있는데 이 사진은 후자에 가깝다. (선정평2)

발견한사람 @udultultul
저는 리미널공간을 레딧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로 접했는데요, 거기서도 이미 리미널공간은 장르가 분화되기도 하고 원래 의미를 초과하는 방식으로 여러 낯선 느낌을 주는 여러 공간을 이르는 말이 되어있습니다. 공간주의 이벤트에 모인 이미지들도 같은 방식으로 리미널공간에 대해 여러 해석을 내리고 있었어요. [리미널스페이스론]도 제 나름대로 내린 ‘이런 것이 리미널공간이다’라는 해석입니다.
리미널스페이스론에서 밝혔는데, 저는 어떤 공간이 문턱되는 상황의 쎄함을 해석하고 방어하는 방식이 여럿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미널공간을 맥락화하는 방식으로 회고적 노스탤지어, 포스트아포칼립스적 해방과 위험 같은 방식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유보하는 태도를 더 선호합니다.
위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선호하는 양식에 속합니다. 먼저 쇼핑몰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 공간은 어느 정도 유지보수가 돼 있어서 철거된 건물이나 공사장의 예측 가능한 파괴상황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처구니 없이 앞뒤 안 맞는 사물들이 같이 놓여 있는 인터넷 밈 같은 ‘기이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지요.
하지만 위 이미지에서 창 밖은 낮이고 실내는 어두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불은 전부 꺼져 있습니다. 대낮의 쇼핑몰 이벤트홀의 정적이 주는 쎄함에서 저는 쓸 만한 옷을 슬쩍 한다거나 폐업한지 얼마 안 된 깨끗한 건물에 맘대로 체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동시에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경비원이나 CCTV에 잡혀서 불법침입죄로 처벌 받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어떻게 저 상황에 들어가 있던 것일까요? 그가 불법침입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관리의 빈틈이나 사고가 일어난 것일까요?
이런 애매한 불안함과 가능성의 감각이 주변에서 찾아볼 법한 리미널한 상황의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진을 택했습니다. (선정평3)

공간주의 #쎄한공간 #리미널스페이스 챌린지는 플랫폼 공간주의의 트위터 계정(@attention2space)을 통해 진행된 이벤트로 2021년 5월 15일부터 5월 22일 자정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이 직접 발견한 리미널스페이스 이미지 138점(동영상 포함)이 진행기간 내에 수집되었고, 이 게시물의 3개 이미지는 그 중 공간주의 운영팀이 선정한 것입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소정의 상금을 입금드릴 예정입니다. 공간주의는 이벤트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