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서울과 네이메헌(Nijmegen)에서의 자전거 타기에 대한 짧은 자기 기록이다.
모빌리티(mobility)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때는 “머물러 있음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후퇴로, 사회계층을 올라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으로 간주”(125쪽)되던 A.C(After Covid19) 4년 전 즈음인 것 같다.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6개월 정도를 네이메헌(Nijmegen)이라는 네덜란드의 대학 도시에 머물렀는데, 네이메헌은 이후 유럽녹색수도(European Green Capital)로 지정될 만큼, 또 자전거를 많이 타는 네덜란드에서도 자전거 타기 편리한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네이메헌에는 ‘Velorama’라는 자전거 박물관도 있다) 나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지금 이 글을 쓴다. 왜 갑자기 자전거에 대해 쓰고 싶어졌는지 생각해보면, 자전거가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변하지 않은 이동 수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덜란드, 특히 내가 살던 네이메헌은 사람들 대부분이 자전거로 움직이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전거를 사는 것이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 본 경험은 가족들과 집 근처 혹은 광주의 공원에서 한두 시간을 탄 게 다였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꼭 사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집에서 자주 이동할만한 역과 학교, 중심가까지 구글맵으로 검색했을 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압도적으로 빨랐고 중고 자전거가 예상보다 훨씬 저렴해서 (한화로 약 6-7만원 정도였다) 6개월 치 버스 비용과는 비교가 안 됐다. 다행히 오리엔테이션을 돕는 멘토들이 자전거 구매에 함께 해주기로 했고 우리는 도시의 중고 자전거 판매점을 돌며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당시 네이메헌에서 아시아인은 매우 드물었고 162cm인 한국 여성을 위한 자전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162cm는 한국 여성 평균 신장 정도지만 네덜란드 여성의 평균 신장은 168cm 정도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타던 자전거와 다르게 네덜란드의 자전거는 안장이 더 높았다. 거기다 손으로 작동하는 브레이크 대신 페달을 뒤로 밟아 사용하는 브레이크가 장착된 자전거가 많았는데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 작년에 이 영상을 보고 다시 한번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국제커플]거인국에서 153cm 아내의 자전거를 찾을 수 있을까? #4
결국 나는 청소년들이 타는 더 작은 사이즈의 자전거를 구매했다. 성인용을 탈 수도 있었지만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사장님과의 대화 끝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갑자기 모든 생활을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해야 하는 것보다 모든 이동을 자전거로 해야 하는 것이 더 낯설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교통 규칙과 주차장 이용 방식을 배워야 했고, 자전거 라이트를 비롯한 자전거 용품을 사야 했다. 대부분 유럽 출신이었던 조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서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나를 항상 기다려주었다. 내가 한국의 자동차 중심적인 광역시에서 성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빼고 모두들 자전거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부끄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의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었고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았으며, 운전자와 걷는 사람들 모두 자전거를 항상 배려해주었다. 이 사람들도 다른 때에는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더 아는 것 같았다.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한 손으로 음악을 고르면서 자전거를 타는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처음에 네덜란드인 친구가 “자전거는 일종의 내 몸이기도 해!“라고 말했을 때, 속으론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단 6개월 만에 나에게도 일종의 신체 혹은 집처럼 느껴졌다. 그곳 사람들이 ‘바꾸(바이크 꾸미기)‘에 집착하는 것을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동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이동 수단이 되니 자꾸 자전거 용품을 사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자전거 용품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도 탈 수 있게끔 방수가 되고, 모자가 있는 겉옷들을 사기 시작했다. 이후 자전거를 다시 되팔 때, 그리고 되팔고 나서 다시 네이메헌을 버스로 이동할 때 큰 허전함을 느꼈다.
다시 서울에, 광주에 돌아오니 자전거 타기가 나에게 줬던 즐거움과 해방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다. 이동 수단을 타는 행위를 이렇게 그리워할 수도 있나? 그래서 자전거 타기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먼저 나는 네덜란드 자전거 타기와 관련된 자료를 “Dutch Cycling Embassy“와 “Bicycle Dutch“에서 참고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자전거 타기가 주는 다양한 이점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저렴하다, 환경에 좋다, 자동차 공간을 축소 시켜 공공 공간을 개선할 수 있다, 자동차 소음을 줄일 수 있다, 운동 효과가 있다, 시간을 절약한다, 교통 사고가 줄어든다, 소비를 촉진시킨다 등 개인과 사회에 자전거 타기가 어떤 이익을 주는지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이동 방식에 따라 인지된 스트레스와 행복감이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 한 심리학 연구는 자전거 사용이 가장 강력한 긍적적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하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자전거 타기가 사회적 접촉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길 위의 다른 자전거 이용자들과의 접촉과 갈등을 중재하면서 일종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며 이는 인지된 외로움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와 대비시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자동차 모빌리티는 사람을 가두고 이는 운전자를 도로로부터, 서로로부터 소외시키는 반면에 자전거 모빌리티는 서로를 더 접촉하게 한다.(251p) 자전거 타기는 공동성과 집단성의 형태를 포함하는 예이며, 아주 사회적인 활동인 것이다. 자전거 이용자가 “Cyclists”라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활동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모바일 비디오 기술지(Mobile Video Ethnography) 방법을 사용한 폴 매클베니(Paul Mcllvenny)의 연구도 이미지를 통해 이를 잘 드러내는데, 자전거 타기가 상호작용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실천이 공동의 감각과 정동을 생산함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움직임 속의 감정들(emotions-in-motion)은 여러 사람들, 자전거들,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전거 문화와 지리적 상황 사이에서 형성되는 정동 순환의 결과다. 자전거 타기는 “이동적 신체와 환경 사이의 현상적 물리적 단절을 극복하는 수단”(88p)이다. 자동차와 대중교통과 다르게 자전거 타기는 날씨와 환경을 더 다감각적으로 인지하게 한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공기, 날씨, 장소 등에 함께 머문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매체적 감각을 부여할 수 있으며, 자전거 이용자들은 이를 감각하고 몰두한다.
또한 자전거 타기는 버스나 지하철을 탔다면 가지 않았을 곳을 누비게 했다.(이는 자전거 타기가 경제적이지만 자전거 이용자로 하여금 더 많은 쇼핑, 특히 로컬 쇼핑을 하게 한다는 것과 비슷한 매커니즘일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숲과 호수들은 나를 좀 더 멀리 다른 곳으로 가게 했고 이러한 경험은 ‘걷기’를 통해서는 비교적 불가능했을 경험이다. 나는 해외에서는 주로 구글맵을, 한국에서는 카카오 지도를 이용하는데 걷기나 대중교통을 탈 경우 계속해서 어플을 주시하면서 이동 경로를 탐색하고 이동 시간을 확인한다. 이는 정확도와 편리성을 부여하지만, 디지털 지도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게 될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내가 걷다가 지도를 통해 근처에 숲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도 소요 시간을 보고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자전거를 탈 경우 보통 대략적인 경로를 파악해놓고 길을 떠나거나 구글맵 음성을 키고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단기적인 경로만 설명해 줄 뿐 시각적으로 계속해서 무언갈 확인하게 하지 않는다. 갑자기 경로를 바꿔도 멈추지 않으면 소요 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설령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자전거가 걷기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이렇듯 직접 나의 신체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또 공간에 맞춰 조절해갔던 경험은 생생한 감각으로 나의 신체에 남아있다. 자전거 타기를 통해 느낀 길 위의 타인, 장소와의 연결감이 부여하는 소속감과 즐거움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타기가 늘 즐거움만을 주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이들은 내 자전거를 가로막기도 했는데, 한 번은 한 어린아이가 자전거 쪽으로 뛰어와 급하게 멈춘 적이 있다.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웃었지만 아마도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던 것 같은 말을 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서 황급히 달아나기도 했다. 조금 늦은 저녁에 중심가를 달릴 때면 자전거를 타고 있음에도 “니하오”나 “곤니찌와”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서로를 더 접촉하게 하는 자전거 모빌리티는 이렇듯 나에게 단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는 나(주체)와 영역의 관계는 이렇듯 매우 상황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걷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빨리 달아날 수 있기도 했다. 나는 이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자전거 모빌리티를 방해받지 않는 경로를 탐색하고 발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인 여성’으로 위치 지어진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서도 불쾌한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나의 실수가 있었든 없었든, (주로 중년 남성 이용자로부터) 고함이나 원치 않은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네덜란드에서의 강렬한 자전거 체험을 바탕으로 서울에 돌아와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자동차 중심적이고, 언덕이 많았고, 자전거 도로와 주차장이 미비했으며, 심지어 자전거 도로와 인도와의 경계가 매우 흐렸다. 분명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음에도 보행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자동차 운전자, 보행자, 다른 자전거 운전자의 무시 경향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도 많다. 이는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는지, 최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서울시 자전거 도로 실태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자전거 이용자들은 ‘자전거 도로 없음’과 자전거 도로에 ‘불법 주정차’ 를 주된 문제로 꼽았다고한다. 무엇보다도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한국에서 원칙적으로 자전거 이용자는 차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차도 위를 자전거로 타는 것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이 글을 쓰면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전거 사고로 인한 인구대비 사망자 수가 가장 많으며(2014 기준), 자전거 사고의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발생함을 알았고 공포감은 배가 되었다.
피터 애디(Peter Addy)는 자전거 모빌리티가 “더 응집력 있고 사회적인 도시의 직조 내에서”(108p)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모든 도시가 자전거 친화적일 수는 없으며 대부분의 도시는 자동차 지배적이지만, 왜 서울이 자전거 타기 좋지 않은 도시인지 여전히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전거 타기를 방해하는 구체적인 도시 환경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를 느낀다. 같은 ‘자전거 타기’일지라도 어떤 사회 환경에서 수행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전거 친화적인 코펜하겐과 그렇지 않은 런던에서의 자전거 타기를 자문화기술지로 분석한 요나스 랄슨(Jonas Larsen)의 연구가 이를 드러낸다.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자전거와 결합된 이동하는 신체(mobile body)가 어떤 신체 기술을 낳고, 어떤 감정과 정동을 생산하는지에 대해 짧게나마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전거 타기가 걷기, 자동차, 대중교통 이용과는 또 다른 방식의 몰입과 실천을 낳으며, 자전거라는 모빌리티를 통해 도시 환경의 차이를 감각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모빌리티가 세계와의 교류 방식임을, 매우 구체적이고 정동적인 실천임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인간과 자전거, 차가 협동적으로 머물 수 있는 건조환경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조금은 광범위한 질문을 생각해본다.
신지연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여성청년들의 이주 실천과 모빌리티에 대한 연구로 석사 과정을 마쳤고, “공간주의”를 공동 개설했다. 여성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 인터아시아 연구에 관심이 있어 왔고, 서울에서 외지인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여전히) 고민 중에 있다.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