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학자이자 도시계획가인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짓기와 거주하기: 도시를 위한 윤리(Building and Dwelling: Ethics for the City)>(2018/2020)에서 두터운 논의를 맺는 주장의 하나로 도시공동제작을 제안했다. 그가 일련의 참여적 계획이론 사조를 거리적 지식(street-smart) 활용의 문제와 접합함으로써 일정한 극단으로 밀어붙인 개념인─그러나 일단의 인본적 공동체주의자들이 계획(가)의 존재와 의의를 온전히 부정하는 것과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할─도시공동제작은 협의-거버넌스를 넘어서는 만들기의 계획-연대 정도로 거칠게 요약될 수 있다. 이 지면에서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도시공동제작의 논의가 <잡종도시서울>을 진행하고 있는 플랫폼 공간주의의 시작점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앞서 ‘공간주의 구상 1안’을 통해 성패 여부로 제시한 ‘조각모음’의 비유는 공동제작의 차원에서 각각의 작업자 및 작업물을 연대의 자원으로 축적하고, 그 일정한 방향성을 도출하는─그리고 이를 매개하는─형식의 공간이자 장소(이를 우리는 플랫폼으로 지칭했다)를 만들고자 했던 우리의 지향에 관한 표현이었다.
우리가 거리적 지식의 개념으로부터 참고하고자 했던 요지의 하나는 로컬(리티)와 기술 매개의 거리적 지식을 활용한 제작자 범주의 재설정이었다. 그런데 <잡종도시서울>의 준비와 실행의 단계에서, 특히 도시(에서)의 비인간 행위자들을 주목해온 도시정치생태학자(이자 물론 우리의 훌륭한 강연자였던) 김준수와의 만남을 비롯한 세부적인 과정들로부터, 우리는 이와 같은 거리적 지식을 범위로 설정한 조각모음에서 모이지 않는 조각들이 무수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이를 배울 수 있었다. 비인간 행위자들은 도시의 제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도시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존 주류문화의 접근은 물론, (우리 역시 중요하게 참조한) 대안적 존재-행위자들에 주목한 기성-대안적 작업 역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결국 혼종적이되 사람인 이들과 소수의 기계들 정도를 제작자로 범주화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비인간 행위자들의 행위자성을 손쉽게 부차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갖는다.
<잡종도시서울>의 강연 프로그램 ‘인간 너머의 도시: 행성적 도시화와 서울 인류세’를 통해 김준수는 주제와 관련한 자신의 앞선 작업들을 종합하고, 또한 최신화하며 제시했다. 그중 여러 수강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낸 주제의 하나는 서울의 대표적으로 생산된 공간으로서의 한강을 발전주의 도시화와 인간 너머 물 경관으로 검토한 부분이었다. 김준수는 서울의 건조환경으로서의 한강에 관한 기존의 여러 입장들을 소개하는 한편, 한강과 그 경관구성물들─특히 물의 행위자성을 부각했다. 예컨대 인간은 한강을 거대한 규모의 전략적 관리의 구역으로 삼고 개입했지만, 한강 내지 물과 모래의 잡종적 행위자성은 인간과 도시행정이 결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의 장항습지와 같은 영역들을 만들어냈고 확장시켰다. 이를 참조할 때, 한강이라는 (자연환경이자 동시에 건조환경으로서 결코 양분할 수 없는) 잡종적 환경은 그 자체로 상당한 스케일에서 행위역량을 갖춘 비인간 행위자의 하나 내지는 그 집합으로 다뤄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간 한강에 관한 기존의 꽤나 대안적인 작업들조차도 대개는 결국 그 공간에서의 ‘사람’, 내지는 (개발을 비롯한) ‘사건’들을 초점화해왔을 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역량의 포착은 중대한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주류적 접근에서는 계획가 및 디벨로퍼, 심지어 제작자의 범위를 넓히고자 했던 대안적 접근에 있어서도 사람들(간)의 행위와 관계의 제작 결과물 정도로만 여겨진 한강이 그 자체로 행위자(내지 집합)일 수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그외 서울의 수많은 ‘생산’된 공간환경-예컨대 도시 서울의 도시성을 구성하고 있는 잡종적인 환경들 역시 이 도시를 그간 공동제작해온 중요한 제작자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이는 또한 공간을 보다 전면화하고 주의하는 방식이 될 수 있는 시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작자 범주의 재설정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예컨대 ‘일정한 잡종적 환경은 다른 인간과 비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행위자성을 가지고 다른 행위자와 구분 또는 결합될까?’, ‘일정한 스케일에서의 잡종적 환경(구성물)들의 행위자성은 상하위 스케일의 공간들을 어떻게 변형-제작할까?’, ‘비인간 잡종 존재의 행위자성은 단일종 인간의 도시화에서 무엇으로 굴절·변형된 제작역량으로 발현되어 왔는가?’, 그리고 ‘도시에서 비인간 잡종 존재들의 행위역량을 어떻게─도시행위자 의지의 선별적 종합으로서의─계획 및 제작의 역량으로 조직화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단계에서, 구체적인 잡종 존재들에 관한 (경험적) 분석·조사·매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추상적 높이에서 상술한 의문들을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단계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기존의 방법(론)으로써만은 해소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그간 도시 공간의 건조환경을 읽어내려는 시도의 상당수는 주로 인간 관찰자에 의한 경관분석의 방식으로 행해져 왔다. 이는 각기 다른 지향과 관점의 접근들이 건조환경이 인간에 의해 구성된 것이되 인간의 ‘말’을 할 수는 없다는─그 대신 인간의 ‘눈’으로 해독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한 경관분석의 방법으로 그간 잘 알려진 고전적인 작업부터 최신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경관분석은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대중 ‘참여’의 프로그램으로서도 주된 양식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접근들이 도시공간의 문제를 재고하는 데에 있어 많은 함의와 교훈을 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공간을 경관으로 읽어낸 인간 시각 ‘일변도의’ 경관분석은 앞선 의문들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서는 일정한 한계에 봉착할 수 있었다. 일변도의 전형화된 경관분석의 방식은─심지어 탈중앙성을 말하고 지향하는 작업물들에서조차─(관찰자 신체의) 가시적 시공간에서만 펼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이라는 시각 본위의 제한적 스케일에서 수행되는 경관분석은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다─예컨대 한강과 같은 잡종환경 그 자체가 도시를 제작하는 중장기 지속의 과정은 특정 시점의 개별 인간의 눈이나 카메라라는 제한된 관찰도구로는 포착되기 어렵다. 반면 강연 ‘인간 너머의 도시: 행성적 도시화와 서울 인류세’의 도시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 소개된 다양한 시도들은 우리의 의문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 일정한 힌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동시적인 분석과 함께 제도와 역사를 경유하면서 시간적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다. 또한 (미세 현미경의 렌즈에서부터 동식물 개체, 인프라스트럭처, 구역, 도시, 지역, 국가, 대륙, 지구에 이르는) 복수의 스케일을 경유하면서 스케일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델링과 데이터 시각화를 비롯한 다양한 감지와 기록의 도구를 통해 인간의 눈이라는 도구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며, ‘도시해킹’과 같은 질적 양식을 통해서 기성 경로에 관한 의존성과 자료 수집 규약의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다양한 매체와 감각들로부터의 접근은 잡종적인 도시와 공간, (모든 도시와 공간일 수 있겠지만 특별히 이르자면)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김준수와 그가 소개한 연구자들의 도시정치생태학적·인간너머 지리학적 관점의 접근은 연구로 ‘인준’된 것이었다. 이들은 다시 한번 일독이 필요한 유의미한 작업물이 분명하다. 하지만 강연에서의 그의 언급에서처럼 연구자들이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함으로써 결국 바라볼 수 있었으되 ‘인준’을 거쳐 발표되어야 하는 연구에 포함될 수 없었던 영역들 역시 분명하게 존재했고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 너머의 도시-서울에 ‘인준’된 인간논리의 언어로 옮겨질 수는 없지만 분명 도시공간에서 행위하며, 이를 통해 도시공간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보다 많고 다양한 잡종적 행위자(들)일 수 있다.
여기서 <잡종도시서울>의 제안은 인간 너머의 도시 이야기를 같이 만들자는 것이다. (이어질 세미나와 매체조직 과정에서 다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일단은 프로젝트 기힉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잡종성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기성의 방식을 넘어서, 그야말로 잡종적인 조사의 양식과 매체의 조직을 통해 잡종성을 맥락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낙관은 미리 내려놓자. 김준수의 마지막 언급과 같이 우리가 인간 행위자라는 까닭에 인간 너머의 잡종성을 온전히 인간의 언어와 형식, 매체로 옮길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인간중심의 자신에 불과하다. 또한 기존에 비가시화되던 공간을 ‘도시해킹’의 방식으로 가시화하고자 했던 도시인류학자 브래들리 L. 개럿(Bradley L. Garrett)의 도시해킹-인류학 작업─특히, Garrett(2013/2014)─이 던져준 함의의 한 가지는 ‘기성’의 작업물들은 그 작업물들의 위치에서 가시적인 영역이라는 특정한 부분(만)을 세계의 맥락으로 포장해왔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작업이 기성 세계의 맥락 위에서─모든 조사의 실행과 매체의 조직이 기성의 맥락과 완전히 단절하여 시도될 수는 없다는 까닭에─진행될 방법으로서의 서울 잡종성의 문제제기는 그 시작부터 그 자체로 모든(모든 종류의 또는 개별로서의 모든) 잡종적 존재들을 드러낼 수 없으며, 그렇기에 불완전하다. 그 대신 우리가 제안하는 방법으로서의 잡종성은 각각으로는 불완전한 ‘실험’들을 축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잡종도시서울>을 통하여 우리가 함께 만들 것은 (각각의 수준에서는 실패할 수도, 불완전할 수도 있을) 실험의 모음집이다.
각각의 실험에는 일정한 자율성이 제공된다. 우리는 도시의 잡종적 존재에 관한 잡종적 접근을 권장하고 또한 지원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살핀 것처럼 잡종적 세계와 행위자들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균일한 접근은 쉽게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대신 <잡종도시서울>은 참여자들에게 이곳의 잡종적 행위자들을 부각하기 위한 각기 잡종적인 조사, 매체, 형식, 방식, 기술, 관점, 스케일 등등의 활용을 권장하고 지원한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대안적이거나 급진적일 필요는 없다(기존의 방식으로 잡종적 존재를 바라보는 실험 역시 흥미롭다). 각각의 이야기가 완전히 맺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리고 뒤이어 우리는 각기 불완전한 잡종적 실험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각각의 실험들이 모인다면 일정한 이야기가 구성된다─따라서 각각의 실험들 사이의 서사적 배열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즉, <잡종도시서울>의 기획은 각기 불완전한 잡종적 조각들을 만들고, 모으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조직하는 것이다. 각각의 잡종적 조각들이 모여 만든 세계의 이야기들, 특히 제작자로서 잡종적 행위자의 역량에 관한 이야기들은 (마치 세넷의 도시공동제작에 있어 거리적 지식의 이야기로서의 속성이 중요했던 것처럼) 서울-도시의 잡종성을 위한 공동제작의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공간주의가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실험 프로젝트 <잡종도시서울>의 세미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쓴 것이다.
- 타이틀 이미지 출처: Gerwyn Davies – INAG
이승빈
플랫폼 공간주의를 기획했고, 동료들과 함께 관여한다. 도시계획과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박사과정에서 두 영역의 관계(맺기)를 고민하고 있다. (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