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도시에서 삶을 위한 장치

 

사진출처: 비전성남

인류세, 기후변화, 판데믹은 어떻게 정치적 논쟁이 되었을까? 정치적 논쟁이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은 기술과 자연을 정치의 대상으로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최근 정치생태학의 반칸트주의적 관심과 함께 한다. 비판을 위한 개념 혹은 이념형을 생산하고 세공하는 지식 생산 장치는 주로 계급,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 등을 주제로 하는 내러티브에 의존한다. 하지만 어떤 현상들이 기존의 비판적 내러티브에 제대로 포섭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일반적으로는 아마도 기존의 개념과 내러티브를 포기하거나 변형하는 종류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과 아마존에서 온 민족지, 과학기술사 연구 등 경험주의적 공기가 강한 분과에서 시작된 존재론적 전회는 기술과학과 함께 새로 생산되는 존재론적 장, 예컨대 기술혁신과 환경오염의 현장들에서 그리고 서구 문화의 바깥에 있는 비서구 토착민 세계의 존재론적 장에 서구적 개념을 번역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한 이들은 서구적 응시 내지 재현이 서구 인식론적 장치의 수행적 결과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문화, 기술, 경제, 자연 같은 범주로 환원되기 어려운 ‘세계’들이 만나는 접경에서 개념과 이야기는 새롭게 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존재론적 전회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개념을 그만 사용하자고? 마치 비판적 연구 진영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라는 경계 만들기와 대비는 의심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본질적인 차이와 통약불가능성을 가정한다면 서로 다른 세계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러나 위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통상적 비판 내러티브 만으로 논쟁을 헤쳐나갈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면 정치적 논쟁과 공적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어휘와 실천을 발명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무에서 새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판이론이 다뤄오던 세계 너머에 있는 세계와 마찰하는 접경에서 개념과 방법을 새로이 생성하고 실천에 유용성을 보이는 데에서 새 인식론적 장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과 이야기, 정치 만들기는 언제나 모든 실천의 과제다. 그러나 소위 비인간과 물질이 정치 논쟁의 한복판에 온 지금의 특정적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장치와 전략을 동원할 수 있을까? 김준수는 주요하게 정동, 비재현, 지식 정치를 주요한 탐구 주제로 제시한다. 예컨대 지식을 생산하고 생산하고 제시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준거로 통치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사회의 상이한 힘과 관점이 경합한다. 이질적 존재가 정동하고 마주치는 데서 공적 영역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정동과 마주침을 관리하는 안보가 작동한다.

비판적 정치생태학은 지식의 경합, 마주침과 정동을 전통적 비판 내러티브의 대상들과 함께 다루는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위 형태를 실험할 수 있는 잡종도시서울의 탐구에 다음 물음의 계열을 제시한다.

  • 말라리아 모기가 수도권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이동성은 어떻게 생산되었는가? 기후안보는 어떻게 생명안보가 되는가? 이질적인 과학과 문화, 영토는 여기서 어떻게 경합하는가?
  • 쓰레기와 더러운 것의 정동은 어떻게 빌라촌, 신축 아파트 단지, 계급성과 결합하는가? 아파트의 위생은 어떤 인프라와 공간 정치의 효과인가?
  • 미세먼지는 인종주의적 정동과 함께 지리적 스케일을 어떻게 결합하는가? 혹은 어떤 영토성을 생산하는가?
  • 판데믹과 플랫폼 독점 경제는 어떤 공간과 노동을 생산하는가? 방역과 플랫폼은 어떤 통치로 화하는가?
  • 서울의 물질대사는 잉여가치(정치경제학적 행위역량) 너머에서 어떤 행위역량을 축적하는가? 물질대사 과정에 연루되고 생산되는 실체 중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지는가? 여기서 지식과 통치의 역할은 어떠한가?
  •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다종적, 기술적 공간 실천에 필요한 암묵지, 관리지식은 어떻게 생산되고 경합하는가?
  • 어떻게 발전주의 헤게모니와 맞부딪히면서 국가 혹은 발전을 생태정치에 포섭할 수 있는가?
  • 그리고 위 주제를 이야기 할 때 필요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제시/시각화 할 수 있는가? 여기서 사회과학 너머의 장치를 어떻게 동원할 수 있는가?

 

이 글은 공간주의가 서울특별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실험 프로젝트 <잡종도시서울>의 세미나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쓴 것이다.



김영대

테크노사이언스와 미디어 그리고 우리 세계의 위험과 경제에 관심이 있다. 플랫폼화되는 세계에서 공간과 감정, 정체성이 조직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고 조사에 유용한 디지털도구의 디자인과 협업 양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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