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신지연 (2021). 서울에서 숨쉬기 (Breathing at Seoul). 이승빈·김영대·신지연 (편), 〈잡종도시서울〉(pp. 197-223). 서울: 공간주의의 일부분입니다. 글의 전문 및 인용은 해당 서지정보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발달한 감각이 조금씩 다르다면, 내가 가장 발달한 감각은 후각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개코’로 유명해서, 그들은 음식이 상했는지 옷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어렸을 때부터 호흡기가 약했던 나는 동시에 호흡(breathing)에 민감하다. 코 막힘과 같은 알레르기 증상을 통해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해외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낯선 냄새를 맡으며 이곳이 타지임을 느끼고 받아들인다.
광주에서만 살다 대학 때문에 서울로 이주한 내가 이비인후과를 그토록 들락날락했던 일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은 중심부를 거의 갈아엎는 수준의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었고, ‘미세먼지’에 대한 각종 담론이 내가 입학하던 해에 폭발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던 걸 떠올려보면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내 생각보다 더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느낀다.
나는 <잡종도시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서로 연루되어(entangled) 있다는 감각을 확산하고,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응답하고 친밀해질 수 있을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인식적으로는 너무 멀어져버린 것들과의 친밀성을 회복하고자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주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한 번도 글로 적어본 적 없는 ‘공기/호흡’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프로젝트의 성격상 주로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글은 꼭 서울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지리학자 피터 애디(Peter Adey)와 <잡종도시서울> 프로젝트 구성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피터 애디는 공기를 단순히 물질, 자연현상, 혹은 기술적 성취로 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싸며 지탱해주는 존재로 바라보았으며, 공기가 엄청나게 많은 물질을 전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고 접근했다(Adey, 2014/2015). 메가시티(megacity)에서의 공기를 분석한 한 글(2013)에서도 그는 공기가 성장과 쇠퇴, 욕망과 거부감 사이에서 어떻게 차이를 말해주는지, 수직적 지정학 내에서 공기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거대도시들은 어떻게 분리된 공기를 생산하는지를 분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글들은 공기가 서울에서의 일상에 어떤 역할과 작용을 하는지, 공기가 왜 중요한지를 풀어내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구성원들과 나눈 대화들은 이러한 작용의 복합성을 보다 면밀히 보게 하였는데, 그 대화들 역시 이 글에 최대한 담아내고자 하였다.
쾌적함에 대하여
나는 먼저 공기가 ‘감각의 정치(politics of sensibility)‘에 어떻게 동원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편안함 혹은 쾌적함(comfort)은 신체, 물체, 환경 사이에서 유발된 ‘심미감(aesthetic sensibility)’ 혹은 ‘정동적 공명(affective resonance)‘으로 설명될 수 있다(Bissell, 2008). 쾌적함이 어떻게 관리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대학을 다니던 당시 나는 합정역 근처의 한 원룸에 살면서 2호선을 타고 신촌역으로 통학을 했다. 신촌역에서 내가 다니던 학교까지는 도보로 15분 이상을 걸었어야 했는데, 신촌역에서 현대백화점 유플렉스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출구로 나오는 편이 사람도 덜 붐비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
지하철역의 쾌쾌한 공기 속을 뚫고 유플렉스 통로의 문을 열면 마치 하나의 공기 경계를 통과한 듯한 느낌이 든다. 무거운 백화점 특유의 문을 열면 정제되고 시원한/따듯한 공기, 러쉬나 더바디샵의 향기들이 몰려온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느껴지는 부르주아적 공기가 나의 착각만은 아니었던 게, 2019년도 <한국일보>의 한 기사(2019.10.22)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점포 내 공기 질 개선을 위해 5년간 6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고객 출입구에 대용량 공기청정기와 공기정화 효과가 큰 나무를 비치하고, 매년 필터 교체를 진행하는 등의 계획이다. 동종 업계, 유사한 내용의 기사들이 2019년에 자주 등장했던 걸 보면 쾌적한 공기가 하나의 브랜딩으로 명확히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던 듯 보인다.
한때는 인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논란이 있던 적도 있었다. 이 지하통로에 배치된 의자들에 노숙인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보행자들이 위협감을 느낀다는 문제 제기가 일었는데(연세춘추, 2016.5.7), 그중 하나는 ‘악취’ 문제도 있었다. 노숙인들의 체취나 음주로 인한 냄새들이 러쉬 비누향과 뒤섞일 때 받았던 감각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그 냄새들이 섞이는 것이 이상해 지하통로를 거치지 않고 육로로 신촌역까지 걸어갔던 것에 대해. 노숙인들은 신촌역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노숙인들을 처음 마주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 상황을 왜 그렇게 낯설게 느꼈을까. 피터 애디(2013)는 공기에 대한 분석이 누가 이 공간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지, 누가 자격이 있는지 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나는 그때의 이상함이 공기의 뒤섞임에서 오는 정서였다고 종종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공간에 속할 수 있는 공기와 속할 수 없다고 ‘판단된’ 공기의 뒤섞임이었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공기의 침입으로 깨져버린 ‘쾌적함’에 대한 나의 순간적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오랜만에 다시 신촌 유플렉스 지하를 찾았다. 매장 맞은편에 있던 의자들은 사라져 있었다.
서울에 독립해 살면서 나는 쾌적한 공기와 냄새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 미세먼지 담론이 유행할 때는 쾌쾌한 냄새가 원룸에 가득 차는 느낌에 원룸용 공기청정기를 들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하루면 뽀송하게 말랐던 빨래가 원룸에서는 이틀을 두어도 잘 마르지 않았다. 빨래가 잘 마르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햇빛과 적절한 공기의 순환은 내가 살던 원룸에서 실현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돈을 아낀답시고 섬유유연제를 사지 않다가 빨래에서 나는 물 냄새 때문에 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섬유유연제를 써도 물 냄새를 완전히 막기란 어려웠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실내건조용’ 섬유유연제가 새로 출시되었음을 알게 되었고(원룸 자취생에게는 필수 아이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가 원래 쓰던 섬유유연제보다 몇천 원 비쌌지만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장마철이라도 되는 때에는 섬유유연제도 효용이 떨어져 결국 무인 세탁방에 들려 빨래를 한다. 캡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신은 내 또래들이 삼삼오오 무인 빨래방에 앉아 핸드폰을 하며 대기하는 모습은 ‘장마철’ 하면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의 ‘냄새’를 다스리고자 했던 노력은 성인이 되는 과정 속 타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썼던 일 중 하나였다.
이 글의 초안을 읽은 <잡종도시서울> 구성원 중 한 명은 ‘좋은 향기’를 위한 나의 시도가 섬유유연제나 향수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도치 않은 공격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주었다. 호흡기에 민감하지만 이와 관련된 알레르기가 있지 않았던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지적은 공기의 침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던 말이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박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암튼 그 양반(기택) 전반적으로 말이나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도 결국엔 절대 선을 넘지 않거든, 그건 좋아 인정.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그는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무말랭이 냄새”,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에 비유한다. 서울의 원룸에 살면서,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나에게서 나는 냄새에 그토록 민감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 번째 이유는 <기생충>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냄새’가 선을 넘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타인의 영역에 침범 가능하다는 것이 나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둘째, 나의 특정한 냄새로 인해 내가 어떤 공간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감각의 사회학”(1907/2005)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냄새를 맡으면서 그것이 주는 인상이나 그것을 발산하는 객체를 우리 안으로 깊숙이, 곧 우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며, 이를 이른바 호흡이라는 생명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그것을 먹지 않는 한- 다른 모든 감각들에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동화시킨다.”(173쪽) 짐멜이 지적하듯, 어떤 것에 대해 냄새를 맡는 행위는 그것을 나와 밀접하게 동화시키는 행위다. 공기 혹은 냄새가 ‘배제’의 원리를 지닌 것은 매우 빠르게 발생하는 이러한 메커니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에 의해 구역화되었는지는 달라도 서울의 공간은 각기 다른 공기를 가진 채 구역화되어 있다. 일례로 인터넷에서 종종 화자 되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냄새”가 환기장치 때문이라는 기사(한국일보, 2016.4.4)를 본 적 있다. 서울·수도권 지하철 1호선 운행차량 중 78.2%가 환기 장치를 갖추지 않고 있었으며,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1호선(1호선은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이 분담 운영하고 있다) 중에서는 ‘환기 팬’을 갖추고 있어도 민원이 있거나, 날씨가 습할 때만 자의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1호선 대부분이 지상철이라 자연환기로도 충분하다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출퇴근 시간대엔 1호선 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준치의 4배가 넘는다고 지적하면서 호흡기나 순환기 질환자, 노약자에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서울의 지하철 내부에서도 운영 측에 따라, 전철의 노후 정도에 따라 우리는 다른 ‘숨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로나19 안에서 숨쉬기
그런데, 코로나19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버렸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면서 우리는 더는 타인의 냄새를 쉽게 맡기 어려워졌다. 지하철이나 화장실의 악취가 더는 쉽게 나를 침범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비 온 뒤 강아지와 산책할 때의 축축한 풀내음, 미세먼지 없는 날의 시원한 공기도 잘 맡기 어려워졌다.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어도 사적 공간에서 마스크를 벗고 만나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서 나는 고유한 냄새를 맡기 힘들다. 대신,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는 냄새를 더 맡아야 했다. 코로나19 초기, 버스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채기를 했다가 마스크에서 나는 내 침 냄새를 맡기가 너무 고역스러웠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냄새조차 익숙해졌지만, 그 순간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코로나19 이후 먹는, 뿌리는 입 냄새 제거제, 마스크에 붙이는 패치가 출시되는 걸 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자기 냄새를 견디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화장품 매출은 하락했지만, 향수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기사(연합뉴스, 2021.2.8)를 보았을 때는 코로나19로 인해 후각이 일정 부분 차단되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후각에 민감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마스크로 인해 얼굴이 반 이상 가려지면서 스스로를 브랜딩(branding)할 수단으로 시각보다 후각을 더 선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때가 도래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서 나는 냄새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한편,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호흡에 불안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호흡기 감염 질병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함께 호흡하는 과정에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정 거리, 특정 이동에 따라 바이러스가 어떻게 확산하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례적으로 우리가 공기의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강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함께 식사하던 중, 누군가 최근에 확진자와 접촉하는 바람에 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순간 식사자리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지만 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괜찮은 척하고, 그 사람은 황급히 검사결과가 음성이었으며 자신의 일상에 문제가 없음을 덧붙인다. 나는 그 순간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경질적으로 인지한다. 이러한 신경증은 인구 밀집도가 높아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 역시 배로 높은 대도시에서 더 간헐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한편, 팬데믹 상황에서 폐쇄적이고 정화된 공기를 유지하고자 했던 공간들은 도리어 바이러스 확산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폭염을 피해 들어가 있던 카페에서는 천장형 에어컨이 집단 감염의 매개체였고, 자연환기가 어려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도 잇단 코로나19의 확산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한 프로젝트 구성원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몇몇 감염이 ‘직원 휴게실’에서 발생했음을 지적했다. 장시간 근무하면서 좁고 폐쇄된 탈의실, 직원 휴게실, 물류창고를 이용하던 직원들이 집단 감염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공기를 관리하려는 시도가 발생시키는 ‘취약성’에 더 노출된 공간과 사람들이 있음을 드러낸다.
- 서울에서 숨쉬기(Breathing at Seoul) (1/2)
- 서울에서 숨쉬기(Breathing at Seoul) (2/2)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어느덧 서울살이 8년 차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터를 잡고 살지 고민 중이다. 문화학을 전공했고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 몸-환경의 관계, 그리고 이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