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건축, 비대칭의 균형

 

나는 취향이랄게 딱히 없었다. 잘 만든 영화라면 다 좋았다. 못 만든 영화는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좋다면 다 좋은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콜럼버스’를 보고 좋아서 주변에 권했는데, 다들 심드렁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좋아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게 취향의 차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지루하다고들 했다. 자기 전에 보려 틀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영화관에서 삼십 분이 지날 때까지 하품을 연신 했다. 케이시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동료와 그저 그런 시시한 대화를 나눈다. 엄마와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진은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연고 없는 도시에 온다. 직장 상사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피곤하다. 숙소는 넓고 조용하다. 감정은 평이하고 컷은 길다.

그러다가 케이시는 진과 함께 좋아하는 건축물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 장면에 매료되었다. 초반에 그 모든 지루한 일상의 모습은 이 장면을 한층 더 인상 깊게 만든다. 진이 처음에 왜 이 건물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케이시는 은행의 이런저런 정보를 나열한다. 이때 카메라는 유리창에 비친 케이시의 반영만을 본다. 그러다가 진은 케이시의 말을 끊고, 그런 사실 말고 무엇이 너를 ‘움직이는지’ 묻는다.

카메라는 그제야 케이시의 모습을 반영이 아닌 정면에서 포착한다. 케이시는 초반부에, 그러니까 자신의 일상 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얘기한다. 대화는 들리지 않고 관객은 그 표정과 손짓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가 시작한 이후 처음 사운드 트랙이 그 모든 소리를 덮는다. 나는 이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보았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케이시가 건축을 좋아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이시는 엄마의 일로 힘들어하며 동네를 방황했다. 그때 케이시는 자신의 삶이, 환경이, 그 모든 사람이 싫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케이시는 건축물을 맞닥뜨린다. 무엇이 자신을 사로잡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케이시는 계속해서 그 건축물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건축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처음 케이시에게 건축이라는 건 자신의 일상과 하등 상관 없어 보였을 것이다.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아름다운 ‘건축물’은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삶’과는 다르다. 상관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도피처로 기능했을 것이다. 건축이라는 별세계를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자신의 삶을 외면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은 하나의 도피처에 그치지 않는다. 케이시는 말한다.

“Suddenly the place I’d lived my whole life felt different.”

“갑자기 평생 살아온 곳이 달라졌어.”

언젠가 건축물을 바라보느라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삶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문득 자신이 그 모든 걸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시각을 얻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건축이 케이시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케이시도 자신이 치유된 적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평평하고 벗어날 길 없었던 현실의 문제 외에 케이시가 머무를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준다. 데보라 버크의 은행에서 케이시는 편안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건물을 바라본다.

낯선 지역에서 여행을 하다가도, 영화관에 앉아있을 때 전시를 둘러볼 때 잠시 편안함을 느낀다. 이렇듯이 은행은 케이시에게 무언가 요구하지 않으며, ‘바라보는 사람’의 역할을 부여하고, ‘바라볼 공간’을 같이 제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케이시는 아무런 소속이 없다. 그러나 건물을 바라보는 동안은 모더니즘 사조와 건축가, 콜럼버스라는 도시와 잠시나마 연결된다.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커다란 흐름과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위안을 준다.

그곳에서 케이시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다. 도시 건축물 가이드 투어를 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건물을 소개한다. 건축가의 토크를 듣고, 그 중 한 명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대학 입학을 권유받는다. 진과 케이시는 건축에 관한 얘기를 통해 나이 차와 상관없는 내밀한 대화에 이른다. 이런 만남과 교류는, 집에서의 일상만큼이나 정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나의 도피처에 불과했던 건축은 새로운 세상으로 케이시를 안내한다.

벗어날 수 없는 케이시의 일상, 건축물이라는 하나의 관심사, 그리고 관심사로부터 새롭게 발생한 관계와 교류. 이 셋은 삼각형을 이룬다. 삼각형은 하나의 균형을 이루고 케이시는 다시 자신의 생활을 이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비대칭의 균형을 이루는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케이시의 삶 역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된다. 그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아마 버틸 수 없었을 일상의 괴로움과 긴장은, 단단한 삼각형의 구성을 통해 분산된다.

그러나 단단한 균형은 변화와 배치된다. 케이시의 삼각형은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관성으로 그를 붙들어 맨다. 영화는 그 균형이 무너지고 해소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케이시는 콜럼버스를 떠나고 진이 남는다. 케이시는 떠나는 차 안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이 슬프지 않았다, 이제 케이시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일상을 균형 있게 건축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도 케이시의 엄마도 결국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HER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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