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광주에 가려면 다섯 시간 넘게 좁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는데, 이제는 KTX를 타면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서울의 원룸에서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 용산역에 갔고, 용산역에서 3시 20분쯤 기차를 타 광주송정역에는 5시가 좀 넘어 도착했다. 광주송정역에서 다시 광주 1호선으로 갈아타 문화의전당역에서 내렸고 54번 버스를 타고 광주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6시 반이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진행돼서 광주에 도착해도 내가 광주에 있는 건지 서울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몸은 덜 피곤하지만 오히려 노이즈가 감소해서 정신적으로 더 몽롱하다. 광주에 가면 어쩐지 더 쉬고 싶고 바쁘게 어딘가를 가고 싶지 않지만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거기는 가봐야지 다짐했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비엔날레 보러 국군병원에 갈 거야” 하니까 엄마는 “거기서 뭔 전시를 한대?” 했고 거기 근처가 옛날에 안기부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지금은 함평으로 이전해서 구 국군광주병원인데, 그냥 국군병원이라고 해도 이해하는 엄마가 신기했다. 엄마는 내비게이션을 찍지 않고도 어딘지 알고 나를 거기에 내려줬다. 구 국군광주병원은 화정동에 있는데 나는 그 근처에 살았던 사람도 알고 있고, 수도 없이 그 근처에 갔었지만 아파트, 교회, 병원과 같은 각종 제도적 공간들 사이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구 국군광주병원과 제도적 공간들은 담을 사이에 두고 매우 가까이 있었지만 군사시설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실제 거리에 비해 훨씬 더 격리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의 일상에서 잊혀졌다는 책자의 설명과는 다르게 희고 녹음에 둘러싸여 있는 건물들 근처로 여전히 주민들은 산책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고, 누가 가져왔는지 궁금해지는 집에서나 있을법한 의자들 위에 앉아 관광객들을 쳐다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곳 부지가 화정근린공원으로 바뀌기도 해서겠지만, 사람들이 이 공간을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여전히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밀리지 않고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 중에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공간을 최근에 본 적이 있었나 곱씹어 봤다. 1965년에 지어졌으니까 몇 년이더라 세어봤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공간을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옛 전남도청에 아시아문화의전당을 만든다고 할 때도, 총탄자국이 200개도 넘게 있는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한다고 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아무리 보존과 재구성에 힘쓴다고 해도 ‘원형 공간’ 그대로가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이 옅어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물론 고정적인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존’이라는 단어만큼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2007년 이후 남겨져 있었던 병원 본관과 국광교회 내부는 5.18 사적지 중에 ‘원상태’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이후에 이 공간들이 또 어떤 변화를 겪을지 모르니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개되는 순간 이미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은 것이겠지만) 30분간 비엔날레 커미션 전시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했고, 이후에는 혼자 다시 병원 본관을 걸으면서 보기 시작했다. <거울의 울림(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을 설치한 마이크 넬슨(Mike Nelson)은 텅 빈 병원을 배회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느꼈다고 한다. 병원의 목격자이자 시간의 증인이자 기록인 거울을 그는 국광교회 내부에 설치했다.

대낮인데도 공간을 걷는데 계속해서 위축됐다. 책자에서 마이크 넬슨 작가에 대해 설명한 문구 중에 ‘분위기’ 같은 걸로밖에 묘사하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분절된 서사들을 조합시킨다는 글이 생각났다. 여기를 걷다 보면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목격하지 못한 것들, 놓친 서사들이 있을까 두려워서였을까? 텅 비어 있지만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이 느낌이 책자가 말하는 ‘분위기’ 같은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 게르노트 뵈메(Gernot Böhme)는 감성적 지각에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분위기(das, was man empfindet: die Atmosphäre)”(15쪽)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눈앞의 사물을 지각하기 앞서 지각 주체와 사물이 놓여있는 공간과 환경에 대한 분위기가 먼저 지각된다고 설명한다(심혜련, 2019). 뵈메의 감성학을 설명한 심혜련에 따르면, 뵈메가 분위기에 있어 가장 주목한 것은 바로 공간성(Räumlichkeit)이며, “지각, 신체, 환경 자연 그리고 예술 그 모든 주제들이 분위기의 공간성과 연결”(17쪽)된다.

희고 어딘가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깨진 틈 사이로 초록 식물들이 일정 부분 침투해있고, 옛날 복도 바닥이 주는 질감과 차가운 공기로 둘러싸인 공간에 나는 진입해있다. 이곳에서 많은 흔적들을 마주한다. 과거의 시간을 여기 이곳에 불러오는 흔적은 가시적일 수도, 비가시적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물질성을 갖는다. 흔적의 지시 대상이 여기 이곳에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심혜련, 2012). 이러한 흔적들은 나로 하여금 공간에 몰입하게 하고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나는 이후에 찾아간 광주극장 옆에 있는 소년의 서라는 서점에서 산 박솔뫼의 신작을 읽다가 다시 이 공간에서의 시간을 떠올렸다.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91쪽)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연속적이지 않듯 공간 역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곳이 시간이 펼쳐져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게 어떤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으스스함, 새로운 다짐들을 불러일으킨다고 느꼈다.
나중에 구 국군광주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이야기하고 60년생인 아빠도 이곳에 다녀왔다. 5.18의 목격자이기도 한 아빠는 이 공간이 “시간이 멈추어버린 공간”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는 아빠가 6살 때 이곳에 입원했었고, 또 몇 년 후 삼촌은 군대에서 사고를 겪어 이곳에 입원했다. 나는 국군병원에 오늘 처음 가봤고 나한테 국군병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치료 받았던 역사적 공간일뿐 개인적인 기억은 오늘 이전에는 없었다. 이곳에 개인사가 얽혀 있지만 우연히 이 공간이 역사적 사건과 얽히면서 장소화의 단절을 겪게된 아빠에게 이곳은 단절의 공간이다. 투어를 함께한 도슨트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는 이유로 방치된 이 공간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이 공간이 정말 방치되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장소화의 단절이 과연 피해일까 이런 생각도 했다. 전시를 보고 다시 돌아 나가는 길에 고등어 무늬를 한 고양이가 뛰어서 깨진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18쪽) 박솔뫼의 신작인 <미래산책연습>을 읽으면서 나는 이것을 꼭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이투데이(MaytoDay)> 책자에는 5.18민주화운동은 박제된 과거가 아닌, ‘가능한 역사(potential history)’로 일상에서 우리와 마주한다고 적혀있다. 가능한 역사에 대해 말한 아리엘라 아졸레이(Ariella Azoulay)는 가능한 역사는 단지 폭력만을 말하려는 시도를 부정하고, 그것이 구체화하는 범주, 지위, 형태를 마치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 시공간을 현재로 불러오기 위해, 원하는 미래를 그리기 위해 이 글을 적고 있다.
나는 90년대에 광주에 태어나 성장했고 광주의 진실이 어느 정도 세상에 공개된 후의 광주에서 살았지만 동시에 부정하려는 시도를 겪기도 했다. 5.18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봐왔던 사진과 영상들, 어른들의 증언, 내가 직접 가본 공간들을 통해 느끼고 기억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나 또한 집합적 기억을 지닌 일원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 사실은 구 국군광주병원이라는 공간을 체험하는 데에 있어 다른 경험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두려우면서도 이 공간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분위기를 느꼈고 어떤 미래를 그렸는지 궁금하다. 5.18 민주화운동 특별전의 타이틀은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Between the Seen and the Spoken)>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볼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것 사이>로 짓기로 한다.
신지연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여성-청년들의 이주 실천과 모빌리티에 관한 연구로 석사 과정을 마쳤고, “공간주의”를 공동 개설했다. 여성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 인터아시아 연구에 관심이 있고, 서울에서 외지인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