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디언트에 대한 갑작스런 생각

 

검색포털 다음daum이 로고를 변경했습니다. 그라디언트를 뺐습니다. 다음 로고는 그라디언트가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는데, 마침내 그라디언트 시대를 졸업하고 더 이상 그라디언트에 의존하지 않는 다음 시기로 넘어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존 시기에서 다음 시기로 넘어갈 때 생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기존 시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의견과 인상들이 다음 시기에 적응하느라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망각이란 무엇인가? 참고) 그래서 다음 시기에 적응하느라 미처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생각들을 여기에 적습니다. 바로 그라디언트 현상에 대한 생각입니다.


(위) 다음 로고와 검색창 (리뉴얼 전)
(아래) 다음 로고와 검색창 (리뉴얼 후)

리뉴얼 전까지만 해도 다음 로고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총알처럼 보였습니다. D자는 그렇잖아도 곡선 부분이 왼쪽으로 휘어 있어서 오른쪽으로 튀어 나아가는 듯 한 모양인데, 여기에 윗부분은 청-황 그라디언트, 아랫 부분은 적-황 그라디언트가 적용되니까 본래 지니고 있던 한 운동성이 더 강조된 겁니다. 검색창 테두리도 오른쪽으로 갈수록 노란색으로 옅어지는 그라디언트로 처리되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색어를 채워넣고 오른쪽 맨 끝의 검색 버튼을 누르면 되는구나’ 하게 만드는 유도등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라디언트가 사라지면서 검은색으로 환원된 D가 죽음의 데스를 의미하는 것 같고 하루에 다섯 번 정도 하던 검색질을 하루에 한번도 않고 있습니다. 그라디언트는 제한된 공간에서 운동감을 자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방송사 JTBC 로고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지나가는 전기자동차 같은 이미지죠. 우측으로 말린 t, b, c의 획이 지닌 운동감이 그라디언트에 의해 더욱 시각적으로 강조되면서 JTBC의 기동력을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듯합니다. 로고의 왼쪽 끝, 프레임 바깥에 있는 사건의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잖아요.

(위) JTBC 로고
(아래) 가와세 하스이, 明石之浦, 14.3 × 9.4 cm, 목판화, c.1935


어떤 대상에 그라디언트라는 피부를 부착할 때, 두 가지 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전에 본 운동 효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지 효과입니다. 목판화가 가와세 하스이는 이른바 ‘보카시暈し’ 기법의 대가였다고 합니다. 보카시는 민화의 ‘바림’처럼 물감으로 그라디언트 이펙트를 만드는 전통 회화 기법입니다. 1935경 제작한 ‘아카시의 포구’를 살펴보면, 그라디언트는 돛단배의 방향성에 동조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배의 방향성에 대해 전혀 무관심합니다. 상단에서 침전해 내려오는 적-황 그라디언트는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눌러주고, 하단에서 튀어오르는 청-황 그라디언트는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이끄는데, 두 힘이 화면의 중간부분에서 상쇄되다보니 시선이 그냥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라디언트가 시선을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게 가둬두는 효과가 있는 것인데요. 배의 돛들이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쏠려있고, 특히 삼각돛과 뱃머리가 화살표처럼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지만, 비협조적인 그라디언트 때문에 배는 어느 쪽으로도 이동하지 않고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늘의 붉은 색, 돛을 물들인 붉은 색, 수면에 비친 붉은 색이 위 아래로 이어지면서 화면에 강한 통일감을 주다보니 시선이 거듭해서 배의 이동 방향과는 무관하게 수직 축을 오갈 뿐입니다.

윤새롬, Crystal Series_ Table 01, 40 x 40 x 42cm, 아크릴, 2016

동시대로 오면 윤새롬의 경우 투명 수지에 색상을 주입해 그라디언트 빛깔이 감도는 가구-조각을 만듭니다. 윤새롬의 테이블은 다리 부분이 T자 모양이어서 앞쪽으로 전진하고 싶어할 것 같지만, 테이블에 새겨진 그라디언트 무늬는 일정한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습니다. 하늘의 일부가 아크릴 구조체에 정지 상태로 품겨져 있을 뿐입니다.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해온 필리핀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 특히 “해가 지면서 만들어내는 하늘의 색과 풍경”에 대한 기억이 아크릴 속에 빛깔의 형태로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스탤지어에 기반하는 윤새롬의 작품은 기억을 보존하는 저장 장치로 기능하는 셈입니다. 또 다른 동시대 작가인 하기와라 무스미는 유리에 금속 가루를 첨가해 빚은 그라디언트 그릇을 가리켜 ‘기억을 담는’ 자신만의 형식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자연에 압도”되었을 때, 유리 안에 “순간의 색채”를 재현함으로써 “반영구적으로 기억을 존재”하게 할 수 있다는 하기와라의 설명은 윤새롬의 설명과 거의 일치합니다.

알렉스 이스라엘, Sky Backdrop Mural, 2016 (출처: 가고시안)

어떤 대상에 그라디언트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으로부터 그라디언트를 추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현대미술에서 그런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예컨대 알렉스 이스라엘은 <라라랜드>에서 볼 법한 L.A.의 아이코닉한 노을 풍경에서 산맥과 건물, 가로등과 나무를 놔두고 대기만을 떼어내 자신의 시각 언어의 기본 요소로 삼습니다. 그라디언트를 통해 L.A.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감성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니콜라 플록의 <물의 색> 연작 (2016-2021)은 프랑스 북부의 바다에서 수중촬영한 사진을 배열한 것으로, 물고기나 해조류, 쓰레기 같은 방해 요소를 피해 바다의 색과 빛만을 기록했습니다. 행과 열을 따라 이중 그라디언트가 나타나고 있어서, 아래쪽에 있는 사진일수록 깊은 수심 (최대 100m)에서 촬영한 것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해안선에 가깝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의 그라디언트를 분할하고 이어붙여 인간의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 셈입니다. 그라디언트를 추출하는 대상이 꼭 하늘이나 바다 같은 자연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지영의 <붉은 시간> 연작은 촛불의 세부를 분리시켜 그라디언트를 얻어냅니다. 재난 현장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던 <파랑> 연작과 달리, 촛불의 정치적 함의는 물론, 촛불의 온전한 형상조차 생략하고 있어 빛과 열의 미묘한 배열만으로 사유하게 만듭니다.

니콜라 플록, Paysages productifs, Couleur de l’eau 설치 전경 (좌측 벽면) (출처: T)

이처럼 그라디언트는 특정 오브제에 적용되기도 하고, 오브제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데, 오브제를 감싸고 있는 공간에도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공간의 무드를 단숨에 변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인데요.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천장 테두리 부분에 심어진 조명 장치에서 빛이 나오고, 빛이 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밝기가 줄어듭니다. 이처럼 사유의 방의 투톤 그라디언트는 호텔 같기도 하고, 바 같기도 한 고급스러운 무드를 조성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조명의 방향이 두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있는 미륵불의 시선을 두텁게 덧대주면서 감상자는 명상하는 부처님을 외부에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처님의 거대한 눈꺼풀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심취하면 미륵불과 하나가 되어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죠. 반면 공간을 물들이는 그라디언트가 선형linear이 아니라 방사형radial일 땐, 사색에 젖게 하는게 아니라 차라리 경락을 열어주고 감각을 활성화 시킵니다. 이른바 ‘선셋 무드등’이 그렇습니다. 사용 예시 사진을 살펴보면 지긋이 감긴 모델의 두 눈이 부분적으로 미륵보살을 닮은 측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훌러덩 드러난 어깨,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처럼 동공을 확장시키는 요소로 가득합니다. 방사형 그라디언트는 어떤 달작지근한 맛의 확산이랄까요, 입안에 퍼지는 감미로움을 시각적으로 모델링합니다.

선셋 무드등 상품정보 (출처: SSG.COM)

그라디언트는 본연의 특성상 부드럽고, 다정하며, 무해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그라디언트는 어떤 대상을 사탕발림sugar-coat 하는데 동원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대선에서 모 후보가 푸른색-회색 투톤 선형 그라디언트를 배경으로 ‘주적은 북한’이라는 메시지를 적었을 때, 아마도 메시지의 강경함을 그라디언트의 감미로움으로 완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라디언트를 배경으로 깔고 싶어하는 마음과 ‘주적’을 명확히 해두고 싶어하는 마음은 서로 잘 어우러지는 마음은 아니기 때문에 몰취미했습니다. ‘주적은 ㅇㅇ’이라는 명제가 피/아의 선명한 분절을 전제한다면, 그라디언트는 색과 색의 경계가 깨뜨려진 모호한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몰취미가 굉장히 징후적인 것이었음을 필자는 작년 12월 뒤늦게 깨달았는데 이는 글의 주제에서 벗어납니다. ‘명명하기 힘든 색깔’, ‘이름 없는 색깔’을 찾고 싶어하는 윤종주의 마음이 그라디언트 회화 작업을 제작하고 싶어하는 마음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명하기 쉬운 색깔은 분절의 결과물이니까 명명하기 힘든 색깔이 ‘블러 양blur amount’을 조절해 얻어지는 그라디언트의 형태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사용된 SNS 이미지

요컨대 그라디언트는 색을 배치하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색을 전문적으로 배치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거듭해서 그라디언트적 방식으로 색을 배치하게 만드는 조건이나 동력이 무엇인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2020년대는 그라디언트에 대한 수요도 공급도 무척 컸던 시기로 여겨질 겁니다. 이거 지금은 시대를 풍미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후진 것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다음 로고가 바뀌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

독립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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