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성 리뷰 (2024년 1분기)

 

    필자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미술 전시를 본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기 위해 전시를 보는 셈이다. 물론 비현실적인 상황은 미술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정치계에도 있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비현실적인 상황 (혹은 초현실적인 상황)이 생기는 법이지만, 많은 영역에서 비현실이 부산물에 불과한 반면 아트 월드는 비현실을 대놓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필자처럼 시간이 없는 사람은 적은 시간을 투자해서 많은 비현실을 맛보기에 좋다. 오랜만에 서울의 미술 씬을 둘러보니 과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두 가지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글로벌 메가-화랑들이 한국인 작가 단체전을 여는 현상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갈라 포라스-김 작가의 등장이다.

    2024년 1월 11일, 뉴욕에 본사를 둔 갤러리 리만 머핀 서울 지점은 한국인 작가 넷을 초청하여 그룹전 <원더랜드>를 열었다. 26일에는 오스트리아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서울 지점에서 국내 작가 6인전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를 개최했다. 전자도 후자도 모두 비-전속 작가로만 구성된 전시였다. 이게 무슨 일일까. 참 재밌는 일이었다. 가장 민첩하게 기사를 낸 중앙일보는 이 상황을 ‘모시기’로 규정했다. <타데우스 로팍부터 리만머핀까지…차세대 ‘K 블루칩’ 작가 모십니다>(2024.1.27) 이틀 지나서 기사를 올린 경향신문은 ‘보석 찾기’로 봤다. (<해외 갤러리가 찾은 ‘숨은 보석’ 한국 작가들···소수자 서사부터 재난 이후까지>) 재밌다!

    재미있게 느껴지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2월 15일 또 다른 외국계 갤러리인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타임 랩스> 전시가 열리면서였다. 비전속 한국인 작가로 구성된 8인전이었다. 이제 매체들은 앞서 있었던 타데우스 로팍, 리만머핀 전시 소식에 페이스 전시 소식을 보태 기사를 냈다. 2월 13일자 서울신문, <해외 갤러리 ‘K작가 새 얼굴’ 알리기 나섰다> 26일자 조선일보, <외국계 메가 화랑들, 새해 첫 전시는 한국작가展>. 어떻게 세 화랑이 비슷한 시기 (2024년 연초)에, 비슷한 기획(외부 큐레이터 + 비전속 한국인 작가 단체전)으로 전시를 열 수 있단 말인가. 우연의 일치라 해도 비현실적이고, 미리 계획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WONDERLAND>, <NOSTALGICS>, <TIME LAPSE>. 전시들의 제목 자체가 상황의 비현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상황을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돕는 기사였다. “비판적 시각” 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비판적 시각”에 의하면, 해외 갤러리의 잇따른 한국 작가 단체전 개최는 ‘구색 맞추기’로 이해될 수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 해외 작가 작품만 팔아치우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제스처라는 것이다. 기사가 인용하는 미술시장 전문가 A에 의하면, “진짜 숨은 보석을 발굴하고 싶으면, 갤러리 내부에서 직접 현장 조사를 해 작가를 찾아다니며 기획”했을 것이므로, “외부 큐레이터에 맡겼다는 것부터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명분만 쌓겠다는” 심보라는 것이다. 페이스 갤러리 단체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에 미술전문잡지 아트나우에 실린 문답지도 이런 관점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다.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한국 작가는?’ 항목에 대한 답변으로 리만머핀 수석 디렉터, 타데우스로팍 총괄 디렉터, 페이스 서울 디렉터 모두 최근의 단체전과는 무관한 작가를 뽑았다. 미술시장 전문가 A의 말처럼 이들은 크게 에너지를 쏟고 있다기 보다는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모시기’와 ‘보석 찾기’의 판타지를 ‘구색 맞추기’와 ‘명분 쌓기’의 현실로 대체한다고 해서 상황이 완전하게 이해가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글로벌 메가-화랑은 구색을 맞출 필요가 없는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상업 화랑은 상업 화랑이지 국립 미술관이 아니기 때문에 구색이라는 것을 맞춰줄 의무가 없다. 사람들은 메가-화랑이 구색 맞출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구색을 맞추면 어떻고, 맞추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구색 맞출 필요가 없는 행위자들이 다 함께 구색을 맞추는 모습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구색을 내년에도 계속 맞출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지속적인 구색 맞추기는 지속적이지 않은 구색 맞추기에 비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갈라 포라스-김의 비현실적인 나타남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0월 20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단체전. 10월 31일, 리움미술관 개인전 <국보>. 2023년의 가을은 갈라 포라스-김의 등장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계절이었다. 국현에 이어 리움이라니! 놀라웠다. 그런데 놀랍게 느껴지는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으로 전환된 것은 리움 혹은 국현의 복도에서 미술관계자들의 스몰토크를 들은 후부터였다. 국제갤러리와 전시를 논의 중이라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팜플릿은 포라스-김의 ‘외계인’ 같은 시선을 언급하는데, 그는 실제로 약간 외계인이다. 포라스-김은 과거 광주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지만, 한국 미술계에서 아직은 생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요시토모 나라’를 ‘요시모토 나라’가 아니라 ‘요시토모 나라’라고 정확하게 부르는 것과 다르게, 갈라 포라스-김은 ‘갈라파고스 킴’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포라스-김의 등장은 그가 외계인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외계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씬의 내부 회로(“국현-리움-국제”)로의 진입이 놀라울 정도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현실 같지 않고 꿈 같다! 그는 이너 서클의 강력한 필터링을 통과한 인사이더-외계인(intra-territorial E.T.)이라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외계인이다.

    외국계 메가-화랑들이 동시적으로 국내 작가 단체전을 여는 움직임은 그 ‘목적’과 ‘의도’를 모르겠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반면 갈라 포라스-김의 등장은 목적과 의도는 분명하게 알겠는데 그 ‘수단’과 ‘방법’을 모르겠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포라스-김 작업의 매력은 그가 고대인의 영혼, 고대 아메리카 문명의 신과 교감(을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데서 일정 부분 연유한다.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초월적인 힘”을 상상하고 그것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연출한다. 그런데 포라스-김의 등장 자체가 ‘크고 초월적인 힘’에 빚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그 힘이란 다름 아닌 전속갤러리의 정치력이다. LA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커먼웰스앤카운슬은 ‘메가-화랑’은 아니다. 3월 2일자 뉴욕타임즈 기사가 언급한 것처럼 적자상태 (“in the red”)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가-정치력을 갖춘 화랑이다. 3월 2일자 뉴욕타임즈 기사가 언급한 것처럼 ‘재정적 불안정성’을 ‘영향력’으로 상쇄할 수 있을 정도다. (“If the gallery lacks financial security, it compensates with influence”) 커먼웰스앤카운슬의 정치력은 크고 초월적이다. 창업한지 20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갤러리임에도 휘트니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유수 미술기관에 다수의 전속 작가를 진출시켰다. 한국 아트 월드의 내부 회로에 접속한 방법이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미스테리였던 것처럼 미국 아트 월드의 내부 회로에 접속한 방법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미스테리이다. 2022년 뉴욕의 행사에서 한 관객은 커먼웰스앤카운슬 공동대표 김기범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How did you get her into the Whitney Biennial? It’s every artist’s dream, every gallerist’s dream. I would just love to hear more about that!” 모두가 들어가기를 꿈꾸는 (dream) 리그에 전속 작가를 입장시킨 (get her in) 비결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질문자는 질문자가 원했던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영업비밀을 물어본다고 해서 영업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커먼웰스앤카운슬은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적 염원의 산물product of neo-liberal aspirations’로 묘사하는 김기범 공동대표의 합류 이후 이너 서클로의 진입이 본격화 된 것으로 보인다. 티나킴갤러리 (2018 그룹전)-삼성물산 (2022 비이커 팝업) 등 한국 미술계의 내부 회로와의 연결도 그렇다. 그 방법과 수단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미술 제도는 미국의 한국계 아트 딜러가 발굴하고 다듬은 원석을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 ‘모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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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연구자. 동숭동 후미진 정원(///솔방울.고백.전략)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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