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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음의 세 논문을 종합하여 작성한 논평문을 보완한 것입니다.
- Boccagni, P. (2016). From the multi-sited to the in-between: ethnography as a way of delving into migrants’ transnational relationship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Research Methodology, 19(1), 1-16.
- Hannerz, U. (2003). Being there… and there… and there! Reflections on multi-site ethnography. Ethnography, 4(2), 201-216.
- Marcus. (2009). Chapter 10: Multi-sited Ethnography: Notes and Queries. In Multi-sited Ethnography (pp. 181-196). Routledge.

한네르즈(Hannerz, 2003)의 글 초반에는 에반스 프리처드(Edward Evan Evans-Pritchard)를 중심으로 20세기 인류학 전통 아래 인류학 연구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길게 나열되어 있다. 가령, ‘전체 문화와 사회 생활’을 연구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오랜 시간 현지에 머무는, 한 사회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데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그런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를 통해 연구자가 그곳에 있다(being there)고 믿어지고, 기념되었던 인류학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i)가 파푸아뉴기니 남동부의 여러 섬들 사이의 교환 체계인 쿨라링(Kula Ring)을 따라 이동하며 연구했던 점을 지적하면서 다현장 연구가 아주 최근의 것만은 아님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문화기술지 쓰기가 ‘가능성의 예술’이라면, 오늘날 어떠한 방식의 방법론적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여러 개의 현장을 연결하는 방법에 관한 한네르즈의 본격적인 주장 이전에 나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만큼 오랫동안 먼 현장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는 어떠한가? 어떠한 물적 조건 위에 있기에 이러한 현장 연구가 가능했는가? 최근 일-생활의 균형에 대한 새로운 시각, 환경 문제,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적 비판 등으로 인해 최소 1년 이상 ‘먼 곳’에서 머물며 현장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인류학의 암묵적 요구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는 학자들이 증가했다(Günel & Watanabe, 2024). 이들은 현장의 고정성, 현장-집 사이의 구분, 젠더화된 연구 관행 등을 비판하면서 패치워크 문화기술지(patchwork ethnography)에 대해 논하는데, 이는 다양한 현장을 연결한다는 의미뿐 아니라 연구자 스스로가 어떤 교차로 위에 서있고 그러한 교차로 위에서 어떻게 지식이 생산되는지 솔직해져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즉, 파편화되고 불연속적인 실제 위에 서있는 것은 연구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다중 현장을 강조하는 텍스트들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한네르즈(Hannerz, 2003)의 글로 다시 돌아오면, 그는 70명의 해외 특파원을 연구함으로써 인류학자와 현장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한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다현장 연구(multi-site study)’와 ‘여러 지역 간의 비교 연구(comparative study of localities)’를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한네르즈는 연결성(linkage)에 주목하여, 다현장 연구가 현장 간의 연결점들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랬을 때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은 주목하는 주제나 분야를 둘러싼 현장들이 어떠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특수성을 살피는 것이다. 보카그니(Boccagni, 2016)의 논의도 유사한 방식으로 방법론적 성찰을 요구하는데, 그는 특히 초국적 연구와 다현장 연구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본적으로 두 연구 관점은 말리노프스키 컴플렉스(Malinowskian complex)를 넘어서고자 시도하는데, 말리노프스키적 전통에서 연구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나 공동체 등 특정 체계에서 대상을 발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면, 이 두 가지 관점은 연구 대상이 혼종적이며 계속해서 재조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자 시도하는 것에 가깝다(Boccagni, 2016; Marcus, 2009). 또한 이 두 관점은 공간에 대한 관계적 접근을 바탕으로, 문화나 사회를 특정한 경계나 영토를 기반으로 분석하는 것의 부당성을 강조한다. “‘전면적이지만 전체를 추구하지 않는’ 혹은 보편적인 연결을 강조하지만 전체를 전제하지 않는(holism without wholeness) 시각”(项飙, 2017/2024, 87쪽)은 공간적 연결과 확장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이점을 가져다줄 것인가?
상호 연결된 여러 현장을 동시에 참조하는 것은 여러 이점이 있지만, 초국적 연구를 다룬 보카그니(Boccagni, 2016)의 글에서 주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다양한 현장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개인적 상호작용과 감정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감정이 초국적으로 순환되고 있다는 지적은 흥미로우면서도, 제도 바깥의 다소 추상적인 초국적 관행들과 감정들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는 현장에서의 어려움으로 지속해서 남아있을 듯 하다. 또한, 이주자들의 적극적 행위자성이나 감정적 상호작용 등을 오히려 출신지에서 살필 수 있었다는 깨달음은 초국적 연구를 함에 있어 출신지를 중요한 현장으로 삼는 것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여기서 국경을 넘는 활동 및 연결이 국내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는 샹뱌오(项飙, 2017/2024)의 지적을 떠올린다. 초국적 연구를 할 때, 국경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점을 짚으면서 그는 국내 및 국제 인구 이동 사이의 관계를 봐야함을 강조한다. 상하이에서 서울로 이주한 사람을 국경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자로만 설명될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되는가?[주1] 단순히 초국적 이주의 과정이 글로벌 수준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뿐 아니라, 이것이 풀뿌리 수준에서의 사회변동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다현장 초국적 연구의 관계적 접근에 관한 이해를 더한다.
[주1] 위 내용은 공간주의 구성원 이승빈과 함께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에 관해 논의한 내용에 기대어 덧붙였다.
끝으로, 세 텍스트를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으로 남아있는 점은 시간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마커스(Marcus, 2009)의 지적이다. 그는 다현장 프로젝트에서 공간적 문제만큼이나 시간적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건의 흐름과 변화의 템포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193쪽) 말한다. 다중 ‘현장’이기에 공간적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시간성에 관한 강조가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시간성의 문제와 그 역동을 어떻게 텍스트에서 드러낼 것인가?[주2] 이를 테면, 다현장 연구를 한다고 할 때 연구자의 현장에서 현장으로의 이동과 현장 연구의 멈춤과 재시작,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생긴 제약 같은 것들은 어떻게 글에서 가시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주2] 시간의 문제에 관하여 공간주의 구성원 김영대는 베르그송이 헤겔적인 진보의 시간이 아닌, 과거의 축적과 미래의 가능성을 포함한 지속으로 시간을 개념화했다는 점을 지적해주었다. 이러한 지속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상호작용 속에 있는 관찰자의 시간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다중현장문화기술지가 공간뿐 아니라 다중시간의 접합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은 시간의 문제를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진출처
[위] Malinowski, B. (1922). Argonauts of the western Pacific: An account of native enterprise and adventure in the archipelagoes of Melanesian New Guinea. Routledge.
[아래] https://pin.it/28PDpPZiX
참고문헌
项飙 (2017). 跨越邊界的社區: 北京“浙江村”的生活史. 박우 (역) (2024).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 글항아리.
Günel, G., & Watanabe, C. (2024). Patchwork ethnography. American Ethnologist. 51(1), 131-139.
신지연
플랫폼 공간주의를 함께 기획했다. 문화인류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동아시아의 모빌리티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