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원리를 따르면서 외적 세계의 현실을 무시하는 유기체란 단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존재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은 정당하게 주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그 유아가-어머니의 돌봄으로 인한-하나의 어떠한 정신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위와 같은 가설은 정당화 될 수 있다.“
– <정신 기능의 두 가지 원칙에 대한 이론>의 각주, 지그문트 프로이트
1. 서문
월터 테비스의 1983년 소설 <퀸스 겜빗>을 원작으로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2020년에 제작된 7부작 미니시리즈 퀸스 겜빗은 기본적으로는 체스 드라마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집중한 드라마기도 하다. 퀸스 겜빗이란 한 오프닝(게임의 시작)을 일컫는다. “겜빗은 경기 초반에 상대에게 폰을 하나 내어주고 다른 이점을 취하는 체스 전략이다. 여행과 항해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겜비토에서 유래한 이 전략은 폰을 희생하는 것인 만큼 모험적이고 위험도가 높다” (1) 는 원작 소설의 추천사의 말처럼 한 인간의 성숙이나 발달은 달성하기 어려운 위험한 게임과도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숙한 인간이란 틀에 박힌 정상,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퀸스 겜빗의 엘리자베스 하먼은 성숙해져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나는 체스의 내용보다는 베스와 그녀의 놀이와 중간대상에 주목해서 이 드라마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 또한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사연이 있는 존재이다. 그녀는 우선 모성을 세 번이나 박탈당한다. 첫째는 친모, 둘째는 원장, 셋째는 휘틀리 부인이다. 제대로된 양육자 없이 느껴진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상실감과 실패한 애도는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천재성이자 창조성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재능 중 하나는 단연 체스 실력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샤이벌 씨를 만나 체스라는 중간대상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환영을 볼 정도로 그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그러나 그녀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것은 체스 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성장 할 수 록 어린 시절 먹었던 초록색 알약의 리브륨이라는 진정제와 알코올에 중독되어간다.
2. 중간대상으로서의 체스
“-베스: 체스는 게임인 동시에 아름다워요(…)단 64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이잖아요 그 속에선 안전함을 느껴요. 제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지더라도 제 탓 인거죠.
-타임지 인터뷰어: 창의성과 정신증은 함께 가거든, 동전의 양면이라고나 할까?“
-<퀸스 겜빗>中
“수준 있는 체스를 책으로 배우려는 사람은 체스의 시작과 마무리에 관한 체계적인 설명만 일으려 해도 지칠 지경인데, 체스의 오프닝과 더불어 벌어지는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를 보면 그런 체계적 설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랄 것이다. 체스의 대가들이 벌이는 실제 수 싸움에 대해 연구하는 것만 이 그런 책의 빈틈을 메워줄 것이다. 정신분석치료의 임상에 필요한 규칙들은 이와 비슷한 한계점들을 가지고 있다.“
– 프로이트 <치료의 시작에 관하여> (1913)
체스게임은 정신 분석 상담의 분석세팅과 매우 닮아있다. 각자 대화의 정해진 시간, 대본을 읽는 듯, 하지만 명확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적시에 체스 수를 두듯이 반응해야 하는 것, 최종적으로는 어떤 수를 두어야 꽉막혀버린 갈등을 해결할지와 같은 것들이 말이다. 그리고 64칸의 공간처럼 상담실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체스는 각 선수간의 대화와도 같다.그러나 동시에 감추며 소통하기를 완강히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수를 두는 것이 그의 성격이 어떤지를 보여주기도 하고(예를 들어 실수나 결정적인 수, 오프닝) 어떤 말을 교환할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일종의 대화의 수단과도 같다. 베스가 작중에서 화와 불안이 많다는 것, 그리고 수학적인 직관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체스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이런 점들은 차치하고 나서라도 체스는 베스에게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체스는 베스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도날드 위니코트(1896-1971)는 정신분석사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중간대상이라는 개념과 자신만의 놀이치료이론, 참자기와 거짓자기이다. 그에 따르면 “놀이는 심리치료에서 의사소통의 한 형태일 수 있으며, 아동과 성인이 창의적이고 전체적인 성격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놀이”(2)이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확장인 것이다. 베스는 작중 내내 체스로만 의사소통을 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할 대상이 없다고 확신한다. (적어도 베니 왓츠나 보르고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중간대상이란 “아동이 갖게되는 최초의 소유물이자 발견해내고 창조해 낸 것이며 유아의 분리할 수 없는 한 부분”(3)으로서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부드러운 담요나 장난감 등의 물건”(4)을 가르키지만 여러 대상-가령 동물-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베스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만지기 시작한 물건이 체스라는 사실을 기억해보도록 하자. 이 물건의 역할은 “어머니에 대한 상실과 유기 불안을 막아주고 사랑과 위로와 안정을 주는 환각을 보존하는 것”(5)이며 그 “대상은 자체의 온정과 생명력을 지니며 그것은 외부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6) 또한 “중간대상은 특별한 자질을 가진다. 아기는 대상을 공격하면서도 외부 현실에서 계속 견디어내는 대상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기 시작”(7)하고. “중간대상의 기능 중 하나는 아이에게 실제적인 상황을 스스로 마술적으로 통제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아이는 지금 어머니에 해당하는 실제의 대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과 과거 사이에 있는 간극을 극복해나가기도”(8)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체스와 약물복용에서 베스가 통제하지 못하는 현실을 완벽하게 통제해나는 동시에 손과 입으로 맹렬히 공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체스와 약은 베스에게 있어 상실감을 대체해주는 존재이다. 베스의 세계에게서는 처음에 빼앗겼던 곰돌이 인형처럼, 체스와 약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위니코트는 이렇게 말한다. “대상의 운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연옥에 내려앉게 된다.’”(9)고, 이처럼 중간 대상은 “점진적으로 아이의 관심을 잃게 되면서, 방치되고, 잊혀지는 것이 본래의 운명”(10)이지만 엘리자베스 하먼처럼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중간대상은 기호와 상징으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중간 대상이 강제성을 띠게 될 때, 그것은 주물의 특질”을 갖는데 “이때 중간 대상은 더 이상 건강과 발달을 촉진하지 못하며 자아에 덧붙여진 누더기 조각이 된다.”(11)이렇게 체스의 승리에 대한 강한 집착과 강박적 태도는 그녀의 독립적이지 못하고 자기-파멸적인 거짓된 성격의 근원이 된다. “위니코트는 어릴 때 배우지 못한 것은 청소년기 때 다시 재현되며 나아가 나중에는 반복적인 신경증적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12) 고 보았는데 요컨대 베스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개발하지 못한다. 입으로 섭취하는 알코올, 약물을 통해서 쓰라림을 달래거나 손가락으로 혼자 둔 체스 경기를 복기하는 것이 전부인 삶이다. 베스의 작은 세계에서 그녀는 이기는 것 외에 다른 버전의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절대적인 의존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환각적 만족처럼 베스에게서 환영으로서의 체스판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어머니와 분리된 것에 따른 애도 작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베스에게 있어서 체스, 약물, 술은 주관적 대상처럼, 마치 자신의 연장선상인 것처럼 경험된다. 베스 속의 창조성은 회차가 거듭 될 수 록 그녀가 좌절함에 따라 점점 빛을 바래가고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중독적 증상에 대해 마수드 칸(1924-1989)은 내담자가 만들어낸 자기 치료로 인해 참 자기를 잃어버리고 거짓 자기로서 연기하고,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3. 독립과 참자기로서의 창조성
“제일 첫 번째 대상은 ‘창조된/발견된 대상이다.“
– 도날드 위니코트
“이전에 발생한 어떤 것에서도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것은 시작의 본질에 속하는 성격이다. ‘사건의 예측불가능성’은 모든 시작과 기원에 내재한다.“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베스는 자기를 찾는 모험에서 언제나 알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직관적으로 체스를 두는 자신이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자기, 날 것 그대로의 표상에서 출발하는 베스는-우리 모두가 그렇듯이-특별한 존재다. 사실 환영이나 환각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베스에게 약간의 정신증상태가 존재하면서도 인간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렇기에 인간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크리스토퍼 볼라스는 <대상의 그림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무드안에 있을 때, 개인의 자기의 일부는 생산적인 자폐 상태로 철수함으로써 복잡한 내적 과제를 작업해 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받는다.”(13)고 말이다. “중간 영역(※)안에서 유희적이고 창의적으로 그 시공간을 채우는 것이 가능한 아이는 그 안에서 (…)혼자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혼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그곳에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혼자 있다는 것은 누구와 함께 혼자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내적 대상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4)는 말처럼 그녀는 이제까지 고독하게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타자인 보르고프와의 마지막 대국에서 홀로, 그러나 자기와 함께 완전히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알게 된다. 그녀의 진정한 능력이 만개하는 순간은 안정제인 리브륨을 들이부었을때도, 연습게임을 할 때도, 편법을 사용할 때도, 누군가를 모방할 때도 아니다. 오히려 삶의 갈등을 진정으로 마주했을 때이다. 그녀는 체스가 아닌 삶이라는 놀이에 참가하기를,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내적 자기와 혼자 있기를 받아들였을 때, 시계초침만이 움직이는 그 고요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진정한 환영을 천장에서 보게 된다. 타자와의 놀이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참자기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승리를 거둔뒤에 기권한 보르고프의 “its your game” 이라는 말은 이렇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한 개인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통합된 한번의 신성한 순간으로 말이다. 대국을 마친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상이나 더 큰 목표를 향해 체스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적인 체스로 처음의 즐거움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중간 대상을 홀가분하게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운명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하먼은 성숙했는가? 그것은 모른다. 인간은 계속해서 존재하며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은 평생 동안 환상과 그 환상의 와해 그리고 환상의 복구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견디어내는 능력으로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달하는” (15)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되어가는 존재로서 베스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 열린 결말의 여정이 그녀의 퀸스 겜빗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살아있음을’ 계속되게 한다. 나는 이렇게 베스 하먼을 응원한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항상 미완성으로 남는다.”

주석
(1) <퀸스겜빗>, 추천사 中
(2) 아동정신분석의 거장 도널드 위니컷> p105, p107
(3) 위의 책 p130
(4) <정신분석 용어사전> p325
(5) 위의 책 p325
(6) 아동정신분석의 거장 도널드 위니컷>p131
(7) <100% 위니캇> p96
(8) 위의책 p92
(9) <리딩 위니코트> p155
(10) <100%위니캇> p99
(11) <정신분석 용어사전> p326, <100%위니캇> p99
(12) <100%위니캇> p79
(13) <대상의 그림자> p137
(14) <100%위니캇> p74 “위니코트는 통합의 성취를 ‘하나의 단일체’로 기술함으로써, 통합을 버텨 주기와 밀접하게 연결한다. 단일체에서는 ‘나는~이다’ 라는 감각이 생겨나는 것이 ‘내가 누군가에 의해 하나의 존재로 보이고, 이해된다’ 는 믿음을 포함하며, 이 믿음은 ‘내가 한 존재로서 인식된다는 내게 필요한 증거’를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봄으로써 발생한다.” -<아동정신분석의 거장 도널드 위니컷> p93
(15) 위의 책 p69
참고문헌
안느 르페브르,<100% 위니캇>,한국심리치료연구소,2016
Michael Jacobsen,<아동정신분석의 거장-도널드 위니컷>,학지사,2014
안젤라 조이스,레슬리 칼드웰,<리딩 위니코트>,NUN(눈출판그룹),2015
크리스토퍼 볼라스,<대상의 그림자>,한국심리치료연구소,2010
미국정신분석학회,<정신분석 용어사전>,한국심리치료연구소,2002
도널드 위니코트, <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한국심리치료연구소,2000
윌터 테비스, <퀸스 겜빗>, 연필, 2021
※ 덧붙이는 말
“중간 영역(intermediate area)”이라는 이 공간은 위니코트의 개념으로서, 도전받지 않는 심리적 영역에 속하며 어머니의 돌봄하에 허용되고 체험되는 공간이자 유희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역은 중간 대상과 있는 바로 그곳에서 유아에게 그 대상의 객관성이나 주관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중간영역은 예술, 종교, 문화와 연관된다. 요약하자면 꿈을 꾸어도 되는 자유로운 공간이며 이렇게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중간영역을 형성하는 것은 한 사회의 문화영역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허용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쓰레기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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