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와 공간연구, 상호참조의 가능성 (feat. 화장실)

 

나는 몇 년 전부터 여성들의 여러 종류의 ‘이동’과 ‘신체감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나 스스로가 여성이자 이주자이고, 지금도 서울의 외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성들이 왜 이동을 결심하는지, 이동 과정 중에 어떠한 감각과 변화를 느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이동성(mobility)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는 여성주의 연구에서 공간적 사유를 확장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또한 이동성을 사유함에 있어 기존의 질문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성을 느꼈다.

여성주의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접근이나 여성주의적인 공간을 형성해나가자는 운동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공간적 사유에 여성주의가 주는 함의를 돌려 반대로 공간적 사유가 여성주의에 주는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 지리학자들은 여성학 연구에서 ‘공간’이 주로 담론적 차원으로만 다뤄져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여성성(남성성)을 규정하는 데 ‘물질적 공간’이 어떤 식으로 개입하는지, 공간의 변화가 젠더 관계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여성주의 지리학자 도린 메시(Doreen Massey, 1994/2015)는 공간과 장소가 어떻게 젠더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반대로 젠더가 구성되고 이해되는 방식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피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여성주의와 공간연구가 어떻게 상호 참조를 통해 새롭게 구축될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장실 공간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화장실이 젠더화되어 있다는 데에 의문을 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통 우리는 성별이분법에 따라 나누어진 화장실을 선택해서 들어가야 하고, 여성과 남성 화장실은 비슷하지만 매우 다른 구조를 띤다. 여성 화장실은 세면대와 칸으로 나누어진 좌변기가 있는 구조라면 남성 화장실은 세면대와 소변기, 그리고 칸으로 나뉜 좌변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인 나는 남성 화장실의 구조나 이용행태를 잘 알지 못하지만 예를 들어 이런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용변을 보는 행위가 공적 공간에서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할 때, 그것을 칸으로 분리되어 쓰는 여성 화장실 이용자와 (소변의 경우) 공개된 소변기에서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남성 화장실 이용자는 어떻게 다른 감각을 가지는가? 이러한 젠더화된 화장실 공간은 호모 소셜 경험(Homosocial experience)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여성 화장실과 남성 화장실은 각각 어떻게 상상되는가? 여러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젠더화된 화장실이 동시에 어떻게 젠더가 구성되고 이해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이 무엇을 강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하위 스케일로서의 ‘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인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45/2002)는 인간의 몸이 마음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그는 ‘몸주체’를 말하면서, 몸과 몸의 행동,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총체적으로 지식의 형태를 구성해나간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공간이자 장소인, 동시에 여러 스케일의 놓인 몸, 그리고 체현(體現)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몸은 같은 맥락을 공유하지 않으며 어떤 몸은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몸은 지각하고 체험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세상에 의해 대상화되는 ‘몸’이기도 하다(Young, 2005). 여성들은 여러 공간에서 경험하는 억압과 대상화에 의해 “억제적 지향성(inhabited intentionality)(앞의 책, 35쪽)을 보이는데, 이 말인즉슨 어떤 몸들은 특수한 상황 위에서 특정한 신체 구성 방식을 획득하거나 발전시켜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화장실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불법촬영 문제가 확대되면서 여성들은 화장실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구멍이나 틈을 찾고, 보이는 구멍과 틈을 휴지로 막거나 마스크나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용변을 보기도 한다. 공포감 속에서 원치 않는 습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공공 화장실 자체가 불안과 공포의 공간이 되면서 어떤 여성들은 아예 이용 자체를 포기하기도 하며, 이를 우려해 바깥에서 물이나 음료를 마시는 걸 자제할 수도 있다.

짧은 예시를 통해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공간 연구자들이 여성주의를 참고하고 차용한 만큼, 페미니즘 연구자도 공간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때의 사유는 하나의 스케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며, 특히 나는 하위 스케일로서의 ‘몸’을 살피는 작업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은 분명 몸, 도시, 국가, 지구 등 무수히 교차하는 물질세계에 위치해있으며, 인식론적으로도 교차하는 다양한 구조와 행위자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여성주의와 공간적 사유가 어떻게 상호 참조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상상해본 것이다. 또 다른 제안이 있다면 누구든지 이 글에 응답해주길 바란다.

 

신지연

광주에서 나고 자랐고 커뮤니케이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여성청년들의 이주 실천과 모빌리티에 대한 연구로 석사 과정을 마쳤고, “공간주의”를 공동 개설했다. 여성주의와 글로벌리제이션, 인터아시아 연구에 관심이 있어 왔고, 서울에서 외지인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여전히) 고민 중에 있다. 아시아 음악과 드라마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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