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구(球)와 물곰팡이

공간주의 쇼트는 짧은글, 습작, 메모노트, 아이디어노트, 소식 등 가벼운 작업물을 부담 없이 저장하고 공유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제 *짧게* 주의해보십시오.

 

 

윤미선 작가의 개인전 《구(球)와 물곰팡이》를 관람했습니다. 윤미선은 섬유 작업에서 출발해 드로잉과 회화로 활동반경을 넓혀오며 ‘초상’이라는 형식을 일관되게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작년 개인전이 ‘원형’이라는 도형과 ‘초상’이라는 형식을 연접시켜 원형 초상(circular portrait)이라는 제목을 제시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윤미선의 초상은 ‘구’라는 형태를 기반으로 삼는데요. 《구와 물곰팡이》에서 선보이는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시전경

‘초상’의 범주 안에서 ‘구’라는 조형 단위가 작동하는 양상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면 구는 거친 작도의 산물처럼 등장했다가(〈P26-8〉), 다육질의 잎처럼 눌리고 밀착되며 일종의 구근(球根)을 이루기도 하고 (〈P26-23〉), 구와는 무관해 보이는 요소들이 끝과 끝을 물며 느슨한 원형 루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P26-20〉) 한편 〈P26-3〉 같은 작품에서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크고 작은 획들이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곧 형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P26-7, 2026, Pencil and acrylic on paper, 50 x 40 cm
P26-5, 2026, Acrylic, pencil, oil pastel, oil stick, conte on canvas, 72.7 x 53 cm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된 구가 따로 노는 파편으로 흩어져 버리지 않고, 일정한 통일성을 갖게끔 모아주는 실마리가 있다면, 바로 그것들의 ‘표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윤미선 회화에서 표면은 종전의 드로잉과는 다른, 독자적인 표현성을 얻은 듯 보였습니다. 예컨대 〈P26-5〉와 〈P26-7〉는 ‘턱 괸 얼굴’이라는 동일한 형상을 그리고 있지만, 연필 드로잉인 〈P26-7〉이 서로 다른 경도의 연필을 밀도 높게 중첩시켜 구의 순도를 끌어올린다면, 회화인 〈P26-5〉에서 구의 표면은 부식되고 번지며 거의 ‘오염’된 듯 보였습니다. 이는 작가가 조색 과정에서 마주했다고 밝힌 바 있는 물곰팡이의 흔적과도 닮아 있습니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물감통에 서린 물곰팡이가 안료를 섭취하고 남긴 침전물에서 작가는 미적 감흥을 느꼈고, 그 “기묘한 탁함”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조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화 속 구가 구의 ‘이상형’(idea)으로부터 현저히 비껴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물리적 제약을 의식해야 하는 종이와 달리 회화의 질긴 지지체가 부식과 오염을 향해 길을 열어주기 때문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시 전경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표면의 부식과 오염이 단순한 효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초상’의 개념을 흔드는 윤미선의 작업 방향과 정확히 맞물리는 한에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를테면 윤미선의 초상은 개성, 자아, 정체성 같은, 각 개인이 지닌 고유한 개별성을 탐색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예컨대 화면 속 인물은 성별이나 국적을 유추하기 어려워서, 이른바 ‘오리-토끼 착시’처럼 이것으로도 보이고, 저것으로도 보이는, 혹은 그 어느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다중적 존재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2인 초상(double portrait)으로 배치된 커플 마저도 (〈P26-8〉, 〈P25-33〉) 이분법적 구분의 공허함을 환기하듯 중성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물론 이번 전시에는 〈P26-12〉처럼 전통적 여성상의 노스탤지어를 환기하거나, 〈P26-13〉처럼 수녀의 위선을 폭로(protrahere)하며 초상화(portrait)의 어원적 의미를 지키는 작업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미선의 초상은 대체로 단일한 인물의 정체성을 고정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고, 작가를 거쳐 간 수많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감정과 기억이 변형되고, 소멸하고, 부식되며 다시 새로운 감정을 배양하는 그 과정 자체를 드러내는 듯 보였습니다. 요컨대 윤미선의 초상은 수많은 타인의 궤적이 중첩된 ‘군상’이라고도 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와 물곰팡이》는 오랫동안 작업의 구심점이었던 ‘구’가 회화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물질화되고 또 부식되는, 그러면서 스스로의 순도를 낮춰가는 과정으로 읽혔습니다. 그동안 구 (혹은 그 단면인 원)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작가가 물곰팡이로 은유되는 우연성과 불완전성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윤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 했습니다. 구라는 완벽한 형태 안에서 안식을 찾는 대신, 부식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말입니다. 안식에의 강박은 역설적으로 삶을 조금씩 부식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부식을 포용할 때 더욱 지속가능한 안식에 닿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전시에서 회화라는 매체는 부패와 혼탁을 경유해 새로운 감각과 윤리를 배양하는 배지(培地)가 된 것 같았습니다. 

 

Ports/Faces

독립 연구자

search previous next tag category expand menu location phone mail time cart zoom edit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