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보이는 그리드, 안보이는 그리드

공간주의 쇼트는 짧은글, 습작, 메모노트, 아이디어노트, 소식 등 가벼운 작업물을 부담 없이 저장하고 공유해 의견을 나누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제 *짧게* 주의해보십시오.

 

 

지난 4월 SETEC에서 열린 아트오앤오 아트페어에서 톰 하우스의 소품 연작을 봤습니다. 몬스테라와 고양이, 선인장과 뱀, 튀어오르는 개구리 같은 것을 그린 도상들이 5×3 그리드로 배치되어 있었고,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보드 같기도, 인스타그램 피드 같기도 했습니다. 서사적 개연성이 없어 스토리보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오히려 그 무작위성이 인스타 피드와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토리보드냐 피드냐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작품이 내가 알고 있는 하우스의 작업 경향과 무척 달랐다는 점입니다. 2022년 서울에서 개최된 개인전 <아날로그 개구리 황혼 교향곡>에서 본 건 500호 안팎의 대형 회화였습니다. 소품도 일부 있었지만, 한두점에 불과해 그리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 인터뷰도 초대형 캔버스를 배경으로 합니다. “보통 이런 크기로 작업해요. 실물 크기로 그릴 때 대상과 더 쉽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죠. 그래야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몰입된달까요. 작품이 나보다 커야 더 빠져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A collection of fifteen colorful paintings displayed in a grid format on a wall, featuring various subjects like cacti, fruits, and human-like figures.
톰 하우스, 제목 불명
(출처: 필자)

아트오앤오에서 본 소품 그리드는 톰 하우스의 포트폴리오에서 예외적인 작업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우스의 통상적인 작업(큰 그림)과 예외적인 작업(작은 그림)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요. 작년의 런던 개인전은 대형 작품의 ‘거침없는 활력unruly vitality’과 그리드 신작의 ‘경직된 분류체계rigid taxonomy’를 대비시켜 소개했습니다. 이 깔끔한 구분은 감상자에게 신작과 구작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지시킨다는 이점이 있고, 예외적인 작업의 예외성을 부각시키는 탓에 신작과 구작을 이어주는 고리를 보지 못하게 할 소지가 있습니다. 이분법적 명쾌함 자체가 분류학적 경직성의 결과물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작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하우스의 신작이 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신작은 그것이 새롭다는 점에서 새롭고, 구작을 새로운 눈으로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또 새롭습니다.

A painting featuring a person wearing a green shirt and blue pants, balancing two birds in their hands, surrounded by various plants and sandy terrain, showcasing a vibrant and figurative style.
톰 하우스, An Exquisite Journey…
(출처: 작가 인스타그램)

하우스의 회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소재는 식물입니다. 야외 풍경이건 실내 풍경이건, 하우스의 도상에는 언제나 나무와 풀, 꽃이 편재합니다. 식물이 부재할 땐, 주전자가 선인장을 따라한다던지, 사람의 팔이 나무 줄기처럼 길게 연장되는 식으로 식물 아닌 것이 식물을 흉내내곤 합니다. 하우스는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로 앙리 루소를 꼽습니다. 소박파 거장 루소는 정글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식물 사랑은 루소와 하우스의 공통점이고, 두 작가의 그림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루소의 대표작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에는 최소 여덟 가지 식물종이 뒤섞여 있고, 하우스의 ‘An Exquisite Journey…’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식물 유형은 열 네가지 이상이네요.

A vibrant tropical scene featuring a person and a horse resting among lush green foliage and colorful flowers.
앙리 루소,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 1910
(출처: 위키아트)

하우스가 루소로부터 멀어지는 건 식물을 배치하는 방식에서입니다. 루소는 우거진 전체를 조성하기 위해 개체와 개체를 부단히 중첩시킵니다.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의 두 주인공, 말과 재규어는 정글의 울창함 속에 포박된 형상입니다. 말 못지않게 재규어도 잡아먹히고 있어요. 뾰족한 잎사귀들은 먹잇감을 꽉 문 이빨 같습니다. 반면 하우스는 루소의 밀림과 비교할 수 없이 밀도가 낮은 공간을 그립니다. 하우스는 나무에 나무를 덧대 숲을 만들지 않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신중하게 간격을 둡니다. 개체를 하나씩 감상, 혹은 관상하라는 듯 띠엄띠엄 배치합니다. 여러 식물이 한데 모여있을 때조차, 식물은 각자의 작은 영토를 할당받아 이웃과의 거리두기를 유지해요. 하우스의 그림은 식물 도감이 아니지만, 개체를 배열(taxis)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식물 도감적 성격이 있습니다. 

하우스의 작은 신작을 큰 구작과 간명하게 구분시켜주었던 ‘택소노미’ 개념은 신작과 구작을 한 덩어리로 파악하는데에도 요긴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대형 회화에서 나타나는 식물의 분산 배치는 개체와 개체의 접촉을 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격자의 존재를 상상케 합니다. 대형 회화의 약한 통합성을 깨뜨리고 조각 조각 분절시킨 것이 소품 그리드일 수 있습니다. 소품의 ‘경직된 택소노미’와 대형 회화의 ‘경직되지 않은 택소노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가 재미있습니다.

A painting featuring a stylized bald head in pale colors, surrounded by a pattern of green dots against a light pink background.
톰 하우스, SPOTTED MONOBROW, 2012년 경
(출처: Amelia Gregory)

경력 초기에 하우스는 단일한 오브제를 그리는 작가로 주목 받습니다. 하나의 사물을 골라 왠만해서는 그것만으로 화폭을 채우는 겁니다. 이런 작업 스타일을 가리켜 “실망스러울 정도의 단순함”이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나봅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하우스는 고독한 사물에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홀로 동떨어진 오브제가 갖는 “일체감과 완전함”에 하우스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기에 무언가 덧붙일수록 효과가 반감된다고 보죠. 사물의 개별성에 대한 하우스의 지속적인 관심은 나중에 대형 풍경화에서 나타날 배열의 미학을 예고하고, 신작 그리드까지도 관통하는 일관된 조형 원리가 됩니다. 

하우스의 그림이 ‘생명체의 위계를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한다는 설명은 그의 독특한 택소노미에서 일말의 정치성을 읽어내려는 시도일 겁니다. 수직적 질서를 누그러뜨리는 작가라는 프레임으로 하우스를 바라보면, 지금 주류 미술계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되는 가치기준에는 잘 맞아떨어지지만, 이 글에서 살펴본 하우스의 간격의 미학, 혹은 간격의 윤리에 담긴 함의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통속적이 되는 것입니다.

A colorful painting featuring stylized white fish-like shapes on tall, thin stems against a blue background, evoking a playful and whimsical atmosphere.
톰 하우스, Teapot collection, 2016
(출처: 작가 인스타그램)

 

Ports/Faces

독립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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