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매체와 개그 만화의 재구성: 『멍텅구리』에서 병맛 만화까지

 

개그 만화는 지표성이 강한 만화 장르다. 이는 개그 만화가 단순히 일상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웃음의 의미가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1], 개그 만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해당 작품이 창작된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장르라는 원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개그 만화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텍스트, 제작자, 수용자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생성되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개그 만화의 지표성과 이를 토대로 한 웃음의 분화와 장르적 변주를 논의하기 위해, 개그 만화가 연재된 매체의 변화를 중심으로 개그 만화를 재구성하겠다. 즉 신문, 잡지,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매체 변화를 기준으로 개그 만화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에 대응하는 근대 만화, 명랑 만화, 병맛 만화를 차례로 검토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때 주의할 점은 신문, 잡지, 인터넷이 단순한 물질성에 기반한 지지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히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언급한, 작품의 구현에 필연적인 기술적, 역사적 관습과 규칙인 ‘기술적 지지체’[2]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겠다. 한국 사회와 역동적 관계를 맺어온 시대의 매체들은 웃음의 주제와 형식, 생산유통 구조,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며 각 시기 개그 만화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멍텅구리』의 슬랩스틱과 근대적 웃음의 감각

먼저 1924년 10월 13일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국 최초의 신문 연재만화 『멍텅구리』를 살펴보자. 연재에 앞서 10월 12일자 신문에는 『멍텅구리』의 게재를 예고하는 광고가 실렸다.

그림리야기 『멍텅구리헛물켜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도 아니오 넷날리야기도 아니오, 자미스러웁고, 우습기로만 주댱을 삼아, 그림으로써 리야기를 하고, 리야기로써 그림을 그린 것이 올시다. 매우먼적 발달되야다는 서양의 신문으로 보아다 이 그림리야기라는 것은 시작된지가 그닥지 오래지 안치만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독자라부터 매우 만흔 환영과 큰 갈채를 바든 까닭에, ··· 그리하야 최근 수년이래로는 일본에서도 대신문사 사이에 이 『그림리야기』의 경쟁이 일류대유행이 되야 잇스며, 이번에 우리 신문에 시작되는 『멍텅구리 헛물켜기』라는 그림리야기도 실로 세계 대류행의 한가지로, 조선에서만 드러내는 그림야기로는 실로 처음 되는 것이올시다.[3]

서양신문에서 시작된 지 그다지 오래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도 신문사 사이에 경쟁이 유행하는, 실로 ”세계 대류행“의 한 가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신문 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상품으로서의 만화, 더 정확하게는 신문 만화의 코믹 스트립(Comic strip)이라는 형식이다. 부연하자면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던 김을한(金乙漢)(1906~1992)의 증언에 따르면 『멍텅구리』의 원형은 다름 아닌 미국의 코믹스트립 『지그스와 매기(Bringing Up Father)』였다.[4] 그렇다면 『지그스와 매기』는 어떤 만화인가? 1923년 번역된 이후 전후까지 일본의 최장 연재만화로 기록되며, 무엇보다 1890~1900년대 미국 코믹스트립이 창조한 시청각 만화(audiovisual comics)형식을 일본 만화에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이다. 이때 시청각 만화란 말풍선 유무를 넘어 정지 이미지에서 운동 이미지로, 침묵에서 소리로의 이행으로, 근대의 시청각을 둘러싼 철학적·기술적 혁명의 산물이다.[5] 우리는 이로써 『멍텅구리』의 네 칸 형식과 슬랩스틱이 촉발한 웃음을 이해할 단서를 얻게 되었다. 『멍텅구리』가 도입한 네 칸 만화는 단순히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대 독자들이 『멍텅구리』를 통해 경험했을 즐거움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후대의 제한된 독해이다.

식민지 시기 독자들은 『멍텅구리』에서 과연 어떤 즐거움을 느꼈을까. 『멍텅구리』는 신문의 모자이크 형태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하루하루의 연속성에 대한 감각을 제공했다. 그리고 주인공 최멍텅과 주변 인물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희극 체계 속에서 물리적 힘을 주고받으며 난장판을 벌이다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슬랩스틱을 보여준다. 그렇다. 시청각 만화로서의 『멍텅구리』가 당대의 독자를 매혹시킨 주요한 동인 중 하나는 슬랩스틱이다. 실제로 작가 김동성은 1930년 『학생』 잡지에 기고한 ‘만화입문’에서 “전체가 완전한 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동작이다. 화가는 본인이 의도한 대로 인물의 동작을 만들어낸다. 행인이 유령을 만나 경악할 때 걸음을 성큼성큼 걷는 것보다 속도를 내어 질주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6]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동일한 외양일지라도, 식민지 시기의 슬랩스틱을 현대적 웃음의 감각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네 칸 만화를 칸-기계로서 기능을 간과한 채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로 환원하는 우를 재차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슬랩스틱의 희극성을 통찰한 앙리 베르그송을 경유해 『멍텅구리』의 근대적 웃음의 감각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베르그송은 희극성의 원천을 ‘생명 속의 기계적인 것’에서 찾았다. 생명의 유연함을 잃고 자동-기계처럼 행동할 때 인간은 우스워지는데, 이와 관련해 코믹 만화의 독창성은 사람의 이미지와 기계장치의 이미지가 완전히 하나로 어우러질 때 발휘된다고 보았다.[7] 『멍텅구리』 역시 그러하다. 『멍텅구리』의 슬랩스틱은 근대성의 기계주의 및 자동주의와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더욱이 근대 만화가 신문의 파편화된 감각을 공유하며 인과 연쇄에 따라 세계를 구조화한 매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근대적 시각성에 관한 톰 거닝의 논의를 『멍텅구리』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톰 거닝에 따르면, 『멍텅구리』의 슬랩스틱은 19~20세기에 등장한 근대적 매체와 마찬가지로 가상이든 실제든 ‘시각적 운동성’에 대한 근대적 매혹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또 다른 근대적 매체인 영화의 사례와 나란히 배치해 보자. 1920년대 한국 코미디 영화의 선전 문구는 ‘포복절도’, ‘홍소’, ‘폭소’, ‘배파산(排罰散)’ 등 신체 반응을 동반한 웃음 양상을 강조하거나, ‘대탈선’, ‘전율’, ‘스피드’, ‘대비약’과 같이 운동성을 수반하는 활극적 성격을 내세웠다.[8]

물론 『멍텅구리』 슬랩스틱이 과시하는 신체성과 운동성은 근대적 매체가 공유하는 감각이기는 하나, 만화의 운동성은 영화만큼 충분한 박진감(迫眞感)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대와 식민이 교차하는 근대 도시, 경성. 그리고 이 공간 속에 풍자만화, 보드빌, 그리고 세기 전환기 영화에서 그려지는 촌뜨기 ’엉클 조지‘ 계보를 잇는 모던보이 ’최멍텅‘이 던져져 있다. 근대와 식민지라는 세계, 다시 말해 근대 도시의 감각적 대변동은 최멍텅의 신경계를 어떻게 자극했을까? 게오르그 짐멜에 따르면 그의 의식은 일종의 신경과민으로, 이는 매 순간 인상이 이전 인상과 구별되는 차이를 통해 촉발된다. 급속도로 밀려오고 교체되는 일련의 이미지의 흐름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분절되고 연쇄되는 만화라는 매체를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요컨대 『멍텅구리』는 근대적 감각 과잉에 대한 미학적 대응으로서, 근대 도시 경성의 환경과 경험을 새롭게 직조한다. 그러니 분절된 칸으로 각각의 국면을 도해한 후 이를 재차 결합해 생명을 불어넣는 진기함 속에서, 식민지 독자들은 『멍텅구리』에서 영화와는 또 다른 근대적 웃음의 감각을 경험했음이 틀림없다.
 

명랑 만화와 1970년대 감정구조

명랑만화는 1970년대 어린이 잡지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를 중심으로 번성한 개그 만화다. 신문에 연재된 성인만화와 함께 1970년대를 양분한 명랑 만화는 당시 어린이 다수가 공유한 보편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도시화, 산업화, 근대화 기획, 국가 이데올로기 등 1970년대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는 다소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어, 1970년 7월 25일 개관한 남산 어린이회관을 살펴보자. 동심의 낙원이어야 할 남산 어린이 회관은 모든 어린이에게 개방된 공간이 아니었다. 남산에서 2만 3천 명의 중산층 자녀들이 왈츠가 흘러나오는 어린이 회관에서 정서를 살찌우는 동안, 청계천 일대에서는 학교에 가야 할 청소년들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혹사당했다.[9] 이뿐만이 아니다. 남산 어린이회관의 배제와 포섭의 원리는 동시대 어린이 잡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육영수 여사가 초대 발행인 겸 편집인인 《어깨동무》를 포함한 어린이 잡지들은 어린이 회관과 마찬가지로 도시와 지방, 상층과 하층 계급의 어린이를 철저히 구분하여 기사화했다. 당시 어린이 독자들 역시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김창남의 회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일기를 열심히 쓰는 바른 생활 소년이었다면 어느 구석엔가 아마 이런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런 시골 아이들에 비하면 나의 생활은 어머나 행복한가, 불만이 있다면 참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어린이 잡지에 나보다 어려워 보이는 아이들의 삶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이 잡지는 우리 같은 지방 아이들에게 서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런 잡지에는 컬러 화보와 함께 서울에 있다는 라라국민학교 같은 이른바 일류 사립학교 아이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 서울 삶에 대한 동경과 시골 삶에 대한 연민, 어린이 잡지가 조그만 소도시 꼬마에게 선사한 고정관념의 하나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그 시절 어린이 잡지는 내 머리 속에 ‘서울>지방 도시>시골’이라는 하나의 위계를 심어주었다.[10]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도시와 지방, 상층과 하층 계급의 어린이를 분리하는 어린이 잡지와 달리, 그 매체에 연재된 명랑 만화는 이러한 경계를 봉합하는 듯 보인다는 사실이다. 서울과 양옥집으로 상징되는 도시 중산층과 긴밀히 결부된 명랑 만화가 어떻게 그러할 수 있었을까? 명랑 만화에서 서울은 흥미롭게도 공간의 실체를 확인하거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익명의 공간으로 주로 묘사된다.[11] 게다가 고도성장에 따른 소비사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옥집의 내부는 앉은뱅이 책상을 제외하고 기이할 정도로 텅텅 비어 있다. 심지어 텔레비전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정희 집권 이후 사회 구조의 변동이 본격화된 1970년대라는 맥락을 고려하면, 이러한 공간의 익명화 전략은 독자를 사회 갈등으로부터 분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12]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로 인해 명랑 만화의 공간이 일상의 배경을 초과해 주인공이 마음껏 뛰어다니고 뒹굴 수 있는 일종의 희극 무대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이제 어린이 독자들은 비로소 지역과 계급을 초월한 ‘명랑’이라는 공간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인 시간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동시대 안방극장의 홈드라마가 일일연속극의 주기를 통해 시청자의 일상을 포섭했다면, 명랑 만화는 월간지 어린이 잡지의 주기를 의무교육으로 보편화된 학교의 일정과 연동함으로써 어린 독자라면 누구나 감각하고 경험할 공적 시공간을 구축한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을 뒤따라가 보자. 꺼벙이로 대표되는 명랑 만화의 카툰화된 주인공은 장난꾸러기라는 서사적 정신(narrative ethos)을 구현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주인공이 유발하는 웃음을 유머의 우월이론으로 설명하려 할지 모른다. 실제로 실수투성이에다 엉뚱한 소동을 일으키는 주인공을 보면 웃음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명랑 만화를 보는 진정한 즐거움은 주인공의 결함을 거리를 두고 비웃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희극적 거리를 가능한 한 좁혀 주인공과 밀착하여 장난을 일으키고, 나아가 다른 어린이 독자들과 함께 일탈을 공유하는 친밀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서 명랑 만화적 웃음이 발생한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명랑 만화의 카툰화 형식만으로는 1960~70년대 어린이들이 왜 명랑 만화에 매혹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명랑 만화는 동시대 텔레비전과 더불어 공통 감각을 조직하는 문화적 매개 장치였으며, 무엇보다 당대의 어린이들이 공유하던 문화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1960~70년대 어린이들은 무엇을 공유하고 있었을까? 이 시기 세계문학전집, 공상과학전집, 추리모험전집 등이 활발히 간행되었으며, 탐험 이야기의 경우 모험의 일종으로 아동에게 모험심을 고취시키고 진취적 기상을 기른다는 교육적 목적으로 적극 장려되었다.[13] 당연히 여기에는 명랑 만화를 연재한 매체, 어린이 잡지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 잡지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잡학 지식의 총체였다. 역사 이야기, 세계 각국의 문화와 지리, 고전 각색, 유머, 괴담, 공작 실습, 운동 놀이 방법 등 다종다양한 지식을 포괄하는 어린이 잡지는 가히 잡학지식의 보고라 할 만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해양, 모험, 표류, 우주, 물리, 발명 등 과학적 지식과 연계된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14] 정리하자면 명랑 만화는 이러한 1970년대 문화적 상상력을 집약적으로 구현하는 매체였다. 만화가 김진태의 일화를 참고해 보자. 그는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의 상황을 곧잘 따라 했는데, 요철이의 지하작업실 같은 공간을 갖고 싶어 지하실에 들어갔다 도망쳐 나오기도 했으며, 친구들을 모아 『요철 발명왕』의 기상천외한 실험 장면을 동네 골목에서 재현하기도 했다.[15]

나아가 심층적 논의를 위해, 명랑 만화가 1970년대 전후의 문화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국가 이데올로기 및 근대화 프로젝트와 양가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당시 어린이들의 문화적 상상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박정희 정권의 교육과 문화 정책으로부터 기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 이데올로기와 근대화 프로젝트가 어린이 잡지와 명랑만화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지배 권력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탈적인 명랑의 공간을 창출하기도 했다. 다만 명랑 만화의 전복적 상상력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말자. 시인 오규원은 길창덕의 『꺼벙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논평한 적이 있다. “어떤 토막의 이야기에서도 꺼벙이의 행동 반경과 사고의 흔적은 늘 아이답다는 느낌을 벗어나지 않고, 뒤죽박죽한 사건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변화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16] 이는 정확한 지적이다. 명랑 만화의 심층에는 일종의 초자아로 기능하는 국가와 가족이 존재한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들이 보물섬을 찾아 모험과 표류를 하거나 기상천외한 실험으로 아무리 사고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국가와 가족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주인공을 일탈로부터 복귀시키는 중력으로, 이후의 일상을 지속케 하는 단단한 지지대로 기능한다. 명랑 만화를 일종의 자아(ego)로 가정해보자. 현실 원칙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면서도 동시에 쾌락 원칙이 어느 정도 주도면밀하고 세심하게 조정되는 자유놀이를 행하도록 한다.[17]

이를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말한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 다시 서술해보자. 1960~70년대 한국 어린이들이 명랑 만화를 통해 체험한 것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어린이 잡지와 명랑 만화라는 문화적 장치가 박정희 정권의 국가 이데올로기 및 근대화 프로젝트와의 길항 속에서 형성한 당대 어린이들의 집단적 감정구조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명랑 만화가 1980년대에 접어들며 어린이 잡지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함께 쇠락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예컨대 1980년대 감정구조의 변화를 선명하게 가리키는 『보물섬』을 보자. 1982년 육영재단이 창간한 『보물섬』은 건전 만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지만, 더 이상 1970년대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근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재미와 유익함, 흥미 있으면서 건전한 내용”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문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설득하는 데 더 큰 열망을 쏟는다.[18]

그러니 《보물섬》을 대표하는 명랑 만화 『아기공룡 둘리』와 『맹꽁이 서당』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기공룡 둘리』의 경우, 만화가 김수정이 1990년대 만화평론에서 감각적인 언어 구사력으로 ‘만화계의 김수현’으로 평가받은 점은 의미심장하다. 김수현 작가는 1981년 MBC 드라마 <안녕하세요>와 <사랑합시다>로 이전의 주말연속극 틀을 유지하면서도 가부장제적 세상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 역시 이러한 흐름에 조응한다. 명랑만화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가부장제의 핵심인 혈연적·상징적 아버지를 소거하여, 국가-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대안적 가족상을 제시한 것이다. 다음으로 『맹꽁이 서당』은 어떠한가. 명랑만화의 거장 윤승운은 마치 명랑 만화가 1980년대의 시대적 감정구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는 듯하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의 학교를 전통적 교육 기관인 서당으로 치환함으로써, 『요철 발명왕』에서 보여주었던 1970년대 근대화의 낙관적 상상력을 과감히 내려놓는다. 명랑 만화가 동시대로까지 계승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수 있다. 하지만 명랑 만화는 본질적으로 1970년대의 감정구조가 만들어낸 고유한 산물이며 그러하기에 아련한 추억과 향수 속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설령 오늘날 새로운 명랑 만화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명랑 만화일 수는 없는 것이다.
 

병맛만화: 인터넷 그리고 그림판이라는 은하

병맛 만화를 정의할 때 흔히 ‘기승전병’으로 요약되는 서사 구조를 강조한다. 이는 명랑 만화가 남긴 강렬한 체험을 직관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갖지만, 한편으로 병맛 만화의 본질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즉, 병맛 만화에서 나타나는 일탈적이고 파격적인 전개만을 과도하게 부각함으로써 병맛 만화의 복합적인 서사 전략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인다. 실제로 『이말년씨리즈』를 면밀히 분석한 박재연의 지적처럼, 이 작품에는 이야기 구성이 치밀한 에피소드들이 다수 존재한다.[19] 이말년 작가 역시 콘티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할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자신의 작업 방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전에는 각종 유행하는 게시물을 꿰고 있었고 그래서 패러디가 엄청 많았는데 이제 거기에 회의를 느낀다. 패러디를 하다보니 패러디를 위한 만화가 되는 거다. 내용 안에 패러디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패러디를 하려고 만화를 꾸미는 상황. 그러면 개그가 휘발성이 되고 몇 주만 지나도 촌스러워지더라. 사실 패러디는 그냥 가져다 쓰면 웃기다. 일종의 무임승차인데 그걸 안 하려니 힘든거다. 최대한 안 넣고, 혹 넣더라도 내용에 영향을 안 미칠 정도로 하려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다. 작가 이말년이 개연성을 확보하고 일관된 서사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퍽”, “와장창” 같은 효과음과 독자의 어이없는 마음을 대변하는 “고만해 미친놈들아!!” 같은 절규로 가득한 『이말년씨리즈』는 여전히 서사성이 파괴된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해소하고 병맛 만화에 대한 논의를 확장할 수 있을까?

우선 개그 만화를 긴장과 놀람의 특정한 결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티브 닐과 프랑크 쿠루트니크에 따르면, 웃음을 발생시키는 서사의 핵심 메커니즘은 긴장과 놀람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20] 긴장이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고 기다리게 만드는 효과다. 반면 놀람은 예측에서 벗어난 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할 때 나타나는 충격 혹은 당혹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이 바나나 껍질을 밟기 직전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이때 긴장감이 형성되며, 이후 예상대로 인물이 우스꽝스럽게 넘어진다면 웃음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바나나 껍질을 밟고도 있을 법하지 않게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면 이로부터 놀람이 발생한다. 이로부터 병맛 만화에 관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긴장은 서사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는 긴장 자체가 고유의 인과율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반면 바나나 껍질로 주인공이 하늘로 날아가는 경우에는 놀람과 함께 일정한 기준이나 기대에서 벗어나는 서사 진행을 목격하게 된다. 즉 놀람은 긴장과 달리 인과성을 방해하고 서사의 통합에 적대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병맛 만화를 재구성해보자. 긴장과 놀람이라는 상호의존적 체계 내에서, 놀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개그 만화로 정의할 수 있다. 혹은 유머의 부조화 이론에 따라 기준으로부터의 일탈, 그러니까 긴장을 토대로 정교하게 구축한 서사로부터 과잉되게 일탈하는 개그 만화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병맛 만화의 기승전병 구조는 개그 만화에서 전례 없는 특징이 아니다. 기대를 과격하게 붕괴시키는 정동과 의미 탈선에서 비롯된 유희 등은 기꺼이 논의해볼 만한 의제이기는 하나, 기승전병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기준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부조화 이론에 근거한다. 더구나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해본다면, 인과성의 파괴나 관습의 일탈 같은 유머 형식은 병맛 만화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즈마 히데오가 이미 1978년에 『부조리 일기』를 통해 의미의 박탈을 시도했으며, 이후 부조리 만화는 아이하라 코지의 활동을 거치며 개그 만화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21] 또한 1990년대 전위적 작품인 『멋지다 마사루』는 기존 개그 문법을 해체하고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난센스와 패러디를 전면에 내세운 일본 코미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였다.[22] 종종 간과되기는 하지만,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엽기 문화를 반영한 엽기 만화 역시 놀람을 극대화하는 개그 만화 계보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시기 엽기 문화는 ‘잔혹하고 기괴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점차 ‘황당한 것, 기발한 것, 특이한 것’ 같은 얇고 넓게 통칭하는 개념으로 전환됐으며,[23] 엽기 만화 또한 이 과정에서 잔혹과 폭력 같은 피학적 쾌감을 과시하는 동시에 의미와 가치가 일소된 세계를 펼치며 병맛 만화를 예비한다.

『마음의 소리』는 이 같은 맥락에서 엽기 만화에서 병맛 만화로 이어지는 이행을 표징(表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빈번히 병맛 만화로 언급되지만, 몇몇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병맛 만화의 범주에 온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작가 본인이 병맛 만화와 거리를 두고 있으며, ‘마사루의 센스를, 이나중의 황당함을 뛰어 넘는다!’라는 초창기 소개말은 『마음의 소리』가 당대 독자에게 『멋지다 마사루』, 『이나중 탁구부』 같은 부조리 혹은 엽기 만화의 계보 속에서 읽히고 감각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주의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음의 소리』가 1,000화를 넘는 장기 연재 속에서 끊임없이 유머의 변주와 혁신을 시도해왔다는 점에서, 엽기 만화에서 병맛 만화로의 이행을 상정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다 설득력 있는 관점은 『마음의 소리』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대중문화와 인터넷 환경 속에서 각기 다른 장르명으로 호명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병맛 만화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병맛 만화는 관습의 위반, 기대의 급정지, 급격한 전환, 의미의 붕괴 같은 놀람의 효과를 극대화한 개그 만화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서사 파괴적 속성만으로는 병맛 만화를 다른 개그 만화와 구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병맛 만화를 새로이 규정하기 위해서는 내적 맥락뿐 아니라 외적 맥락, 특히 병맛 만화의 지지대인 인터넷 매체 환경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이말년 작가와 유사한 행보를 보인 『역전! 야매요리』의 정다정 작가 인터뷰를 살펴보자.

노트북을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 종일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보며 잉여질을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유머 사이트를 들락거렸지. 지금 『역전! 야매요리』의 원천인 개그코드를 그때 섭렵했다. 그러다 그곳의 요리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노는 거 보고 나도 거기 끼고 싶어서 자막을 사진에 넣은 요리 게시물을 올리게 됐다. 그게 좋은 반응을 얻고 게시물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 싶어서 블로그를 개설한 거다.[24]

요컨대 병맛 만화는 2010년대 전후, 디시인사이드로 대표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언어, 유머, 문화 코드, 집단 감정 속에서 형성된 현상이다. 이 시기 인터넷 문화와 감정 구조를 반영하며, 웹툰이라는 제도화된 형식으로 확장된 장르라 할 수 있다. 엽기 만화가 ‘클릭’과 ‘하이퍼링크’라는 감각으로 접속한 저 너머의 놀람을 지향한 데 반해, 병맛 만화는 동일한 기원을 가진 ‘짤’과 함께 ‘그림판’이라는 감각이 촉발한 해체의 놀람을 추구한다. 여기서 그림판은 병맛 만화가 펼쳐내는 하강의 카니발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그림판이란 ‘누구에게나’ 창작을 허용하고, ‘맥락과 무관하게’ 이미지를 짜깁기하는 도구다. 이를 통해 생산과 수용, 의미와 가치의 모든 차이들은 동일한 수준에서 무한히 수평화된다.[25] 유머의 방출 이론에 비추어보자면, 병맛 만화는 이를 통해 기대를 전복하여 의미를 탈선시키고, 위계를 흔들고 차이를 뒤섞는 부조화적 병치를 과시함으로써 억압된 자유정신을 해방시킨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인터넷으로부터 기원한 병맛 만화와 엽기 만화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안정된 장르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생성–확산–소멸이라는 생애 주기를 따르는 인터넷 밈에 가까운 현상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병맛 담론과 함께 병맛 만화는 인터넷 매체의 새로운 국면으로 인해 동시대 유머적 정동을 담아내는 데 이미 그 유용성을 상실했다. 개그 만화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오랫동안 인터넷 저류에 머물며 진동하던 무언가가 마침내 수면 위로 부상할 바로 그때[26], 병맛 만화와는 또 다른 이름으로 복귀할 것이다.
 

주석
[1] 박근서, 『코미디, 웃음과 행복의 텍스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110쪽.
[2] 최종철, 『로절린드 크라우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96쪽.
[3] 서은영, 「코믹스(Comis)의 기획과 대중화』, 『서강인문논총』,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286쪽.
[4] 정희정, 「만화 《멍텅구리》로 본 근대 도시, 경성의 이미지」, 『美術史論壇』, 한국미술연구소, 2016, 186쪽
[5] Eike Exner, 『Comics and the Origins of Manga: A Revisionist History』, Rutgers University Press, 2021, 55쪽.
[6] 김가현, 『김동성의 신문만화 및 만화이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2, 100쪽.
[7] 앙리 베르그송, 정연복 옮김, 웃음-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 문학과지성사, 2021, 38쪽.
[8] 박선영, 「식민시기 “웃음의 감각” 형성과 코미디(성)의 발현: 외화 코미디 수용을 중심으로」, 『영상예술연구』, 영상예술학회, 2014, 26쪽.
[9] 이해수, 『남산의 재구성: 박정희 정권의 어린이 보건·복지 정책과 남산의 변화』, 서강대학교대학원, 2014, 66쪽.
[10] 김창남, 『나의 문화편력기: 기억과 의미의 역사』, 정한책방, 2015, 42~43쪽.
[11] 김대근, 「1970년대 한국명랑만화의 담론분석」,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6, 266쪽.
[12] 김대근, 「1970년대 한국명랑만화의 담론분석」,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6, 266쪽.
[13] 강정수, 『1970년대 ‘어린이영화’와 ‘소년잡지’의 관계: 어린이가 상상하는 공동체 ‘품행제로 지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대학원, 2018, 41쪽.
[14] 강정수, 『1970년대 ‘어린이영화’와 ‘소년잡지’의 관계: 어린이가 상상하는 공동체 ‘품행제로 지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대학원, 2018, 19쪽.
[15] 서찬휘, 『김진태』, 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15~16쪽.
[16] 오규원, 『한국만화의 현실』, 열화당, 1981, 64쪽.
[17] 테리 이글턴, 『유머란 무엇인가』, 손성화 옮김, 문화사상사, 2019, 41쪽.
[18] 서은영, 「만화잡지를 통한 시대읽기(1):『보물섬』의 창간을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19, 258쪽.
[19] 박재연, 「‘병맛’ 담론의 형성과 담론의 작동방식」, 『대중서사연구』, 대중서사학회, 2019, 160쪽.
[20] 스티브 닐과 프랑크 쿠루트니크, 『세상의 모든 코미디』, 강현두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2, 57쪽.
[21] 오츠카 에이지, 사사키바라, 『망가, 아니메』, 최윤희 옮김, 열음사, 2004, 101쪽.
[22] 손지상, 『크리틱지상주의: 대중문화에 할 말 있음!』, 에이플랫, 2018, 95쪽.
[23] 윤영란, 『인터넷 엽기구성체의 문화정치적 함의: 각 국면별 문화실천과 감수성의 변동맥락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대학원, 2002, 21쪽.
[24] 위근우, 『웹툰의 시대』, 알에이치코리아, 2015, 71쪽.
[25] 테리 이글턴, 『유머란 무엇인가』, 손성화 옮김, 문화사상사, 2019, 38쪽.
[26] 나원영, 「썩은 인터넷 가설: 2020년대 상반기 웹에 대한 간략한 소고 (1)」, 마테리알 (WEB-ONLY).

 

오혁진

만화 평론가,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크리틱 M 만화평론,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비평 공모전을 수상했으며, <크리틱 M>, <유어마나>, <크리틱-칼>, <콜리그>, 『그래픽노블』, 『지금, 만화』, 『쓺』 등에 기고했다. 만화의 역사, 매체, 형식, 이론에 관심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만화 형식의 역사』, 『한국 만화 캐릭터 열전』(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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